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우리 개신교에서 현대선교를 말할 때 랄프 윈터 박사를 빼놓고 얘기할 수 있을까? 2005년 “Time Magazine”은 윈터 박사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지도자 2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2008년 “북미선교지도자회의”에서는 선교발전에 남긴 그의 업적을 기려 평생공로상(Lifetime of Service Award)을 수여했다. 그는 확실히 20세기 후반 현대 선교의 흐름을 이끌어온 선교계의 거장이었다. 그는 선교사이자 선교훈련가, 선교학자로서 30여년을 세계 선교에 헌신해왔다. 그는 선교전략,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에서 깊이 있는 통찰력을 보여주었고 특별히 선교적 과업을 명확히 정리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풍부한 현장 경험과 이론을 밑바탕으로 세워진 선교전략들은 지금도 여러 선교지에서 응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삶과 사역은 많은 선교사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21세기 선교는 갈수록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 더구나 지금은 COVID19로 인하여 세계 선교가 꽉 막혀 있다. 만일 고인이 살아 있다면 뭔가 큰 방향타 역할을 할 수 있을 터인데 아쉽기 그지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남긴 주옥같은 선교 이론들을 창의적으로 적용하며 심화하는 가운데 어두운 터널을 뚫고 나가야 한다.
1. 생애
랄프 윈터 박사는 1924년 LA에서 휴고/헤이절 윈터 부부 사이에 태어났다. 그는 부친의 영향을 받아 처음에는 공학기사가 되기 위해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에 입학했다. 이후 콜롬비아대학교 사범대학을 거쳐 코넬대학교에서 언어학, 인류학, 수학통계 분야의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신학교육은 프린스턴신학대학원에서 했다. 대학원을 마치기 전 그는 간호사 훈련을 갓 마친 로베르타 헬름과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나중에 과테말라의 마야 인디안 선교에 헌신해서 10년간 일하게 되었다. 그는 선교사로 사역 중 맥가브란 박사의 초청으로Fuller신학교에서 선교대학원 교수로 10년간을 재직했다.
윈터 박사는 Fuller에서 안정된 지위를 버리고 미국 세계선교 센터(US Center for World Mission)를 설립하는데 헌신했다. 윈터 박사는 만년에 로베르타 여사를 사별한 후 바바라 여사와 재혼했다. 그는 암 투병 중에도 마지막까지 선교적인 지도력을 발휘하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그리고 2009년 5월 20일 밤 9시경 캘리포니아 주 파사데나에 있는 자택에서 가족들과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84세로 영면했다.
2. 사역
윈터 박사는 역사적 모임으로 기록된 1974년 제1차 로잔대회에서 미전도종족과 미개척지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알렸다. 이후 1976년 설립한 미국 세계선교 센터와 윌리엄캐리대학교(William Carey International University)를 기지삼아 전방개척 선교운동을 전개하며 세계 선교 운동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그는 윌리엄캐리 국제대학(William Carey International University), 윌리엄캐리 출판사(William Carey Library), 미국선교학회(American Society of Missiology), 개척선교회(Frontier Fellowship), 개척선교학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Frontier Missiology), 글로벌기도다이제스트(Global Prayer Digest), 퍼스펙티브스 훈련과정(Perspectives on the World Christian Movement) 등을 창립하고, 창간하는데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그는 1976년부터 1990년까지 미국 세계선교 센터의 최고 책임자로 1990년부터 1997년까지는 윌리엄캐리대학교의 최고 책임자로 섬겼다. 또한 전방개척선교회(FMF: Frontier Mission Fellowship)의 대표로 헌신하는 동시에 저술에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저서로는 “미션퍼스펙티브”, "랄프 윈터의 비서구 선교운동사”가 있으며 편저로는 “퍼스펙티브스1, 2”가 있다.
랄프 윈터 박사는 금세기 최고의 선교 이론 및 전략가이다.
그의 대표적 업적은 미전도 종족과 전방 개척선교 분야를 창안한 것이다.
