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삼각구도(The Holy Triangle)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이는 아프리카 속담이다. 그곳에는 사막이 많고 정글도 있어 멀리 가려면 길동무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생긴 속담이 아닌가 싶다. 선교는 어쩌면 멀고 험난한 길을 가는 여정이다.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그간 한인세계선교는 자타가 공인하듯 빨리 가기위해 애썼다. 그 양태는 각개전투식이었다. 그 결과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반세기가 지난 지금 한인선교가 세계 여러 곳에서 밀려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한마디로 열심은 있었지만 체계적이거나 전략적이지 못했다. 

COVID19로 세상이 변혁되고 있는 이때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나아갈 방향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만해도 람보식이 어느 정도 통했다. 하지만 현대는 팀워크 없이는 한계상황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제 개인이나 개 교회 중심적 선교를 지양하고 좀 더 프로적인(Professional) 접근을 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거룩한 삼각구도(Holy Triangle)”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는 선교사, 후원교회, 파송단체가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한 틀 속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1. 선교사(a missionary 宣敎師)  

   

스펄전 목사는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가능하면 목회의 길에 들어서지 말고 일단 선택했으면 생명을 걸고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문화권에 목회자로 부름 받은 것도 이러할진대 선교사는 오죽하겠는가? 

선교사는 사도라는 말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즉, 이방인 영혼 구원을 위해 보냄을 받은 자란 뜻이다. 선교사는 수많은 영적, 심리적, 육체적, 환경적 압박을 받는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확고한 소명의식이 결여되면 선교지에서 찾아오는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기 어렵다. 

선교사에게 가장 큰 고통은 외적인 환경보다도 고독감이다. 따라서 선교사는 공적기관으로부터 후원과 파송을 받은 유기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 선교사는 선교부의 지시에 무조건 맹종해서도 안 되지만 반대로 자신을 파송하는 지교회의 바램이나 선교본부의 전략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지휘부를 무시한 독불장군식의 선교는 성경적이지도 않으며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2. 후원교회(Sending Church)  

   

일반적으로 본국에 있는 후원자나 교회는 선교를 이원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경기장에서 목회자들은 뛰고 성도들은 스탠드에 앉아 응원하는 격이다. 선교란 전방에 있는 선교사의 몫이고 후원자는 단지 뒤에서 기도와 헌금으로 밀어준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사고의 틀은 옳지 못하며 선교를 위축시킨다. 선교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하시되 헌신자들을 통해서 하신다. 성령이 선교의 주체이다. 그러므로 후원이란 말은 어패가 있다. 만일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자기가 가진 옥합을 깨뜨린다면 그 자체가 선교이다. 중요한 것은 전방에 나가 있는 선교사와 후원교회가 일체감 있게 동역하는 것이다. 선교사가 갖는 아픔과 짐을 교회도 나누어져야 한다. “당신은 선교사이니까 마땅히 희생하라”라는 인식은 문제가 크다. 

일반적으로 후원교회들이 후원금 보내는 것 외에 무관심 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어떤 교회는 필요 이상으로 선교사를 달달 볶기도 한다. 매달 사역보고를 하라는 것이다. 전쟁터에 나가 있는 전사는 싸움에 올인(All In)해야 한다. 헌데 후방에서 자꾸 부담을 줄 때 신경이 곤두서게 되며 사역에 집중할 수 없다. 후원교회는 선교사를 신뢰하고 그를 편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할 때 선교사는 삼중의 스트레스 속에서 자기 페이스(pace)를 잃을 수도  있다. 

 

거룩한 삼각구도는 후원교회-선교회-선교사로 엮어진다.

세계화란 기능 면에서 분업화, 전문화, 조직화 되는 것이다. 

선교 역시 팀워크로 세계화를 지향할 때 시너지 효과를 낳게 된다. 

 

3. 선교본부(Mission Headquarters)

   

선교본부는 이 땅에 하나님의 선교가 신속하고 원활히 펼쳐질 수 있도록 선교사와 후원자 사이에서 교량적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주된 목표는 사역의 극대화이다. 이를 위해 지혜를 짜고 힘을 모으며 여러 관계자와 연대한다. 본부는 결코 선교사를 다스리는 상급기관이 아니라 그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섬기는 행정기관이다. 그 기능은 크게 인사, 교육, 재정, 홍보 분야로 나눈다. 이 업무는 전문성, 다양성, 창조성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선교본부에는 유능한 실무자들이 선교사를 파송하는 이상으로 보강되어야 한다. 

한인선교의 가장 큰 아킬레스(Achilles)건은 선교본부 사역에 대한 인식도가 너무 낮은 데 있다. 그 여파로 대다수 선교부들은 정보나 행정 그리고 재정에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구심점을 잡고 지휘를 해야 할 본부사역이 부실하니 선교가 짜임새 있게 될 리가 없다. 심장이 없는 몸통을 가정할 수 있을까? 전략사령부가 없는 전선은 어떻게 될까? 문제는 이 사역의 중요성, 특수성, 시급성을 알면서도 우선순위에서 늘 뒤로 밀린다는 것이다. 한인선교의 미래를 위해서는 교회들이 선교사를 지원하듯 선교기관들을 적극 밀어주어야 한다. 

 

4. 세 기관의 상관관계    

   

현대선교는 선교사와 후원교회 그리고 선교본부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17C 독일의 루터파 목사 웰츠(Justian von Weltz)는 선교회는 모금자(promoters), 관리자(operators), 선교사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는 이른바 선교사역을 위한 ‘거룩한 삼각관계’(Holy Triangle)이다. 선교사는 지역교회(Local Church)의 후원을 받으나 선교회(Mission Organization, Para-Church)에 소속되어 그 정책과 전략에 따라 사역을 감당한다. 그런데 선교사는 이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와 행동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복잡한 삼각관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 GMS는 운영세칙을 정했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주체는 GMS가 되고, 후원의 주체는 후원을 감당하는 파송교회가 된다. GMS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선교사의 신분이나 행정 및 사역에 관해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파송교회와 협력하여 모든 사무를 처리한다”(GMS 운영규칙 제4장1절). 좋은 내규이다.

 

맺음 말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역동적(Dynamic)이어야 한다. 건강하고 좋은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거룩한 삼각구도가 한 대안이다. 한인선교사들은 대체로 나홀로 사역을 하고 있다. 그들은 소속선교부가 아예 없는 자도 있고 설령 있다 해도 본부가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들은 어떠한가? 전문성이 결여된 체 직접적으로 선교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곁에 파송기관이 있음에도 의뢰하기를 꺼려한다. 그렇게 하면 내 교회가 선교의 중심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서구에 비해 한인선교기관들은 너무나 열악하다. 한국에는 약 120개 이상의 자생 선교단체가 있다. 그중 전략본부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곳은 1/10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게 본부사역이 취약한 것은 가치 인식도가 낮고 지원이 약하기 때문이다. 

반세기를 훌쩍 뛰어넘은 한인열방선교 이대로 좋은가? 이제는 미래의 공동과업을 위해 선교적 구도를 좀 더 짜임새 틀을 짜야 한다. 그것은 선교사와 후원교회 및 선교본부가 맞물리되 서로 엇박자를 내기보다 성령 안에서 유기적 조합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jrsong007@hanmail.net

03.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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