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성경 안에 정년을 명시한 곳은 없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민족 통치의 사역을 넘겨준 것처럼 지도력의 물려줌은 있지만 법으로 때를 정하고 그 법 때문에 물러난 경우는 없다. 그러니까 정년이니 은퇴니 하는 것은 사람들이 훗날 정한 법이고 규정일 뿐이다. 그렇다고 자기 자리를 100년지기 하겠다는 것은 과욕이고 노욕이다. 필자로선 은퇴제도가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은퇴 후 일거리와 먹거리 걱정을 안 할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모든 지도자는 은퇴 후 앉았던 자리와 서 있던 자리가 청명하고 청결해야 한다. 그것은 늙을수록 자기 몸관리, 정신관리, 신앙관리를 잘해야 하는 이치와 같다. 떠난 자리에 정신적 비듬이 수북이 쌓여 있거나 영적 쓰레기가 나뒹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인일수록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하다.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인 김일순 박사가 쓴 글 가운데 “숨겨야 할 노인본색 여덟 가지”라는 글이 있다. “예전에는 안 그러더니 요즘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들으면 ‘아 내가 늙기 시작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면서 젊은이들에게 노인취급 당하지 않으려면 나이를 숨길 게 하니라 노인본색부터 숨겨야 한다는 것이다.
①얼굴이 무표정해진다. 화난 듯 무표정한 얼굴은 상대방에게 호감을 얻지 못한다. 얼굴에 주름과 검버섯이 가득해도 미소나 웃음은 상대방에게 나이를 잊게 만드는 효력이 있다. ②불만이 많아지고 잔소리가 심해진다. 나이가 들면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이나 젊은이들의 행동 등 모든 것이 못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현재가 과거보다 낫다. 단지 우리와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③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 낸다. 화를 잘 내는 것도 노화현상이다. 화를 내면 상대방 뿐 아니라 화를 낸 자신의 건강에도 해롭다. 화를 다스리는 법만 익혀도 수명을 크게 늘릴 수 있다. ④감사하다는 말에 인색해진다. ⑤몸에서 냄새가 난다. 노화로 인해 피부대사가 불완전해져 자칫 냄새가 날 수 있다. 항상 몸을 깨끗이 하고 내복 등 옷을 자주 갈아입자. ⑥주위가 지저분해진다. ⑦옷 색깔이 칙칙해진다. 나이가 들면 밝고 화려한 색깔의 옷을 기피하게 된다. 밝고 화려한 색깔은 활기차 보일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좋다. ⑧허리가 구부정해진다. 운동을 하지 않아 척추가 굳어지기 때문이다. 나이에 맞는 체조 등으로 체형을 반듯하게 유지하도록 하자.
김 교수가 지적한 노인본색이 드러난다면 어느 누가 그를 반길 것인가? 여기저기서 따돌림받고 사람들이 곁을 떠난다면 얼마나 슬픈 노후인가? 필자에게도 청춘 시절이 있었다. 나팔바지도 입어 보았고 장발도 해보았다. 그리고 은퇴니 원로니 하는 것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라고 여겼다. 그러나 누가 가고 오는 세월을 막으르 수 있는가? 누구는 늙고, 누구는 젊다는 공식은 없다. 지금 한창 사역현장에서 기염을 토하는 아무 아무개도 머잖은 날 은퇴군에 설 것이다.
원로목회자가 지켜야 할 덕목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목회하던 B목사님 이야기가 떠오른다. 오래전 고인이 되셨지만 40대 초반에 담임목사가 되었고, 신학교 강의, 부흥회 인도, 총회장 사역까지 화려하고 분주한 날들을 보냈다. 50대 초반이던 어느 주일 낮 설교시간에 “저는 65세에 은퇴하겠습니다”라고 선포했다. 65세가 가까워지자 당회원들 사이에 목사님 은퇴 준비 이야기가 솔솔 나돌기 시작했다. 총회가 정한 정년이 70세인데 왜 은퇴를 해야 하느냐는 사람들과 목사님이 공언하신 사안이니까 65세에 은퇴를 해야 한다는 사람들로 양분화 현상이 일면서 교회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B목사님은 약속대로 65세 되는 해 12월로 은퇴하겠다고 선언하고 교회 내분을 수습했다. 그리고 65세 되는 해 12월말 교회를 떠났다. 은퇴 후 3년이 지난 어느 날 B목사님이 필자에게 남긴 말은 “절대로 조기 은퇴한다는 말 하지 마시오”였다. 은퇴나 정년은 ‘오너라, 오지 마라’ 하는 것과 상관없이 빠른 템포로 다가온다. 그러면서 나는 예외겠거니 하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목회란 지금 잘나간다고 뻐길 필요도 없고, 잘 안된다고 자학할 필요도 없다. 젊다고 기고만장할 이유도 없고, 은퇴가 내일모레라고 절망할 필요도 없다. 평소 필자가 생각하고 지키는 원로의 설 자리에 대해 몇 가지 나누면 다음과 같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