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철 목사 (라스베가스갈보리장로교회)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가셨고 그 가버나움의 어떤 집에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어떤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리니 그 집에 들어갈 틈이 없을 만큼 허다한 무리가 모여왔습니다. “집에 계시니” 본문의 이 집을 The amplified Bible은 “아마 베드로의 집일 것이라”고 주를 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은 베드로의 집 앞에 있는 가버나움 회당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그 가버나움 회당의 터나 기둥들은 남아 있는데 그곳 사람들은 그 회당에서 예수께서 본문의 중풍병자를 고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집에 계셨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집에 계신지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 계신 곳에 사람이 모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집에 계시지는 않습니다. 어떤 집은 닫혀져 있습니다. 예수를 밖에 세워두고 문을 닫아 놓은 집이 많습니다. 문을 굳게 닫아두니 예수는 밖에 계실 수밖에 없습니다(계 3:20). 어떤 때 예수는 우리가 초청을 하지 않아도 집에 들어오시는 수가 있습니다(눅24:36/예수 부활 후 11제자와 다른 문도들이 집에 있을 때). 그러나 예수는 항상 “들어오시도록” 하는 초청을 받아들이십니다(눅 24:29/엠마오로 내려가든 두 제자가 예수를 강권해서 유하게 함).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계3:20). 공기가 빈곳에 채워지기 위해서 밀고 들어가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의 마음의 문이 열려있을 때에 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몇 가지 새로운 은혜와 교훈을 배우려고 합니다.
1. 예수는 황송하게도 집에 들어와 주십니다(1). “예수께서..........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기다리노니......”(계3:20.) “지존무상 하여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 하는 자가 이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사57:15).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먹도록”(계3:20)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시자고 하십니다. 구유에 누우셨든 주께서 초라하고 가난한 자를 지나가시지 않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주 예수께서 황송하게도 내 마음속에, 내 집에, 우리 교회에 들어오시려고 하십니다. 문을 엽시다! 통회함으로 엽시다! 겸손하고 황공한 마음으로 엽시다! 2.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그 집을 채우십니다(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님이 들어와 계시면(내 마음에, 가정에, 교회에) 사람을 끌기 위한 세속적 오락이나 접대가 필요 없습니다. 주 예수께서 들어오시면 예수와 함께 새 친구들을 많이 데리고 오십니다. 주의 영광이 하나님의 집 성전에 들어오시면 하나님의 집을 친히 채우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이신데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마음의 욕구와 갈망을 다 채워주실 수 있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그리하면 주께서 친히 들어오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주의 것으로 충만히 채우실 것입니다. 이 교회에, 이 하나님의 집에 예수 계시게 합시다! 그리하면 예수께서 들어와 계실뿐 아니라 이 집을 채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으로 사람을 끌려고 하지 맙시다! 예수로써 사람을 끌어들입시다!(문을 여는 법/성경애독, 기도, 회개, 겸손, 예수사모, 은혜사모, 주의 일하기 원함)
3. 예수님이 집에 들어오시면 그의 계신 소문이 퍼집니다(1). “예수께서.......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1)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예수 없는 것같이 결코 살 수 없습니다. 냄새 없는 장미, 빛깔 없는 황금, 빛 없는 태양 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장미 있는 곳에 냄새가, 황금을 색깔이 있고, 태양이 있으면 광명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시면 예수가 발산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들어와 거하시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밖으로 흘러 나갑니다. 예수님이 들어오시기만 하면 사방에 소문이 퍼져서 사람들이 운집해옵니다. 나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만나고 예수님 말씀 들으려고 모여듭니다. 우리 교회에 예수님 들어오시면 예수님의 사랑, 예수의 권능, 기사이적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옵니다. 예수 계신 소문이 퍼져 나가게 합시다! 좋은 소문이 퍼져 나가게 합시다! 예수님이 집에 들어오시면 예수는 다른 사람들도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연대로 두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밖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하십니다.
