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을 하는 성도

(룻 1:1-5)

이중무 목사 (멕시코 아름다운교회)

‘이름값을 한다’는 말은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주로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하나님의 자녀·하나님나라 백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는 이 말을 긍정적이고 소망적으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때=사사들이 치리(1절)

룻기의 시대적 배경을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라고 말씀한 것은 룻기가 종교적 도덕적 교훈을 주기 위한 전래동화가 아니라 확실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기록임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사사시대’는 첫 번째 사사 옷니엘 때부터(삿3:9, BC1367)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 때까지(삼상10:1, BC1025) 342년의 기간입니다. 이러한 사사시대의 영적, 도덕적, 사회적 상황을 한 마디로 표현해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17:6; 21:25). 즉 사사시대는 ‘무정부 시대·혼돈의 시대·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정의와 윤리부재의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분열했고, 전쟁·배교·우상숭배·타락이 범람했습니다. 결국 이 시대는 하나님을 버린 시대였습니다. 이런 암흑의 시대일지라도 나오미, 룻, 보아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심을 보여주는 것이 룻기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사사시대보다 더 악하고 타락한 시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대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신실한 남은 자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신실하게 이뤄가신다는 것이 룻기의 메시지입니다.

2. 등장인물(2절)

(1)‘엘리멜렉’과 ‘나오미’ ‘엘리멜렉’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시고 주권자가 되신다는 신앙고백이 담긴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그러나 그는 흉년이라는 고난이 닥쳐오자 자기 신앙고백과 맞지 않게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사29:13). 나오미는 “기쁨,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기쁨, 나의 즐거움, 나의 만족이 되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이 담긴 이름입니다. 그러나 나오미 역시 이름대로의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룻1:20-21). 우리에게도 ‘성도·하나님의 자녀·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값을 하고 있습니까? 실제로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되신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만이 우리의 만족이시며 기쁨인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름은 있지만 그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유명무실’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 나의 기쁨이며 참 만족입니다”는 고백과 함께 그 고백에 맞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2)‘말론’과 ‘기룐’ ‘말론’은 ‘병약하다, 질병’, ‘기룐’은 ‘상실(소멸)하다, 죽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이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삿2:7). 여호수아와 가나안 정복 1세대 장로들이 살아있던 사사시대 초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은 이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사시대 후대로 갈수록 여호와 신앙이 희미해져가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비록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사시대였지만 엘리멜렉, 나오미의 부모세대만 해도 아직은 여호와 신앙으로 살아가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의 이름을 ‘나의 하나님은 왕’, ‘기쁨, 즐거움’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나 사사시대는 영적, 도덕적, 사회적으로 점점 더 타락하고 악해져갔습니다. 여호와 신앙이 무너졌습니다. 불법·무법·흑암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더 이상의 소망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신앙적 모습이 ‘말론’과 ‘기룐’이라는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질병’, ‘죽음’이라고 지을 수밖에 없는 소망 없는 시대라 할지라도,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신앙을 던져버리고 우상에 빠져있는 시대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여전히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구속의 언약을 이뤄가신다는 것입니다. 흑암의 시대에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빛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타락·배교·우상숭배·흑암의 시대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보아스와 룻을 통해 마침내 ‘다윗’이 나게 하심으로(4:22) 하나님의 계획하신대로, 뜻하신대로 하나님의 일을 이뤄가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메시지가 바로 룻기입니다.

3. 성도가 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도로서 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성도로서 마땅히 살아가야 할 삶의 모습도 포함됩니다. 흔히 말하는 주일성수·기도·찬양·헌신·봉사·희생·선교(전도)·사랑·나눔의 삶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이름값을 하는 성도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역사하시는 하나님·언약을 통해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도가 이름값을 하는 것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 믿음의 삶이 없으면 위에서 열거한 여러 가지 삶의 모습들도 의미가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잠28:4, 5, 7, 9, 13, 14, 25 참고).

하나님은 온 세상을 통치하시며 하나님나라의 완성을 위한 구속의 계획을 이뤄나가는 분이시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도 큰 관심을 가지시고 개입하시고 관여하시고 다스리십니다(마10:29-30). 우리가 냉수 한 그릇을 필요한 자에게 주는 것까지도 다 주목하고 계십니다(마10:42).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룻기를 통해 한 가정, 한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역사를 보여주십니다. 그렇다면 성도로서 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를 사랑하시고 내 인생을 인도하시고 나와 동행하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성도의 이름값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와 나를 향한 사랑을 믿는 믿음에서 성도의 삶은 시작됩니다. 성도의 이름값 함이 출발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오직 이 믿음 가지고 이름값 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뤄가시는 구속 역사의 대열에 함께 걸어가는 승리자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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