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2021년 8월 30일 밤 11시59분 아프간의 수도 카불 공항에서 미국의 마지막 C-17수송기가 이륙했다. 그 순간 카불의 밤하늘에는 축제의 폭죽이 터뜨려졌다. 이로써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으로 불린 아프간전이 20년 만에 공식 종료되었다. AP통신에 따르면 중동과 중앙아시아 군사작전을 책임진 케네스 프랭크 매켄지 중부사령관은 "가슴 아픈 일이 많다. 우리가 빼내고 싶었던 모든 이들을 빼내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 며칠 동안의 구출 상황은 1975년 4월 29-30일, 베트남 사이공에 있었던 프리퀀트 윈드 작전(Operation Frequent Wind)을 연상케 했다. 세계 최강인 미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아무튼 전쟁은 이유를 막론하고 인간 사회에서 최고의 비극이다. 이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아픈 마음으로 저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탄원해야 해야 한다. 비록 선지자 요나가 니느웨 사역을 감당할 마음이 없었다 해도 하나님의 눈은 그 곳 백성을 바라보고 계셨기 때문이다.
1. 일반적인 상황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은 파미르고원의 남서쪽에 있으며 국토 대부분이 해발고도 1,000m를 넘는 고원에 위치한다. 수도는 카불(Kabul)이며 행정구역은 34개 주(velayat)로 구성되어 있다. 국토는 세계에서 41번째로 넓은 국가로서 652,230 km2(한반도의 3배)이다. 인구는 약 3,700만 명이다. 그 중 가장 큰 종족인 파슈툰인(40%) 이외에 여러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식 언어는 다리어와 파슈토어로서 국가 전체에 다중언어 생활이 보편화되어 있다.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99%가 넘는 사람들은 무슬림으로 그 중 90% 정도가 수니파이며, 10%는 시아파이다. 기독교인은 약 0.1% 미만으로 추정한다.
탈레반은 파슈툰족을 기반으로 하는 정교일치주의 단체다. 이는 흔히 다수파인 수니파의 한 분파로 분류하지만 파슈툰족 고유의 토속적 신앙과 전통 문화가 함께 혼합된 교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스스로를 이슬람 근본주의라고 칭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정통 이슬람과는 거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여성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 극단적이며 반인륜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2. 아프가니스탄의 근대 이후 역사
아프가니스탄은 1919년 8월 19일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70년대 말부터 내전 상태가 고착화된 세계 최빈국이자 후발 개발도상국이다. 이 나라는 반세기 동안 초강대국과 2번 싸우고 내전이 3번 터졌으며 정치체제가 6번 바뀔 정도로 정세가 혼란스러웠다. 아프가니스탄은 주변의 거대 세력들이 각축장으로 삼은 곳이 되었다.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은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대영제국과 러시아 제국 간의 전략적 경쟁이자 냉전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 시기는 1813년의 러시아-페르시아 조약부터 시작하여 1907년의 영러 협상으로 끝을 맺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아프가니스탄은 남하 정책을 추진하는 러시아와 그에 맞서 식민지 인도를 지키려는 영국이 완충지대로서 충돌한 곳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입맛에 따라 인위적으로 국경선을 그었다.
그 결과로 민족국가가 구성되지 않은 체 파슈툰인들의 거주 지역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후 국가로서 아프가니스탄의 소수민족들은 서구 열강들의 패권 전략에 맞서 싸우는 저주의 땅으로 전락했다. 그 과정에서 영국, 러시아(소련) 그리고 21세기에는 미국이 차례로 손을 털고 나갔다. 이로서 아프가니스탄은 제국의 무덤이라고도 불린다.
3.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이 전쟁은 미국이 9.11테러의 주범인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을 지원하는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함으로 시작되었다. 그 기간은 2001년 10월 7일부터 2021년 8월 30일까지 장장 20년이나 되었다. 이는 미국 역사상 21세기 최초이자 최장기 전쟁이었다.
