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영속성을 띠어야 한다. 선교사는 교회와 단체로부터 타 문화권으로 파송 받은 사명자이다. 선교사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사역이 제한적이며 유한하다. 그렇기에 자칫하면 사역이 당대로 끝날 수 있다. 선교사역이 후대로 맥을 이어가려면 제반 사항에 대해 기록을 한 후 그 노하우를 다음 세대에게 전승해주어야 한다. 우리 한인 선교사들은 서양 선교사들에 비해 사역적으로 높은 성과가 있으나 기록하고 보존하는 면에서 무척 약하다.
기록의 중요성은 성 어거스틴이나 사도 바울을 통해서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기록물 중 가장 쉽고 순수성을 띤 것은 일기이다. 이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기에 가식이 없다. 자신이 저자요 독자이다. 따라서 우리 한인 선교사들이 오대양 육대륙에서 각자의 선교일기를 쓴다면 본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한인 세계선교의 장래를 위해 대단히 유익한 역사적 자료가 될 것이다.
1.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난중일기: 사천해전
“우수사(右水使)가 오지 않아 홀로 제장들을 거느리고 새벽에 발진하여 곧장 노량에 이르니 경상 우수사가 와서 합류하였다. 적이 정박한 곳을 물었더니 사천(泗川) 선창에 있다 하여 곧바로 그곳에 이르렀는데 왜인들은 이미 상륙하여 산 위에 진을 치고 있었고 산 아래에 전선을 줄지어 대놓았다. 거전(拒戰)이 매우 완강했는데, 나는 제장들을 지휘하여 일시에 돌진하게 하였다. 화살을 비처럼 쏘아댔고 각양의 총통을 쏘아대니 그 대란이 폭풍 우레와 같았다. 적의 무리는 두려워하며 달아났는데 화살에 맞은 자가 몇 백인지 부지기수였다. 왜인의 수급을 많이 베었고 적선 십삼 척을 불살랐다. 군관 나대용이 탄환을 맞았다. 나 역시 왼쪽 어깨에 탄환을 맞아 등까지 관통했으나 중상에 이르진 않았다”(맑음).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전란 중에 쓴 일기”라는 뜻으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이 임진왜란 7년(1592년-1598년) 동안 쓴 것이다. 이는 현재까지도 초고본 8권 중 7권이 남아서 충남 현충사에 비치되어 있다. 난중일기는 1962년에 대한민국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으며 201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인간의 생사가 달린 전장터에서 거의 매일 기록하여 후세에 전한 난중일기는 우리민족에게 보배로운 유산이 아닐 수 없다.
2. 안네 프랑크(Anne Frank)의 일기
“밖에서는 새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아. 죽음 같은 고요함이 곳곳에 뒤덮여 있어. 그만 깊은 땅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만 같아. 날개가 부러진 채 캄캄한 밤에 혼자 둥지를 지키며 노래를 부르는 새 같은 심정이지. 어른들은 도대체 왜 전쟁을 일으킬까요? 어른들은 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까요?”(1943).
안네 프랑크는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1942년 7월부터 1944년 8월까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좁은 은신처에서 숨어 지냈다. 그녀는 13살이 되던 생일 날 붉은 체크무늬의 일기장을 선물로 받았다. 안네는 일기장에 “키티(Kitty)”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2년 동안 비밀 장소에 숨어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키티”에게 낱낱이 고백했다. 자유를 갈구하던 그녀는 1944년 8월 4일 밤 밀고를 받은 나치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유대인 학살지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안네는 1945년 3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불과 몇달전 영양실조와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안네의 일기'는 가족 중 유일하게 생존한 부친 오토 프랑크에 의해 출간되고 나서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3.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의 일기
"길고 길었던 뭍과 바다에서의 여행은 끝나고, 힘써 일할 사역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이르렀다. 여호와의 눈이 나를 살피고 계심을 느낀다. 그가 나의 모든 여정을 인도하셨고, 나를 위하여 할 일을 선택해 주셨으며 모든 걱정과 염려를 맡아 주셨다. 이제 그가 나를 행하며 견딜 수 있게 도와주실 것이다. 어찌 내가 행복하지 않겠는가?”(1890년 10월 13일).
