조진모 목사 (필라델비아한인연합교회)
크리스마스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지키는 중요한 교회력 중에 하나이다. 4세기에 이르러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날을 12월 25일로 정한 이후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제 크리스마스는 전 세계가 가장 커다란 명절로 지키는 날이 되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한 사람으로 너무 기쁜 일이지만, 동시에 매우 속상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간혹 성탄 캐롤 소리도 들리고 성탄 카드도 주고받지만,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즐기는 명절이 되었다. 이날의 주인공인 그리스도가 빠진 성탄절(Christ-less Christmas)로 전락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도가 빠진 기독교' 또는 '잘못된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질문: 313년 속사도 시대의 마감 전에 출현한 이단에 대처하며 형성된 초대교회 기독론(그리스도에 대한 연구)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었는가?
▪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핵심은 그리스도였다. 교회의 출발과 함께, 기독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신앙을 기초로 형성되고 확장되어갔다. 사도행전 11장 26절에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로 초대교회 교인들을 살펴본 후 외부 사람들이 내린 평가를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원어적인 뜻을 살펴보면, 이런 호칭을 지닌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상대를 멸시하고 비방하는 뜻으로 사용되는 접미사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와 버금가는 우리말 표현은, 바로 “쟁이”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쟁이”라는 조소의 뜻을 담은 호칭을 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매우 불편한 마음을 피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지나 보편화된 후에는, 성도들은 기꺼이 이 호칭을 받아드리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특징이 되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그것이 바로 사도들이 전해준 신앙의 본질이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의 배경을 고려해보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다. 가장 잔악한 자들에게 내리는 형벌인 십자가에서 죄인의 몸으로 생을 마감한 예수라는 청년을 그리스도로 부르며 따라간다는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이고, 히브리어로는 ‘메시야’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인정하고 그를 따랐다. 메시야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그들은 예수를 인류를 구원을 담당하는 특별한 사명을 받은 구세주로 확신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른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들어보지 못한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이나 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예배의 대상으로 섬기는 일이었다. 신앙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높이는 일이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던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고백과 삶이 일치되었다는 증거였다.
▪ 그리스도의 정체성 성도가 믿음의 대상인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는 것은, 신앙을 위한 가장 첫걸음이다. “그리스도는 누구이며,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근거한 사실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하고 후대에 전달한 사도들의 역할도 절대적이다. 초대교회부터 성도들의 신앙의 초석이 되었던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간이셨다.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는 반드시 신성과 인성을 지녀야 했다. 초대교회의 기독론은 크게 세 가지로 발전하였다. 1)그리스도의 신성은 어떤 것이었나? 2)그리스도의 인성은 어떤 것이었나? 3)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관계되었는가? 전통적인 기독론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는 100% 하나님이시고 인간이셨으며, 한 위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었지만 각각 구별되었다. 초대교회에 등장한 이단은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거부하였다. 이들을 313년을 전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주로 1)그리스도의 신성과 2)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자들이 등장하였다. 이후에는 3)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에 대해 거짓증거를 하는 이단이 출현하였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들의 오류는 그를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부류는, 이미 앞에서 살펴본바 에비온파를 손꼽을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전면적으로 부인한다. 그가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과 유사한 주장을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는 인간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커다란 능력을 받아 대단한 인물로 추앙받는 것이라며 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자들의 오류는 그를 참된 인간으로 인정하니 않았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부류는 역시 앞에서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지주의로 볼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육신은 하늘에 속해있으며, 사람들의 눈에 단지 인간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단의 공격으로 그리스도인들 혼란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리스도의 신성 또는 인성만을 인정하는 믿음의 뿌리가 결코 건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교회의 전통에서 기독론이 형성되기 이전, 이단의 공격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자체를 흔들어놓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인성 또는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의 출현으로 인하여, 자연히 교부들은 신학적 고민과 함께 기독론 형성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 결과, 313년 이전에 형성된 기독론은, 이단의 출현과 함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확고한 성경적 기초에 근거하며 발전하게 되었다.
2) 성경이 보인다 - 마태복음 16;16; 요한복음 1;14; 요한복음 20:30-31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즉, 우리를 구원할 자이시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고백위에 세워졌다. 이 고백이 기독교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모든 진리는 반드시 이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우리에게 주어진 종교이다. 기독교의 신앙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다면 성도가 아니다. 물론 구원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진리를 수용하여야 하며, 그가 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신앙인의 삶이다. 그러나 신앙은 진리를 아는 것이나 도덕적인 삶과 비교될 수 없는 차원의 것이다. 무엇을 알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삶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완전한 인간이셨다. 또한 그는 완전한 하나님이셨다.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그에 대한 신앙의 고백에 따라 신앙의 사활을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메일:covenantcho@yahoo.com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