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2021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세상은 COVID19로 인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미션을 잘할 수 있을까?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저들 현지인들은 전통 문화에 둘러싸여 있다. 선교사도 자기 문화의 옷을 입고 있다. 따라서 선교가 열매를 맺으려면 복음을 막거나 훼손하기 쉬운 인간 문화의 틀을 벗겨야 한다. 이는 상황화의 문제이다. 상황화는 복음이 현지인에게 적실성(Relevance)있게 들려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다. 이러한 과정이 무시될 때 복음은 이질적이며 충돌을 가져올 수 있다. 결과적으로 상황화에 대한 개념과 대책 없는 선교는 현지 나라뿐만 아니라 동료 선교사에게도 큰 부담을 주게 된다.
1. 상황화에 대한 이해
상황화(常況化, Contextualization)란 시대와 대상 그리고 문화에 따라 변화하는 방식으로 영원불변의 하나님의 말씀을 적합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감 되었지만 그 표현양식(modes)은 그렇지 않기에 시대와 대상에 맞게 상황화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는 선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선교학자 브루스 니콜스(Bruce Nicholls)는 복음주의 선교사들이 선교에 필수적인 상황화 작업에 취약했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종종 복음의 순결성(the purity of the gospel)을 지키려는 열의에 차서 정작 복음을 듣는 자들의 관습, 사고 패턴, 가치체계, 행동양식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 민감치 못한 때가 많았다”고 평가했다. 그렇다. 선교에 있어서 생명의 씨앗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잘 발아할 수 있게 토양도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
2. 상황화에 대한 문제의
선교학적으로 상황화에 대한 의식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서구 식민지들은 2차 대전이 끝나자 독립 국가들로 탄생하게 되었다. 이 신생 독립국가들은 강력한 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 제각기 전통문화에 근거한 새로운 민족적 정체성을 찾고자 시도하였다. 교회도 이러한 정치적 지각 변동 아래서 영향을 받았다. 그 동안 서구 문화와 함께 들어온 복음을 구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WCC 중심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 진영에서는 자기 민족과 문화를 우선시 하는 정치, 사회적 복음을 제창한 것이었다. 중국의 3자 교회가 대표적이다.
이에 반해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상황화의 용어를 진보진영과 구별해 보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1974년 로쟌 대회에서 바양 카토(Byang Kato)에 의해서 ‘상황화’라는 용어가 소개되었다. 이는 복음이 비기독교적 토양에 제시될 때 왜곡되거나 희석됨이 없이 문화적으로 의미 있게 교통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상황화에 대한 해석은 오늘 날도 여러 갈래로 전개되고 있다.
3. 상황화에 대한 3가지 입장
첫째는 상황화를 거부하는 태도이다. 19세기 전후 선교사들은 옛 관습들을 이교적인 것으로 여겨 거부해버린 적이 많았다. 이러한 발상은 선교사들의 자문화 중심주의(ethnocentrism)에 기인하고 있다. 선교사들은 복음을 자신의 문화와 동일시함으로서 다른 문화를 나쁜 것으로 판단하곤 했다. 둘째는 상황화를 수용하는 태도이다. 이 경우는 옛 관습 및 문화들을 기본적으로 선한 것으로 본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어도 전통의 관습 및 문화를 그대로 유지해도 상관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처럼 무비판적 수용은 기독교를 혼합주의에 빠지게 한다. 셋째는 상황화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옛 방식에 대한 무비판적 거부와 수용이 둘 다 선교사역을 저해하는 것이라면 이제 비판적 상황화로 선별한다. 옛 전통과 관습들이 비성경적이 아니라면 그 현지문화를 존중하고 토착화하는 흐름이다.
씨앗이 발아하기 위해서는 토양도 중시되어야 한다.
현지 문화를 경시하는 전투적인 선교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상황화는 복음이 토착민에게 적실성 있게 전하기 위한 방편이다.
4. 성경과 상황화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말씀이다. 말씀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그의 행하심이다. 그 말씀은 당시 유대인의 문화적 관점에서 조명해야만 이해될 수 있는 내용들이 많다. 말씀이 인간 문화라는 그릇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씀은 어떠한 인간 문화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초문화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절대적인 계시와 상대적인 문화를 구별해야 한다. 바로 이것 때문에 말씀과 문화 사이에는 언제나 긴장이 있다. 성경이 말하는 메시지의 규범적 성격은 초문화적 원리들로서 절대적이다. 반면에 문화는 상대주의적이다. 그러므로 복음 전달자에게 필요한 것은 피전달자의 문화 및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그들 공동체의 자결권을 인정하는 문화적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5. 상황화에 대한 올바른 자세
언더우드를 비롯하여 초창기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기독교를 한국에 소개하는 목적이 한국을 서구화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들은 한국문화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 도박과 술, 조상제례와 무속신앙적인 요소는 배격하였지만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건물양식과 전통문화를 존중했다.
작금의 한국 선교는 어떠한가? 우려되는바 일부 선교단체와 사람들이 일방통행 식 제국주의적 서구 선교모델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 건물, 교회이름, 예배 형태, 기도 양식 등 한국교회 문화를 주입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현지의 개척교회에 꼭 선교사의 파송교회 이름으로 명명할 필요가 있는가? 조용한 수행의 문화인 불교 권에서 “주여 3창으로 통성기도”를 강조하는 것이 합당한가? 또한 열대나 아열대 기후 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국식 새벽기도를 강조해야 하는가? 그들은 더운 날씨 때문 낮에 오침을 하고 밤에 활동을 한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환경이다. 그곳에서 한국식으로 살면 오래 버틸 수 없다. 입항순속(入鄕循俗)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로마에 가서는 그곳 사람들의 풍속과 문화를 따르라는 의미이다.
맺음 말
상황화란 단순히 한 시대의 선교전략이거나 선택상황이 아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의 사람들을 위해 우리 문화 속으로 들어오셨던 것처럼 전도자가 자기를 부인하고 그들의 상황 속으로 녹아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행위이다. 다시 말해 선교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타문화권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양육하여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살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적 상황화는 선교를 위해 필요조건임에 틀림없다. 이를 경시하고 단일 문화적 접근방식은 현지에서의 복음전파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 한인 세계선교도 성질 급하게 현지문화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십자군처럼 힘으로 밀어 붙이는 사역은 정말 제고되어야 한다. 비본질적인 것 때문에 본질적인 역사가 막힌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어차피 선교현장에서 주인공은 선교사가 아니라 현지인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jrsong007@hanmail.net
01.16.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