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선교 모라토리엄이란 무엇인가? 이는 피선교지인의 입에서 “선교사 여러분! 도움이 고맙기는 하지만 이제 좀 자리를 비켜 달라. 왜냐하면 당신들이 우리 현지교회의 성장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을 들은 선교사나 선교하는 교회에서는 어떤 마음이 들까? 너무나 황망하고 슬플 것이다. 그간 근대 서구선교는 하나님나라 확장과 인류공영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빛이 강한 곳에 어두움도 짙듯이 그들의 과(過)도 적지 아니했다. 힘을 바탕으로 한 제국주의적 선교 양태는 이미 한계성에 도달했다. 오늘의 한인 세계선교는 어떠한가? 서구선교의 과오를 지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만의 부끄러운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것은 마치 집안에 개스(Gas)가 가득 찬 것처럼 선교현장에 긴장과 갈등을 유발시킨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라는 속담처럼 선교유예(Mission Moratorium)는 결코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님의 조명 아래 선교 모라토리엄이 나오게 된 원인을 분석하며 선제적으로 방향을 조정해가야 한다. 나아가 무조건 퍼주는 선교를 탈피해 현지교회가 리더십을 갖고 건강히 세워지도록 사역을 펼쳐야 한다.
1. 선교 모라토리엄의 유래
모라토리엄(Moratorium)이란 라틴어로 ‘지체하다’란 뜻의 ‘모라리(Morari)’에서 파생된 말이다. 한 국가가 경제·정치적인 이유로 외국에서 빌려온 차관에 대해 일시적으로 상환을 연기하는 ‘지불유예(支拂猶豫)’를 의미한다. 채무를 반드시 갚겠지만 현 상황에서 갚을 능력이 없어 지급을 일정기간 유예하겠다는 선언이다.
선교 모라토리엄은 1917년 1차 세계대전 이후 동부아프리카 가나에서 사역한 스위스 바젤선교회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당시 바젤선교회는 현지교회로부터 외국 선교사들의 철수 요구를 받았다. 핵심은 현지교회가 외부자들을 의지함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되었다. 이후 1971년 5월. 동부아프리카 장로교총회 총무였던 케냐인 존 가투(John Gatu) 목사는 WCC(세계교회협의회)와 USNCC(미국교회협의회)에 선교유예(Moratorium on missionaries)를 최소한 5년 동안만 실시해보자고 충격적인 제안을 하였다. 즉, 현지교회는 선교사와 선교비 그리고 선교단체의 도움을 받지 말고 자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자는 것이었다.
2. 선교 모라토리엄의 대표적 사례
1971년 존 가투(John Gatu) 목사의 문제제기 배경은 서구 선교사들의 지도력과 재정지원이 현지 교회의 자립과 자치를 막고 있다는 데 기인했다. 존 가투의 제안 이후 동아프리카 장로교회는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본 교단은 '자립'을 뜻하는 스와힐리어인 'JITEGEMEA'(지테게메아)를 교단의 로고로 정했다. 그리고 모든 정책을 완전 '자립'에 맞췄다. 이어서 스코틀랜드장로교회가 가지고 있던 선교지 재산을 자력으로 구입했다.
약속대로 선교사들은 5년 간 케냐를 떠났다. 케냐를 중심으로 동아프리카장로교회는 이 사건 이후 변하기 시작했다. 교세가 커져갔으며 결과적으로 5배정도 성장한 450만 명에 이른 것이다. 또한 이 교단의 총회장은 국회가 개원할 때 대통령과 함께 나란히 참석할 정도로 사회적 비중이 커졌다. 특히 동아프리카장로교회의 성장은 타교단의 성장도 견인해 케냐 교회는 걸출한 인물들을 연이어 배출했다.
WCC 6대 총무를 지낸 사무엘 코비아 목사가 케냐 감리교회 출신이다. '아프리카 종교와 철학'의 저자 존 S. 음비티 박사 같은 세계적인 신학자도 케냐 출신이다. 이처럼 40여 년 만에 동아프리카장로교회의 교세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교단의 자생력을 키운 데 근본 이유가 있다. 이러한 사례는 필리핀과 다른 나라에도 여럿 있다.