이상은 한국에서 2대에 걸쳐 77년 동안 의료선교사로 헌신한 홀 선교사 가족 중 가장 먼저 한국에서 사역을 시작한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의 육필일기의 일부분이다. 이 일기에는 100년 전 로제타 선교사가 펼쳤던 구체적인 선교 내용뿐 아니라 함께 일했던 선교사들의 모습과 한국 여성들이 서양 의사의 치료와 복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등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당시 로제타 선교사는 일기를 단순히 글자로만 채운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진과 편지, 실물 자료 등을 첨부했다.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평가되고 있다.
4. 일기의 특성
일기는 하루 일과 중 개인적인 느낌이나 사고의 추이에 따라 기록하는 자유로운 산문이다. 이는 글쓴이의 주관적인 진술이 위주가 되므로 대개는 자전적인 기록의 성격을 띠게 된다. 결코 남에게 보이거나 출판하려는 의도 없이 쓴 것이기에 그만큼 진솔한 표현이 이루어진다. 그 형식은 시나 소설처럼 어떠한 제약이나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통문학양식으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일기는 의도적 변개(變改)가 가해지지 않는 기록으로서 중요시되기도 한다.
일기를 쓰므로 얻어지는 유익은 무엇인가? 저마다 하루를 돌아보며 자기 성찰을 할 수 있게 한다. 감정과 생각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바른 인성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다. 매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줄여준다. 불확실한 기억을 확실하게 해준다. 어휘력과 문장력이 길러진다. 훗날 역사적 자료가 된다.
일기는 작성자가 작가이면서 동시에 유일한 독자이다.
선교사는 타 문화권에서 여러 문제들에 맞닥뜨리며 고독한 투쟁을 한다.
선교사의 일기는 그 내용에 따라 문학성 및 사료(史料)로서 가치가 크다.
5. 선교일기 쓰는 법
독일의 문호 괴테(Goethe)는 “가장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고 말했다. 세계적이란 의미는 비교우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각 민족의 고유성, 특수성, 독창성,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얘기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 성을 논할 때 민족이라는 집합체에서 개인으로 전용해 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선교사는 타문화권이란 독특한 환경에 있기에 개성 있으면서도 영감 있는 글을 쓸 수 있다. 이는 역사적 자료로서 뿐만 아니라 문학성으로서 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일기는 그야말로 부담을 가지면 안 된다. 거미가 거미줄 뽑듯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내용인즉,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은 일들을 나열할 필요가 없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콕 집어 써야 한다. 먼저 제목을 쓰고 한 논지로 디테일하게 언급함이 좋다. 만일 같은 날에 두개 이상의 사건이 있을 때에는 전자와 별개로 제목을 따로 적고 서술해야 한다. 복합적이면 초점이 사라지게 된다. 참고사항으로는 가능한 매일 쓰되 분량이나 철자와 문법 등 전통적인 규칙에 매이지 말아야 한다.
맺음 말
성웅(聖雄)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428년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전투의 현장 감각과 도전을 주고 있다. 안네의 일기 역시 2차대전시 사망의 음침한 그늘 아래서 숨죽이며 살았던 그 아픔을 느끼게 한다. 로제타 셔우드 홀의 일기는 한민족을 향한 사명인으로서 본인의 신앙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여기 언급한 세 종류의 일기는 각각 형식과 내용이 다르다. 그러나 독자들을 긴장시키며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그 힘은 무엇인가?
저들은 생사의 극한 상황에서 영혼의 울림을 글로 표출했기 때문이다. 폐부에서 나온 일기는 이렇게 역사 속에서 빛을 발한다. 선교사는 땅 끝에서 고독한 투쟁을 하는 자들이다. 저들의 하루하루는 바람결에 날리기 아깝다. 순수문학인 일기에 담아야 한다. 그러면 옥구슬처럼 선교역사가 꿰어지고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영속성을 띄게 될 것이다.
jrsong007@hanmail.net
08.08.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