4. 예수께 오는 사람들은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4). 예수의 소문을 듣고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그 집 안과 밖을 둘러쌌고, 문이 막혀 있어서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이 그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때때로 복음을 듣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사람들의 앞길에 방해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한 사람의 죄인이 그리스도를 만나고자 할 때에 그에게 길을 터주지는 아니하고 자기의 구습대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고집 세고 이기적입니다. 그들은 주일마다 꼭 자기 자리를 지키고 떠나지 아니합니다. 규칙적으로 헌금합니다. 규칙적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다름 사람들을 돕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일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무리들처럼 중풍병자와 같이 구원 받아야 할 사람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찾아오는 사람을 낙심케 합니다.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이 더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아니고 들어오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지만 자기 밖에 모르는 경건생활은 사실에 있어서 찾아오는 사람에게 큰 방해꺼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에 있어서 우리의 대부분이 남에게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신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오늘 회개해야 합니다.
5. 다른 사람들을 예수께 데려오는 사람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길과 문을 막아서 들어갈 수 없으므로 지붕으로 올라가서 그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예수께 달아 내렸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 집에 예수께서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데려왔을 때 들어갈 수 없거든 지붕을 뜯고라도 예수께 가게 하십시오! 출입문 대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없거든 벽으로 광주리에 담아서 올리고 달아 내리십시다! 사람들이 “믿으라”는 말을 깨닫지 못하면 “오라”고 하십시다!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으려고 하거든 여러분이 친히 그 사람에게로 가십시오! 비난하는 사람이 떠들거든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사람들이 이웃들이 지붕을 뜯는(부수는) 광신자라고 여러분을 비난할 찌도 모릅니다. 그러나 죄로 병든 영혼들이 구원 받는 데 그 비난이 무슨 상관있습니까? 자기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면 다른 사람의 협력을 구하십시오.
6.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가 데려다 주어야만 그리스도께로 옵니다(3).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메고 예수께로 왔습니다. 만일 이 병자가 네 사람들이 메고 오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병신으로 살다가 병신으로 죽었고 결코 예수로 말미암아 고쳐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죄인을 예수께 데려가기 위하여 4가지가 필요합니다. (1)하나님의 율법 (2)하나님의 성령 (3)하나님의 말씀 (4)하나님의 종
7. 사람이 구원 받아야 할 것을 진실로 열망하면 도움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우리는 때때로 사람들 앞에서 “당신을 구원 받아야 한다”고 말할 때 그 말 듣는 것을 몹시 불쾌하게 생각하고 어떤 때는 그 말 듣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건강하다고 믿는 사람에게 “의사에게 가서 당신의 병을 고치십시오” 한다면 그 말은 우스운 말일 수 있지만, 병든 자에게는 그 말이 생명의 길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중병에 걸렸으면서도 병을 지적하고, 명의사를 가르쳐 주면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짜증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그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어 구원 받으라”는 말을 부끄러워하고,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는 구원에 관하여 깊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평민 빌립 집사의 지시를 기뻐했었습니다(행8:31). 또한 빌립보 감옥의 옥사장도 자신의 구원에 관하여 애타게 부르짖어 구원을 받았습니다(행16:30).
8. 사람이 고침(구원)받으면 그의 인생은 그것을 남에게 나타내 보일 것입니다(12). 중풍병자는 고침 받고 일어나 자기상을 들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갔습니다. 보는 사람들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면(예수께 접붙여 지면) 변하여 새사람이 됩니다. 태양은 연하게 하든지 굳게 하고, 소생시키든지 시들게 합니다. 중풍병자가 누워있었든 그 침대(상)를 그 장본인이 들고 나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충분한 증거였습니다. 죄 사함을 받은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아니!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남의 신세만 지던 사람이 남을 돕는 몸으로 변화됩니다.
9. 그리스도는 그에게 오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만족을 주시는 풍성한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병든 중풍병자에게 만족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병든 자를 데려온 그 믿음 있는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곁에서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기에 충분한 분이었을 뿐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도 만족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 “.....내게로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6:37).
여러분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여러분의 집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우리교회 곧 하나님의 집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예수님 계시는 곳에 사람들이 모입니다. 예수님 계신 곳에 나아온 사람마다 구원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