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영 목사 (워싱턴 메시아장로교회)
하나님께서 모세가 죽은 후에 새롭게 세워지는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은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였습니다. 지도자는 언제나 강하고 담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단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바로 먼저 리더를 무너뜨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님들은 마음을 강하게 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걱정하는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고 개 앞을 지나가면, 그 개가 짖는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 사람이 떠는 그 진동이 개의 촉감에까지 전달이 돼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떨지 마십시오. 두려워 마십시오. 우리의 대적마귀 앞에서 떨면, 그 마귀는 더욱 기세등등하여 우리를 위협하고 잡아먹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한다면, 사단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이사야 54장 4절의 말씀처럼 두려워말고 우리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며 혹여 우리가 물 가운데로 지나고 불 가운데로 지나는 어려움가운데 있다할 지라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물이 우리를 침몰치 못하며, 불이 우리를 사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수없이 기록돼 있는데 365번 기록되어있다고 합니다. 루마니아의 공산체제 하에 박해를 받아 옥중에 있던 범브랜트(Richard Wurmbrand) 목사님이 성경에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도대체 몇 번이나 있는지를 세어보았는데, 꼭 365번이더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하나님은 1년 365일 매일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이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지혜롭게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첫째, 허탄과 거짓을 멀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허탄이 무엇입니까? 여기 허탄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솨웨’라는 단어로, 이것은 ‘거짓되고 무가치한 것, 결과가 없는 것, 텅 비고 허망한 것’을 의미합니다. ‘거짓되고 무가치한 것, 결과가 없는 것, 텅 비고 허망한 것’, 그렇다면, 도대체 이것은 무엇일까요? 특히 머피(Murphy)라는 성경학자는 이는 일반적인 거짓말 이상으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가식이나 이중적인 태도를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허영심, 쓸데없는 욕심입니다. 괜히 이루지도 못할 야망이나 뭔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을 허망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행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어떤 것에 대해 남이 한다고 해서 나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 처지와 형편이 되지도 않으면서 큰 예식을 원하고, 큰 집을 원하고, 좋은 차를 원하며, 비싼 옷과 고급 레스토랑만을 고집하는 것은 일종의 허영심임이 분명한 것이지요. 그러나 허탄한 마음은 쓸데없는 욕심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또한 쓸데없는 걱정도 의미하고 있습니다. 결국 허탄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물질과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소모적인 삶을 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아굴은 허탄과 거짓말을 함께 묶어 이것들을 내게서 멀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8절 하반절로 9절입니다.
8절 하반절에 보면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라는 말씀을 NASB 성경은 “Give me neither poverty nor riches”라고 번역했습니다. ‘제게 가난도 부도 주지 마옵소서!’ 여러분 어떻습니까? 잠언을 보면 대개가 부요함을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로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표현들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이채로운 표현이죠? 그러나 여기서의 강조점은 부요함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강조점은 아무리 물질이 축복이고, 유익이 된다 하더라도 우리 삶은 절대로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따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부자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누군가 억만금을 준다 하더라도, 또 내 신분문제가 해결되고, 내 장래문제가 열리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과 하나님 또 그를 믿는 신앙생활과 바꾸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 58절을 보면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라고 할 때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의 삶은 오직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구함으로, 그의 은혜로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지금 아굴은 육신의 필요를 부정하는 극단으로 나아가지 않으면서도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간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그러한 삶을 채워주시고 더해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로 13절을 보면 아굴은 자신의 주변에서 어리석게도 오만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눈이 심히 높으며 그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왜 우리 인간은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않으려 할까요? 본문이 제시하는 인간의 대표적인 죄악은 바로 자신의 상태를 깨닫지 못하는 우매함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모르면서, 나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하여 몸을 씻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몸을 씻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는 아무리 자신의 코에 지저분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하여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 냄새를 풍기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온전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씻지 않으면 냄새나는 부정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날마다 자신을 씻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지혜로운 자입니다.
특히 여기서 아굴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는 어리석은 자는 배설물이나 오물로 더럽혀진 몸은 잘 알고 분별하여 깨끗이 씻어내면서도, 그러나 보다 중요한 영적 도덕적 더러움은 잘 깨닫지 못하고 그래서 결코 씻어내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사실은 이런 우매와 무지가 인간의 대표적인 범죄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보다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했습니다(마15:17-18). 그렇다면, 과연 내 삶에서 나를 더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3절은 바로 그 원인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눈이 심히 높으며 그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바로 그 원인은 교만입니다. 우리가 더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은 바로 회개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회개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그 교만함 때문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행위보다도 더 근본적인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실로 겸손하고 깨끗할 때, 우리의 생각도, 말도, 행실도 실로 깨끗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누가 뭐라 해도 깨끗하신 분이셨고, 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분은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삶을 사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겸손의 삶입니다. 바로 거기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고, 그래서 제대로 간구할 수 있고, 그러므로 제대로 치유 받을 수 있으며,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혜로운 삶, 그것은 오직 허탄과 거짓과 욕심과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아굴과 같이 허탄과 거짓을 멀리하고 진실 되게 살아가기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는 분명 해결될 줄 믿습니다.
아무리 힘든 이민생활이라도 그 무엇이, 그 누가, 우리를 힘들게 한다 할지라도 늘 하루하루 이와 같은 기도 가운데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승리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하는 삶, 그것이 바로 지혜의 삶인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남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2015년을 맞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