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火焰) 가운데 있는 우크라이나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침략 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평화를 깨뜨리는 살상은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다.

교회는 선지적 사명으로 이 땅의 군왕들을 선도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3월 1일 일간지 데일리 미러는 "푸틴의 공격으로 슬리퍼 차림의 유니콘 파자마를 입은 어린 소녀가 희생됐다"라며 "1면에 축 늘어져 있는 6세 어린 소녀의 발끝과 아이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료진의 모습을 실었다. 어찌 이 뿐이랴. 전쟁포화의 한복판은 참혹하다. 21세기, 세계가 한 공동체로 변모하고 있는 마당에 이 무슨 비극이란 말인가? 이번 전쟁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안타깝다. 화가 난다. 이유를 불문하고 침략전쟁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하루라도 빨리 무고한 인명이 더 이상 희생되지 않도록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내 식구, 내 민족이 아니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 자세는 인간으로서 인간됨을 포기하는 것이다.

 

1. 우크라이나의 일반적 상황 

   

우크라이나(Україна)는 동유럽에 위치해 있다. 국토 면적은 603,700km²(크림 공화국과 세바스토폴 제외 시:576,700km²)이다. 이는 한반도보다 약 3배 크기에 해당되며 세계에서는 44번째요 유럽에서는 러시아 다음으로 큰 나라이다. 우크라이나는 초르노젬(흑토)이라 불리우는 비옥한 평원, 스텝(Steppe) 고원이 있으며 이곳을 지나가는 강이 흑해로 흘러들어간다. 인구는 Worldometer 통계에 의하면 2022년 현재 기준 43,298,824명이다. 

민족 구성은 우크라이나인이 77.8%, 러시아인이 17.3%이며 고려인도 12,000명 정도 있다. 법적 공용어는 우크라이나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이 나라는 입법, 사법, 행정 등 3권이 분리된 의회민주주의 국가이다. 대통령은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임기는 5년이며 1번의 중임이 가능하다. 

우크라이나는 24개 주와 1개 자치공화국, 주와 같은 지위를 갖는 2개 특별시로 이루어져 있다. 종교는 거의 대부분 동방정교회 또는 로마가톨릭교회에 동방 전례 의례를 따르는 합동 동방 가톨릭교회 계열이다.

 

2. 우크라이나의 역사

   

우크라이나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최소 기원전 5000년 경 부터이다. 17세기 중반에는 이 나라 중부에 카자크 수장국이 세워져 백년 이상 러시아 차르국의 압력을 견뎠으나 결국 폴란드와 러시아에 의해 분할되었다. 우크라이나가 근대적 독립국가의 모습을 잠시나마 갖추게 된 것은 1차 세계대전 도중 발생한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소련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과정에서였다. 

1991년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연방이 와해될 때 독립을 선언하였다.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의 여파로 인한 신(新)냉전의 기류가 크림반도까지 일었다. 2013년부터 2014년 사이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대규모 시위로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 정권이 붕괴되고 반러, 친서방 성향의 임시정부가 구성되었다. 이에 크림 자치정부 및 러시아계 주민들은 2014년 2월 영토 내의 공항을 장악하고 독립 움직임을 보였다. 이후 러시아에 의해 장악된 크림 자치공화국은 3월 16일 국민투표를 진행했다. 결과는 독립 및 러시아 귀속 찬성이 96.77%로 나타났다. 이로서 크림 공화국은 3월 18일 러시아연방에 편입되었다. 

 

3. 우크라이나의 갈등 요소

   

모든 현상은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금번 러시아의 침공사태가 있기 전까지 우크라이나는 화로(火爐)를 안는 것처럼 불안한 요인이 있었다. 그것은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과 러시아 사이에 “끼인 국가”라는 지정학적 약점이다. 원래 이 나라는 1991년 독립하기 전까지 러시아와 한 몸체인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이었다. 이에 러시아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가 핀란드처럼 중립적 위치에서 존재하는 것은 봐줄 수 있지만 냉전시절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30년 동안 나토의 동진정책에 대해 러시아 “목구멍에 칼을 들이 댄다”고 표현했다. 