전쟁 초기 미국은 탈레반을 축출한 뒤 친미 정권을 세우고 2011년 5월 1일에는 알카에다의 수장인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 전쟁의 수령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해하기 힘든 점은 아프간의 정부군이다. 저들은 미국의 천문학적인 지원 속에 병력 수도 30만 명이나 되었다. 헌데 어떻게 7만의 탈레반 군대에게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는가? 미국의 물자만 빼먹은 오합지졸이었단 말인가? 결국 미군철수 발표 후 세달 반 동안에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힘 한번 못쓰고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이 전쟁으로 인한 참상은 어떠한가? 연합뉴스 통계에 의하면 미군 2,448 명+NATO 동맹군1,144명+국제구호단체 444명+언론인 72명=총7,954명이다. 아프간인은 정부군 66,000명+탈레반군 51,191명+민간인 47,245명=총164,436명이다. 이밖에 부상자는 셀 수 없으며 아프간 난민은 500만 명으로 추산한다. 미국은 전비로 2조 달러를 쏟아 부었다.
탈레반이란 파슈툰어로서 학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주요 종족인 ‘파슈툰인’(afğān)의 ‘땅’(stān)이란 뜻이다.
오랜 전쟁으로 피폐된 저 땅과 백성에게 여호와의 샬롬은 요원하단 말인가?
4, 하늘만 바라보아야 할 아프간의 기독교인
이슬람 무장단체인 탈레반은 금년 8월 15일 아프간 수도 카불을 장악했다. 예상보다 빠른 점령으로 현지 기독교인들의 혼란과 염려는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년간 미국의 영향권 아래서 적지 않는 선교사들과 기독교의 NGO 단체들이 그곳에서 봉사를 했다. 저들의 헌신으로 아프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백성들이 생겨났다. 정확한 집계는 알 수 없다.
Open Door 선교회의 통계에 따르면 “3만 명가량의 지하교회 교인들”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앞으로이다. 한 현지인 사역자의 말에 의하면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급작스런 상황에 여권조차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탈레반의 1차 작업은 기독교인들을 색출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에 저들 크리스천들은 국경을 넘거나 아니면 더 깊이 지하로 숨어들어야 한다. 순교의 위험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그간 아프간에서 사역했던 선교사들은 대부분이 철수했다. 설사 누군가 위장 신분으로 남아 있다고 해도 현지인 크리스천들을 돕기란 쉽지 않다.
한국 선교계는 어떠한가? 2007년 샘물교회의 피랍 사태 이후 아프간은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되었다. 그 이후 외교부의 특별승인 없이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땅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누가 저들을 도울 수 있단 말인가? 부모가 아기만 낳고 그 이후 “나 몰라라” 한다면 이 얼마나 비정한 짓인가?
맺음 말
8월 26일 아프간에서 두 차례 대사직을 역임한 라이언 크로커 전 미국대사는 이날 CNN 인터뷰에서 “미국의 아프간 철군은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의 사기를 크게 북돋았다. 아프간에서 일어난 일은 아프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 파키스탄 탈레반, 그밖에 무엇이든지, 그들은 승기를 타고 있다”고 말했다.
대사의 언급은 미국이 아프간에서 이렇게 황망히 철수함은 새로운 불씨를 낳게 되었다고 경고한 것이다. 두고 볼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탈출 실황을 보면서 마음 아프고 뭔가 불길한 예감이 없지 아니했다. 지난 20년간의 전쟁 상흔은 어떠한 덫으로 번질 것인가? 그 누구도 예단하기 어렵다. 당장에 저 땅에 남겨진 수많은 부역자들과 기독교로 결신한 현지인들의 운명이 위태롭다. 탈레반 정권의 압제아래서 여성들의 인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아가 3,700만 아프간 백성들에게 누가 여호와의 샬롬을 선포할 것인가? 구약의 선지자 요나를 다시 불러올 수는 없지 않는가? 오호통재(嗚呼痛哉)라.
jrsong007@hanmail.net
09.25.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