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의 전환점

(룻1:6-7)

박은일 목사 (시애틀 평강장로교회)

룻기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만이 아니고 온 인류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신다. 또한 가나안 땅의 기근, 엘리멜렉의 가정의 불행, 이방인과의 결혼, 죽음, 가난, 롯의 헌신적인 신앙과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이야기들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릴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오늘 본문은 나오미의 인생에 전혀 다른 두 전환점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1절에 베들레헴(떡집)을 떠난 것이 첫 번째 전환점이자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나오미에게는 두 번째 전환점이 있다. 그것은 좋은 전환점이었다. 6-7절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모압 지방에서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떠나고 돌아오려고” 하였다.

1. 나오미의 첫 번째 전환점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인생의 흉년이나 풍년이 들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잘 살기도 하고 못 살기도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앙의 보증으로 축복을 약속하신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거나,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먼저 나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아야 한다. 내 신앙이 침체되거나 믿음이 뒤떨어지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상태를 점검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을 때 말씀과 기도로 회복할 생각은 하지 않고, 보따리를 싸서 이민을 가버렸다. 하나님의 약속을 포기하고 세상적으로 성공하려고 모압으로 이사를 갔던 것이다. 아마 이 때에 모압은 훨씬 잘사는 선진국이었던 것 같다.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모압으로 내려간 결정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있었기에 내려가야 했고 또 다른 큰 이유는, 두 아들들이었다. 부모로써 몸이 약한 아들들을 위해서, 이곳에 있으면 안된다…라고 했을 것이다. 자세한 결과를 그 다음에 보여준다. 인생을 펼치기도 전에 두 아들을 잃었다. 그들의 생명을 모압에 갔다고 해서 보호를 주지 못했다. 그들의 결정은 철저히 인간적인 것이었으며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다.

이렇듯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타협하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과는 타협할 수 없다. 시험하실 때에, 순종을 요구하실 때에 타협할 수 없다. 하나님이 ‘가지 말라’ 하시면 어떠한 값을 지불할지라도 가면 안되고 하나님이 ‘만지지 말라’고 하시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만지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나하고 협상하지 말라’ 하시면 협상하지 말아야한다. 그렇다면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왜 가지 말아야 했던가? 몇 가지 살펴보기를 원한다.

첫째로, 하나님의 확실한 지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모압에 가라고 지시를 주시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기도하여야 알 수 있을 텐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베들레헴에서 짐을 싸고, 떠나겠다는 것은 엘리멜렉의 욕심이었다. 둘째로, 엘리멜렉은 창세기 때부터 내려온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곳이며 어떤 사람인지, 하나님의 사람이 가면 안될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1절에 말씀처럼 “엘리멕렉과 나오미는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다”고 그랬다. 나오미와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을 떠나, 마음이 이미 결정하였다.

본문은 신앙의 내려가는 순서를 보여주고 있다 ‘가서’(1절)라고 하고 있다.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갔다. 하나님에게서 이방으로 갔다. ‘들어가서’(2절) 모압 지방에 하나님의 자녀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 들어갔다. ‘거기 유하더니’(2절) 유한다는 것은 계속 머무는 것이다. 사탄은 거기 가게 하고, 들어가게 하고, 유하게 한다. 나오미는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슬픔과 공허, 절망만 남았다.

2. 나오미에게 두 번째 전환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가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주시고 망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인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엘리멜렉의 집을 치시지 않았다면, 나오미와 그의 자식들은 모압 땅에서 세상적으로 풍족하게 살면서 죄 짓고 살다가 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치셨기 때문에 나오미는 하나님께 돌아갈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나오미가 어떻게 돌아갈 마음이 생겼는가? 6절에 보면 나오미의 바른 결정을 보게 된다.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일어나야 한다. 주님 앞에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완벽한 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아프고 상하고 망하였지만,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를 찾으신다. 주님께 돌아가기 위해 일어나는 자들을 붙잡아 주신다. 그렇다면 나오미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가? 나오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이다. 6절에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다”라고 그랬다. 회복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나오미는 주님의 대한 사랑을 들었다. 양식을 주셨다는 것은 나오미에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고(기억) 계신다는 것이 그에게는 더 감격이었던 것이다. ‘나 같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 먼 이방 나라에 온 죄인도 하나님은 권고하시는구나. 망가지고 허물투성인 나를 기억하시고 계시는구나’ 이것을 들었기에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은 것이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주님의 사랑이 쓰디쓴 나오미의 인생에 가장 큰 빛으로 다가온 것이다.

눅1: 68에 보시면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라고 했고, 눅1:78에 보시면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서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라고 그랬다. 돋는 해가 무엇인가? 아침에 해가 나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나오미는 망가지고 실패했다. 도움이 절실할 때에 하나님의 긍휼을 인하여 인생의 즐거움과 승리, 곧 돋는 해는 오직 위로부터 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주님이 나오미를 돌아오게 하시고, 권고하시고, 강권하셨기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럴 때 나오미는 돌아왔고 그에게 복이 임하였다.

세상에 무궁무진한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나의 능력과 명철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이용하여 마음대로 살며 세상과 타협하며 다른 길로 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열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해서든지 돌아오게 하신다. ‘나는 누구의 손에 의하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의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날마다 찬양하기를 기도한다. 만나는 어려움과 좌절 또한 나를 영광의 자리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계획인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견고한 믿음과 기쁨,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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