3. 선교 모라토리엄을 유발하는 일반적 현상
어느 시대나 종교가 세속화로 물들어 가면 모라토리엄의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 종교 타락의 전형적인 양상은 지나치게 부와 권세와 명예를 탐한 데서 온다. 오늘의 기독교 교회는 어떠한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신앙의 이름으로 교묘하게 위장된 맘몬이즘(mammonism)이 자리하면서 세상적 가치에 물들어 가고 있다. 개혁이나 갱신 운동이 없이 맘몬이즘에 사로잡히면 그 종교는 틀림없이 부패하게 되어 있다.
과연 교회가 세상을 개혁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이 교회를 개혁하고 있는가? 요한 웨슬리(John Wesley)는 “부가 증가하면서 교만, 분노, 육적 욕망, 삶의 자만, 세상에 대한 사랑도 비례적으로 증가해 종교의 형식은 남아 있어도 그 정신은 손쉽게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다”라고 교회에 대해 경고를 했다. 선교 역시 같은 맥락이다. 선교가 주님의 관심인 사람보다 사람의 관심인 물질과 보이는 것에 치중할 때 선교는 타락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모라토리엄을 일으키는 시발점이 된다.
선교 모라토리엄은 기독교 선교의 부끄러운 단면이다.
제국주의적 하향식 선교는 현지교회를 삯꾼처럼 종속하게 한다.
교회는 이제 주는 선교에서 함께하는 선교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4. 선교 모라토리엄 예방을 위한 출구 전략
선교사는 첫째로 최대한 현지인과 현지문화를 존중하며 그들과 일체감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 현지인의 문화수준과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선교사가 현지인의 생활문화와 괘리가 크면 그들의 마음 문을 열 수가 없다.
둘째는 교과서적인 선교원리로 사역에 임하는 것이다. 랄프 윈터 박사는 현대 선교에 맞게 4P원리로 잘 설명해놓았다. 그 단계는 개척(Pioneer), 양육(Parent), 협력(Partner), 참가(Participant)이다. 이러한 패턴을 따를 때 피 선교지 인들은 발 빠른 성장을 하게 되며 사역의 부흥도 기대할 수 있다.
셋째는 팀 사역이다. 같은 지역 선교사들끼리는 물론 현지인 동역자와 함께 큰 집을 구상해야 한다. 텐트는 혼자 칠 수 있지만 100층의 큰 집은 힘을 합쳐야 한다. 서로의 은사와 준비됨을 존중하고 함께 가야 한다. 한 사람의 100보보다 100사람의 한 보가 낳다.
넷째는 선교사는 하나님의 킹덤을 생각하며 늘 개척자로 사는 것이다. 선교사가 피땀 흘려 사역을 일구면 알게 모르게 자기 킹덤을 지향하기 쉽다. 더구나 선교헌금이 많이 투자된 인프라(基盤施設)가 갖추어지면 정말 그 땅을 떠나기 어렵다. 훌륭한 선교사는 세상에 마음을 비우고 대신 주님으로 채우는 자이다. 주님은 공생애를 출구전략을 생각하며 임하셨다.
맺음말
선교는 인간의 문화이식이나 알량한 자선사업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나라의 확장이며 그리스도의 주권적 통치가 피선교지 영역에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선교의 핵심은 현지인이며 그들이 선교의 꽃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시작부터 철저히 현지인의 눈높이에서 시작하며 그들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선교는 현지문화에 대한 바른 성경적 이해가 필요하다.
과거의 무서운 제국주의적(Imperialism) 선교나 여전히 존재하는 가부장적(Paternalism) 선교는 이제 끝장내야 한다. 일방적인 주는 선교에서 이제는 “그들과 함께, 그들을 통해 전진하는 선교”로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선교사가 자기 킹덤을 세우겠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선교 모라토리엄은 언제든지 재발될 수 있다.
선교사는 하나님의 선교에서 불쏘시개처럼 사라져 없어져야 한다. 이것이 현지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초석이다. 세례 요한의 고백이 새롭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
jrsong007@hanmail.net
02.27.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