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교회력 절기이다.
절기에 맞추어 주님과 연합된 인생살이는 영적 부요함이 크다.
우리는 이때에 세속의 티를 털고 맑은 영혼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탄다. 아침에 일어나 낮에 일하고 밤에 잠을 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면 한 살 나이를 더 먹게 된다. 신앙생활이나 사역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이다. 이는 부활절을 맞이하기 전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절기이다. 사순절의 의미는 성도들이 고요한 묵상을 통해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깊은 영성으로 나아가는 데 있다.
2022년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인 3월 2일부터 부활절 전 날인 4월 16일까지이다. 우리 개신교는 유대교나 천주교에 비해 말씀생활은 강하나 절기에 맞추는 신앙생활은 약하다.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도 너무 자유롭다. 좋은 믿음의 본은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사역, 고난, 십자가, 부활, 성령강림 등 그 절기에 따라 살아 갈 때 영적 부요함이 크다. 주님의 생애와 그 계시의 말씀이 우리의 최대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금년 사순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이 절기를 그저 흘러 보내지 말아야 한다. 핵심은 영적 무딘 생활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내가 살고 가정이 회복되며 세상에 평화가 깃들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피라미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듯 몸부림치는 투쟁이 수반되어야한다.
1. 사순절의 유래
사순절(四旬節, Lent)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부활주일 전야(Easter Eve)까지이다. 1순은 10일이므로 4순은 40일이 된다. 사순절을 영어로 Lent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만물의 소생을 뜻한다. 사순절의 전통은 그리스도가 무덤 속에 있었다고 믿어지는 단 40시간에서 기인한다. 후에 이 40시간이 연장되어 6일이 되었고 6일은 다시 6주간으로 늘어났다. 사순절이 6주간으로 토의된 것은 AD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였다. 이를 계산하면 6주×7일-6일은 36일이다. 36이란 숫자는 1년 365일의 1/10에 해당한다. 헌데 36일이었던 것이 731년 샤를마뉴(Charlemagne)대제 시대 다시 4일을 더 첨가하여 40일이 되었다. 따라서 사순절은 부활절로부터 46일 전에 시작되며 이 중에서 주일(6회)을 제외한다. 주일을 뺀 것은 이날이 작은 부활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순절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금식을 행하던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이때는 또한 세례 받을 사람들을 준비시키기 위한 기간으로 사용되었다. 이들은 사순절 기간 집중적인 학습과 신앙훈련, 기도와 금식 등을 하며 세례준비를 하였다.
2. 사순절에 대한 교회의 전통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을 재의 수요일 또는 성 수요일(Ash Wedesesday)이라고 부른다. 처음 사순절이 시작되었을 때에는 사제들이 신자들의 이마 위에 재로 십자가를 그려주며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고 말해주었다. 재"(ash)는 회개의 상징이다(렘6:26, 욘3:6, 마11:21). 초대교회는 이 기간에 금식을 강조했으며 자기절제와 회개로 하나님께 한 걸음 가까이 나아가기에 힘썼다. 그들은 특별히 쾌락을 추구하는 일은 삼가했으며 화려한 옷을 입거나 좋은 음식을 먹는 것 등 호화생활을 자제하였다. 대신 성도들은 예배와 기도생활 등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자선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중세에는 이 기간 동안 교인들이 회개의 상징으로 자루 옷을 입고 머리에는 재를 뿌리고 다녔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은 8세기 이후로 가면서 많이 완화되기 시작했다. 14세기에는 금식기도 대신에 절식기도가 행해졌다. 15세기에 와서는 정오에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관습이 되었고, 저녁시간에도 간단한 식사인 콜레이션(collation)이 허용되었다.
3. 현대 교회의 실태
사순절에 대한 크리스천의 인식은 어떠한가? 초, 중세 교회처럼 욕망을 제어하며 신(神)께로 나아가기 위한 투쟁이 있는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너무 세속문화에 물들어 있다. 개인이든 교회이든 목적지향적이다. 더 많은 소유를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심신은 지쳐만 간다. 성도들은 주일마다 교회에 가고 수많은 모임들에 참가하지만 심령에 참된 평화가 없다. 종교행위만 반복할 때가 많다. 그 증거로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다”(잠14:13).
사역자들은 어떠한가? 목회자나 선교사의 얼굴에 여유와 기쁨과 생기가 묻어나는가? 불행하게도 저들의 심령 속에는 그리스도보다 여러 가지 일로 가득 차 있다. 늘 사역 때문 부담을 안고 살며 영혼에 쉼이 없다. 사명자들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TO BE가 TO DO보다 우선적이며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실제 환경 속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일에 휩싸이곤 한다. 그러면 말씀이 심령에 뿌리내리기보다는 겉돌게 되고 예수의 생애와 관련된 절기인식도 희박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렇게 이멘트적 행사에 열정을 쏟다보면 자아(自我, ego)를 잃고 휘청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4. 사순절에 해야 할 일
사순절기는 신앙의 성장과 영적 훈련을 위한 좋은 기간이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활동을 절제하고 수도사들처럼 조용한 침묵의 정좌를 사모하는 것이다. 주님의 고난을 자기 것으로 체화하지 못하면 십자가의 은혜를 촉촉이 덧입을 수 없다. 그러면 인간은 누구나 핍절된다. 좀 더 천천히, 깊이 주님과 연합되기 위한 몸부림치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매일 시간을 정하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예수의 고난과 죽으심을 묵상하며 나아가야 한다. 필요하다면 특별금식과 절제훈련을 해보는 것도 유익하다. 인간에게서 욕망은 경건의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순절 기간에 의식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걸림돌들이 되는 핸드폰, TV, 미디어, 취미생활 등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외형적인 준수가 아니다. 욕망을 절제하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보다 적극적으로 삶을 돌아보며 그리스도와 연합을 추구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웃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COVID19로 인하여 사망자만 6백만 명을 넘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두려움과 분노와 아픔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20대 대선결과로 인하여 민심이 갈라진 논바닥처럼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하나님께 탄원해야 할 기도제목이 어찌 한 둘이랴!
맺음 말
사순절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제자도를 훈련하는 기간이다. 경건과 절제, 희생과 나눔, 성찰과 회복이 사순절의 진정한 의미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예수의 향기난 사람으로 변화되어가야 한다. 오랜 신앙경륜임에도 옛 사람의 성품이 변하지 않는 것은 문제이다. 성화는 한 순간에 되어질 수 없다. 산고의 고통 속에서 견고한 자아가 부서져야 한다. 십자가 아래서 자기가 죽어질 때 그리스도가 나타난다.
우리는 고난을 먼발치에서 보는 것으로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질 수 없다.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한 사람들만이 그의 부활의 능력도 덧입을 수 있다. 더불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세상을 향한 선지적, 제사장적 소임을 다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마저 자기 안위만을 추구하며 세상을 등진다면 미래는 더욱 불행해질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 샬롬을 위한 대사들이다.
jrsong007@hanmail.net
03.19.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