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지탄을 받은 종교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2020년 들어 한국에서는 종교가 사람들에게서 큰 지탄을 받고 있다. 금년 초 대구의 신천지교가 COVID 19를 전파하는 주된 온상이 되었다. 한풀 꺾이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전광훈 목사가 주도한 8.15 광화문 집회를 통해 또 다시 창궐하기 시작했다. 이밖에도 지난 반년 간 여기저기 교회의 모임들로 인하여 이 역병이 똬리를 틀곤 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하여 종교인들이 세상에서 지탄을 받고 있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천주교나 불교에 비해 개신교를 배타하는 분위기가 제일 크다. 미국에서도 여러 종교집단들이 사회에 풍파를 일으켜 왔다. 이단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들이 덕을 못 끼치고 있다. 

익히 알다시피 금년은 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지난 9월 27일 기준 코로나 확진자가 캐나다 인구와 비슷한 3,300만 명과 사망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세기적인 재난 앞에 국가들과 자치단체들이 힘겹게 싸움을 하고 있다. 위중한 이때에 종교인들이 세상을 선도하지는 못할망정 부담을 주어서야 되겠는가?

 

1. 종교적 대립으로 인한 불행했던 역사

 

“상상해 보라, 종교 없는 세상을! 자살 폭파범도 없고, 9·11도, 런던폭탄테러도, 십자군도, 마녀사냥도, 화약음모사건(1605년 영국 가톨릭교도가 계획한 제임스 1세 암살미수 사건)도, 인도 분할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도,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대량학살도, 유대인을 예수 살인자라고 박해하는 것도, 북아일랜드의 분쟁도, 명예살인도,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번들거리는 양복을 빼입은 채 텔레비전에 나와 순진한 사람들의 돈을 우려먹는 복음 전도사도 없다고 상상해 보라.”  

위 내용은 옥스퍼드대학 석좌교수이자 세계적 과학대중서 작가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쓴 “만들어진 신”의 서문 가운데 한 부분이다. 요컨대 종교가 없다면 세상이 얼마나 평화롭고 인간이 얼마나 행복해지겠느냐는 뜻이다. 이 글을 보면 종교만큼 나쁜 것도 세상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살펴보면 그 안에는 위선적 기만과 폭력적 선동이 교묘히 숨어 있음을 보게 된다. 

 

종교들이 세상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종교모임들이 역병 확산에 주된 온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상을 선도하지는 못할망정 지탄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2. 양면성을 무시한 가정

    

생각해 보라. “종교 없는 세상을!” 이라는 문장에서 종교 대신 다른 명사를 대입해보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인간에게 과학이 없었으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우슈비츠, 굴락(소련의 강제수용소), 히로시마로 상징되는 비극은 아예 없었을 것이다. 인류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그 당시 최첨단 무기로 전쟁과 테러를 자행해왔다. 그것이 돌도끼든, 칼이든, 총이든, 원자폭탄이든, 생화학무기든 불문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과학을 없애버려야 할까? 

과학이 없어진다고 해서 전쟁과 테러도 함께 없어질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이처럼 “상상해 보라, ~이 없는 세상을”이라는 어법은 부정적인 면을 들춰내는 편협성을 지니고 있다. 세상사 대부분은 양면성을 띄고 있다. 어떤 것의 부정적인 현상 때문 주된 기능이 발휘될 수 없게 한다면 이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라는 격이 될 것이다.  

3. 종교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한 대표적 사례

     

종교에 대한 반감은 로마의 철학시인 루크레티우스(BC 94?~55?)에서 도킨스에 이르기까지 2000년을 이어온다. 대체로 인간의 반종교성은 그 자체에서 나왔다기보다 그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과오에서 나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16세기 성 베드로 대성당의 신축비용 등을 확보하기 위해 로마가톨릭 교황이 면죄부를 발행한 것이었다. “상자 속으로 던져 넣은 돈이 짤랑하고 소리를 내는 순간 구원받는다”는 탁월한 슬로건과 효과적인 판매 전략으로 면죄부는 불티나게 팔려 세상을 어지럽혔다. 이러한 탐욕의 막장은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루터에 의해 시작된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Sola fide, sola gratia, sola scriptura)이란 기치는 중세 1000년간의 영적 암흑기를 끝내는 전환점이 되었다. 하지만 말씀 중심으로 출발한 개신교(Protestant)도  19세기 산업혁명 후부터 금권(Mormonism)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특별히 20세기 이후 교회와 교단들의  당파적 싸움은 그칠 날이 없었다. 내부의 부끄러운 민낯을 수 없이 드러냈다. 불교 등 타 종교들은 어떠한가? 피장파장이다. 특히 이단들의 득세는 도를 넘어 세상에 큰 풍파를 일으켜왔다. 따라서 종교로 인한 사건, 사고들은 인간에게 심한 거부감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4. 기독교의 전례 모습

 

"처음에 교회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남자와 여자의 교제 모임이었다. 그 후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해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가서는 제도가 되었다. 그 다음에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다. 마침내 미국으로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다."  이 말은 미국 상원의 채플린이었던 리처드 핼버슨(Richard C. Halverson) 목사가 1984년 미국장로교총회에서 행한 설교 중 한 말이다. 그의 지적은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교회(Ecclesia)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들의 공동체로서 사도성, 통일성, 보편성, 거룩성을 띄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왔음을 빗대어 언급한 것이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어떻게 되었는가? 일제치하에서 크리스천과 교회는 만인이 우러러보는 위상이었다. 헌데 지금은 세상에서 동네북처럼 아무한테서나 얻어맞고 “X독교” 라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 “한국영화 '쿼바디스'를 제작한 김재환 감독은 “지난 30년간 교계 지도자들은 무조건 큰 교회에 관심을 두고 “맘몬과 바벨”을 노래했다고 질타한다. 교회가 십자가의 정신을 잃은 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멀리한 나머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핼버슨 목사와 김재환 감독의 문제제기는 한쪽 면만을 지나치게 들춰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저들의 문제제기를 겸허히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맺음 말

2020년, 인류는 COVID19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환난 앞에 서 있다. 한 사람도 아니고 온 지구촌의 사람들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발길을 멈춰선 적이 있었던가? 생명의 위협 속에서는 서로가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불행하게도 불화살이 종교에 떨어지고 있다. 일부 종교 집단들과 모임들이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에 원인 제공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 개신교를 향한 세상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COVID19 사태로 말미암아 갑자기 돌출된 것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기독교를 비롯하여 여타 종교들에 대한 누적된 실망들이 표출되고 있을 뿐이다. 이곳 북미주에는 어떠한가? 서로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저마다 판단들을 하고 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생명 공동체이다. 그러함에도 우리가 여러 종교들 중 하나(One of  them)로서 취급되어진 것은 소금처럼 세상에서 녹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질식할 것 같은 종교생활을 멈추어야 한다. 타조처럼 머리를 모래에 쑤셔 박고 현실을 도피하는 닫힌 신앙생활은 너무 무책임하다. 어려울 때일수록 독수리처럼 높이, 멀리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만이 우리의 표상이다. 이를 알면서도 거룩한 공교회가 세속화, 이념화, 정치화의 바람을 계속 탄다면 선교의 문은 더욱 닫히고 말 것이다.

jrsong007@hanmail.net

10.0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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