현대 선교는 그의 선교이론을 사역현장에 접목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3. 당부
윈터 박사는 2011년 11월 방콕에서 개최된 ASM(Asian Society of Missiology, 아시아선교학회)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그는 이때 서구선교의 실수 12가지를 언급했다. 그는 아시아 선교가 향후 서구 선교의 실수에 대해 무조건 모방하지 말 것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①대학교가 아닌 성경학교를 설립 ②땅 위의 천국’이 아닌 ‘천국에의 구원’만을 강조 ③교단이 선교기관을 거치지 않고 선교사를 직접 파송 ➃전문 선교보다 일반 선교에만 치중 ➄현지의 헌신적인 신자들이 스스로를 ‘기독교인’으로 부르며 서구교회와 동일시하게 함 ➅선교사 없이 물질만 후원 ➆장기 선교사 대신 단기 선교사 파송 ➇선교의 비즈니스와 비즈니스 선교를 이해하지 못함 ➈질병의 근절이 아닌 치료로 그침 ➉전쟁이 아닌 평화만 생각함 ⑪과학을 적대시함 ⑫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복음전도 등이다.
이 중에서 우리 한인 세계선교는 무질서한 선교사 파송, 물량주의적 선교, 전문인보다 목회자 중심 선교, 세상의 변화에 뒤쳐진 사역 등에 특히 유념해야한다.
4. 평가
그의 공로는 첫째로 이론가로서 역할이다. 선교라는 어려운 주제를 체계화하고 저변을 넓게 했다. 그는 선교신학 측면에서 초대교회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적 흐름을 구분하면서 전략적 전환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교회와 선교단체의 역할을 균형 있게 정리했고, 세계 복음화의 남은 과업을 명확히 하면서 교회선교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둘째로 선동가로서 역할이다. 교회의 선교방향을 선회하도록 유도했다. 미전도종족에 대한 정의와 전방 개척선교 운동의 두 대표적 쟁점(Issue)을 통해 세계선교계가 미전도종족을 복음화를 위해 달려가게 했다.
셋째로 교육가로서 역할이다. 북미 최대의 선교집회인 Urbana73에서 선교에 헌신한 이들을 돕기 위해 ‘퍼스펙티브스’ 과정을 고안한 이후 30년 동안 이 훈련이 지속되며, 전 세계의 수많은 그리스도인을 사도적 열정을 가진 선교적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켜왔다.
넷째 행정가로서 역할이다. 하나님이 주신 상상력을 따라 미국 세계선교 센터(US Center for World Mission)를 설립하는데 헌신하게 된다. 그 때 그 캠퍼스를 구입하는데 1,500만 달러가 필요했으나 수중에 있는 돈 100달러를 계약금으로 치루고 나머지는 수년간 모금해서 충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본 기관의 책임자로서 소임을 다했다.
맺음 말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는 추모예배에서 “저는 이 분을 거의 40년 동안이나 사랑하고 존경해왔습니다. 그분을 통해 저는 교인들을 위해 자리 수를 늘릴 것이 아니라 교인들을 선교의 현장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이렇게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선교를 각인시켰고 동원되도록 길을 제시했다. 그의 비범함은 세계선교를 내다보는 혜안뿐만 아니라 이론적인 체계정립을 했으며 나아가 본인이 삶의 마지막까지 강조해온 전시생활양식(wartime lifestyle)의 실천에 있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재화를 재분배하는 전략적인 삶을 의미한다.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 남은 것은 단 두 벌의 양복과 구두가 전부였다. 그는 세계선교를 위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전략적인 검소함을 추구해왔다. 그는 확실히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위해 예비하신 선교지략가였음에 틀림없다.
앞으로 세계선교를 위한 미완성 과업의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무엇을 어떻게 헤쳐가야 한단 말인가? 위기는 기회이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 랄프 윈터 박사의 이상을 품고 세계선교를 위한 바통을 이어가야 한다. 제 2, 3의 청출어람(靑出於藍)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jrsong007@hanmail.net
08.14.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