또 다른 이유는 우크라이나가 내부 민족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점이다. 우크라이나의 동남부에는 17%에 달하는 러시아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다수는 친러, 반우크라이나 세력이다. 왜냐하면 민족, 언어, 종교, 문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러시아와 동질성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 크림반도의 러시아 귀속과 이번에 푸틴에 의해 승인된 도네츠크·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승인도 같은 맥락이다. 

 

4. 우크라이나의 정치 리더십

   

모름지기 국가지도자는 혜안과 지혜와 지략이 있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한 후에 동분서주하는 것은 이미 늦다. 현대 전쟁은 엄밀히 말해 승자와 패자가 없다. 첨단무기의 발달로 인하여 엄청난 후과(後果)과 따라오기 마련이다. 이에 최상의 시나리오는 가능한 전쟁 자체를 피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는 아쉬움이 있다. 1991년 독립 이후 30여 년의 기간이 있었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독립 초기 우크라이나는 소련에서 승계한 핵탄두 4천여기를 필두로 세계 3위의 핵 강국이었다. 비옥하고 광활한 토지와 대규모 중공업 단지 등 산업 여건도 결코 나쁘지 않았다. 

당시 우크라이나가 핵만 포기하지 않았어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핵 포기는 신생국가로서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 이후 친러파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혈시위 끝에 탄핵되었다. 이어서 친서방 파인 포로센코와 현 젤렌스키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많은 혼란을 야기했다. 이 과정에서 2004년 오렌지 혁명과 2014년 러시아의크림반도 합병과 친러 반군의 돈바스 내전이 줄을 이었다. 

 

5. 우크라이나의 항전과 전망

   

젤렌스키 대통령과 국가지도부는 미국의 피신 권유도 거부하고 수도인 키에프에서 끝까지 항전을 다짐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4일 이후 27일까지 약 2만2000명이 우크라이나로 넘어갔다고 밝혔다. 지난 25일에는 우크라이나의 해병대 공병인 비탈리 샤쿤 볼로디미로비치는 남부 헤르손주(州) 헤니체스크 다리를 폭파하는 작전에 자원했다. 그는 지뢰를 설치한 뒤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올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폭했다. 국외탈출을 거부한 대통령과 러시아 탱크를 맨몸으로 막아선 민초들의 저항은 이미 정신력의 승리를 보여준다. 

세계는 그런 우크라이나를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 하지만 전망은 그렇게 밝지 않다. 칼을 빼든 푸틴 정권이 뭔가 소기의 목적 없이 쉽게 물러서겠는가? 그는 이미 핵카드까지 언급하며 겁을 주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엄청난 불행이 닥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서로 냉정을 찾고 서로 윈윈(WinWin)하는 해결점을 모색해야 한다.

 

맺음 말

 

2월 25일 CNN 방송에 따르면 뉴욕본부에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열렸다. 내용인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결의안이 상정되었다. 허나 안건은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채택되지 못했다. 이에 세르히 키슬리차 유엔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기도를 위해 잠시만 침묵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믿지 않는다 해도 잠시 평화를 위해 도와주십시오. 이미 숨진 이들의 영혼을 위해, 또 희생될지도 모르는 영혼을 위해 기도합시다”라고 묵념을 요청했다. 그러자 잠시 침묵이 흘렀고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며 우크라이나 대사에게 동조했다. 

그렇다. 우리는 신앙의 유무를 떠나 이 땅에 평화를 깨는 어떤 도전들도 배척해야 한다. 전쟁은 인간 사회에서 있어서는 안 될 최고의 아픔이기 때문이다. 세계 교회가 나서야 한다. 3월, 꽃 피는 봄철에 지구촌 한 모퉁이에서 화염이 일어나서야 되겠는가?

jrsong007@hanmail.net

03.0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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