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좋은 신앙이란 말씀 따라 사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와 존 칼빈(John Calvin)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핵심 교리는 5개의 Solas 즉, 성경(Sola Scriptura ), 오직 은혜(Sola Gratia) ,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다. 이 강령 중에서도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이다. 불행히도 중세 1,000년 동안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말씀이 가톨릭 교회와 그 사제들 손에서만 있었다. 따라서 개혁자들은 이 생명의 말씀을 빼앗아 모든 만민에게로 전해 주었다. 때마침 인쇄술이 발명되어 성경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복음은 만방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로서 성경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삶과 사역의 원천이요 유일무이한 기준이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타난 선교사상은 어떠한가? 그것은 성경 전체에 흐르는 큰 맥(脈)이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유형 교회들이 있다. 하지만 지상 과업을 제대로 수행하는 교회들은 많지 않다. 오직 말씀! 을 외치며 그렇게 많이 듣고 읽고 공부하면서도 실상은 그 도리(道理)와 괘리가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인간의 연약성 때문인가 아니면 아직도 말씀에 대한 이해 부족인가?
성경은 신자들에게 삶과 사역의 원천이요 유일무이한 기준이다.
선교사상은 하나님의 속성으로부터 시작해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다.
선교는 교회의 선택적 기능이 아니라 존재적 본질이요 사명이며 특권이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에 내포된 선교 사상
로버트 스테반은 성경 전체를 구약 39권=929장=23,026절, 신약 27권=260장=7,957절, 합계 66권=1189장=30,993절로 나누었다. 이 많은 말씀을 대표하는 것이 요3:16절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 의하면 성부 하나님은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성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다. 성자 입장에서 보면 보내심을 받은 것이다. 행 2장 1~13 에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나타난다. 성령 하나님 역시 이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존재 자체가 선교적이다. 왜 그러한가? “선교(mission)”라는 용어는 라틴어 “mitto”(mittere, missio)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뜻은 “보내다, 파견하다”이다. 그 명사형 missio는 '내보냄'(sending out)를 의미한다. 이 뜻은 헬라어 ‘아포스텔로(ἀποστέλλω)’와 ‘펨포(πέμπω)’에 해당한다. 아포스텔로는 구약(70인 역)에서는 700 회 이상 사용되었고, 신약에 약 135 회 사용되어 있다. 펨포는 구약에 단지 26 회만 사용되었고, 신약에는 약 80 회가 사용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선교란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부름 받은 자가 그 목적의 성취를 위하여 보냄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3 위격으로 존재하는 한 분이시지만 성자와 성령을 이 세상에 보냈기에 선교적 하나님이심을 자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 구약성경에 나타난 선교 사상
구약성경은 오실 메시아(מָשִׁיחַ : Messiah), 신약성경은 오신 메시아에 대한 기록이다. 이로서 구약의 선교는 예표적이요 그림자적인 성격이 짙다. 순드클러(Benkt Sundkler)는 "구약의 선교는 구심적(centripetal)이요, 신약은 원심적(centrifugal)"이라고 했다. 율법서에서 창조 기사는 선교의 가장 중요한 기초이다. 타락 사건은 선교의 원인이 되게 한다. 아브라함의 소명은 구약에 나타난 첫 선교의 명령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전 세계 모든 인류를 부르시기 위한 한 방편이었다. 그것은 필요에 의해 세계주의(universalism)에서 특수주의(particularism)로 전환이다. 출애굽을 사건은 구약 성경에 나타난 선교의 절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서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시내산 언약대로 말씀 중심으로 살아갔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선교 사상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에 잘 나타난다. 그의 기도에서 성전은 이스라엘만의 것이 아니라 만민의 집으로 언급되었다(왕상 8:41-43, 사 56:7). 시편은 메시아 시로서 그는 우주의 왕으로서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경륜 아래 있음을 말한다. 피터스(George W. Peters)에 의하면 시편에는 이방의 모든 나라에도 구원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사상이 175회 나타난다고 하였다. 선지서에서는 구원의 범위와 더불어 하나님의 심판도 전 세계적임을 언급하고 있다(암 1:3-2:3). 나아가 때가 차면 메시아에 의해 최종적으로 열방에 구원이 일어날 것 임을 예언하고 있다.
3. 신약성경에 나타난 선교 사상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탄생, 사역, 십자가와 부활을 기록해 놓았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과업을 마치시고 부활하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 지상명령을 주셨다(마 28장 18-20절. 막 16장 14-20절. 눅24장 44-53절. 요 20장 21-23절). 이 유언의 말씀은 4 복음서에 공히 기록된 것이며 특히 마태복음에 선명히 드러나 있다. 역사서인 사도행전은 한 마디로 선교 행전이다. 행 1:8 말씀에 의거 복음이 어떻게 예수살렘, 유다, 사마리아와 땅 끝으로 전파되었는지를 나타내 주고 있다. 이를 위해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신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선교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사실이다. 21권으로 된 서신서는 어떠한가? 이는 사도들이 흩어져 사역하면서 영감을 받아 쓴 기록이다. 사도들 중에 대표자는 바울이다. 그는 21권 중 13권을 기록했다. 최고의 선교사였던 바울은 말년에 디모데 전, 후서를 썼다. 특히 딤후 4:1~2에는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유언적으로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라고 귀결하고 있다. 계시록에 나타난 선교사상은 무엇인가? 계 22:7 보면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 지킨다는 것은 말씀대로 성결한 삶과 더불어 지상명령을 준행하는 것이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계 7:9). 이처럼 신약성경에는 선교사상이 아주 명료하게 직선적으로 드러나 있다.
맺음말
성경(Sola Scriptura)! 이 구호는 종교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외친 것이다. 말씀을 떠나면 기독교가 아니요 그것에서 멀어지면 이단으로 비화될 수 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 공동체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처럼 성경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선교라는 대하(大河)가 흐르고 있다. 그것은 복음서에서 명령으로 바뀌었고 역사서의 증거를 거쳐 서신서에서 우리 모든 크리스천들의 가슴을 때리고 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1~2). 이 거룩한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 누구인가? 그간 우리 교회들은 선교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하는 것(doing)에는 익숙했지만 선교적 체질(being) 변화는 이루지 못했다. 무엇을 하는 것(doing)보다 근본적 체질(being) 변화가 우선이다. 그렇지 않은 한 우리의 선교는 단회적이며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겉만 번지르르하고 말 것이다. 선교의 시발점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이제 성령께서 우리 교회와 함께 하고 계시다.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께서 그 과업을 기필코 이루어 가실 것이다. 따라서 언약 백성으로 부름 받은 우리들은 지금 이 순간 서 있는 자리에서부터 축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선교적 삶을 사는 것이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jrsong007@hanmail.net
07.30.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