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덕 목사 (뉴욕실로암장로교회)
인간은 날마다 멸망의 위협을 받고 있고, 날마다 도처에서 멸망의 슬픈 곡성이 들리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불안의 근본 뿌리는 멸망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 주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랑”은 아가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으로 내가 하나님을 대적했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사랑하시는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했는데, 여기서 “이처럼”이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의 방법’을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는 방법은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대속의 제물을 삼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 외에는 죄인인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주셨다”라는 단어는 “보냈다”가 아니라 “내어 주셨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으로 거처를 옮기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 나를 위해 죽이시려고 내어주셨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자리입니다. 희생의 자리입니다. 저주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있어야 할 그 멸망의 자리에 예수님을 내어주셨습니다.
둘째는 “이처럼”이란 말씀입니다. “이처럼”은 ‘이만큼’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시기까지 이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할 수만 있다면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게 해 달라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며 울부짖는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 왜 아들의 간구를 들어주고 싶지 않으셨겠습니까? 십자가 위에서 사지가 찢어지는 고통으로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라고 절규하며 부르짖는 아들을 보시며 왜 당장 응답해주고 싶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끝내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같은 쓸모 없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주신 이유는 당신이 멸망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당신을 멸망하지 않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멸망”이라는 뜻은 “완전히 파괴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본래 우리들의 인생은 이렇게 완벽하게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멸망에 이르지 않고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죄인 된 우리의 인생을 멸망치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진리를 가슴 속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요10:10)“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어 생명도 얻고 풍성히 사는 1등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더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가 아니라고 합니다. 가진 것이 없는 부모를 둔 자식은 성공할 수 없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문제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는 말을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년원에 수감된 아이들의 98%는 가난한 집, 결손 가정의 자녀들이라고 합니다. 이 아이들이 “개천에서는 용이 날 수 없다”고 믿는 아이들입니다. 이런 잘못된 믿음을 어떻게 깨뜨려 줄 수 있겠습니까? 예수 믿으면 개천에서 용이 납니다. 예수 믿으면 멸망치 않습니다. 예수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갑니다. 예수 믿으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집니다. 예수를 믿으면 이 땅에서도 멸망치 않습니다. 부자 부모와 상관없이 잘됩니다. 자녀들이 과외를 안해도 멸망치 않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못한다”는 말을 믿고 묶여있는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새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기에 절대 멸망치 않습니다. 세상 경험가지고는 우리 인생을 바꿀 수 없습니다. 돈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만 있으면 집도 사고, 땅도 사고, 차도 사고, 사업도 하고, 교회 헌금도 많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원수로 구나”하고 한탄합니다.
이제 요한복음 3:16 말씀으로 깨뜨려 부수십시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고백합시다. 주님이 계셔야 우리 인생이 바뀝니다. 아이들은 가난하면 “우리집 못살아요”라고 말합니다. 돈이 많으면 “우리집 잘살아요”라고 합니다. 교인들도 기도할 때도 “하나님, 돈 주세요”라고 합니다. “집 주세요, 차 주세요, 사업 주세요”라고 할 것 없이 한 마디로 “하나님 아버지, 돈 주세요” 그러면 된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 믿어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 잘 못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 믿어서 잘 못사는 것입니다. 돈이 내 인생을 바꾸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어야 멸망의 사슬을 끊습니다. “돈 주십시오” 대신 “믿음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빽이 없어서 망했다고 합니다. 사람을 잘 만나야 인생이 풀린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느 부인은 남편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내가 당신같은 사람 안 만났으면 이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 잘 만나면 잘 삽니까? 이분은 예수 믿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사람 믿는 사람입니까?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용서하고 사랑할 대상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야 잘 삽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얍복강가의 야곱처럼 이스라엘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영육간에 멸망당하지 않고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수년전에 세상을 놀라게 했던 막가
파가 저지른 일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두목이 김현양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인육을 먹고, 잡혀서도 얼굴하나 찡그리지 않던 그 사람을 변화시킨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그가 사형 판결을 받고 수감생활을 할 때, 어느 누구도 그의 방에 들어가질 못했습니다. 심지어 간수까지도 피할 지경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형수가 두려워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여집사님이 그에게 매일 편지를 보냈습니다. 100통째가 배달될 때까지 편지 반입도 못하게 했던 그가 드디어 편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부모 형제까지도 면회 한 번 오지 않는 그에게 사랑을 쏟기 시작한 한 여집사님의 믿음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잔인한 살인자였던 그에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믿음이 좋은 여집사님을 사용하셔서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를 믿게 되고 사형 당하기 전까지 교도소 안에서 많은 죄수들을 전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해부용으로 기증하였고 장기도 남을 위해 기증하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의 놀라운 기적이며 역사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 안에 역사한 믿음으로 다른 사람을 구원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