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현 목사 (드림교회)
인생의 목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바른 생각과 목적 없이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을 낭비하고 기회를 허비하고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건강을 해치고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무의미하게 낭비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인생에 목표와 목적을 회복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자기의 존재가치를 회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인생을 가지고 열매 맺는 인생을 사는 것이 바로 크리스천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본문말씀에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5절에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했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과 포도나무인 예수그리스도 그리고 거기에 붙어 있는 가지인 우리 자신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주님께서 ‘너희가 포도나무요’하지 않고 ‘내가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을 가리켜 ‘이스라엘아 너희는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이 포도나무였기 때문에 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좋은 열매를 맺으려고 애써야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결코 그들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타락한 본성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은 더 이상 너희가 포도나무라 하지 않으시고 내가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스스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아예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서 좋은 포도나무 되게 하시고 저와 여러분은 거기 붙어 있는 가지가 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저는 이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제 가슴이 뜁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포도나무인 것처럼 생각했고 그래서 좋은 열매를 맺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열매 없는 내 자신을 보면서 자책하기도 하고 얼마나 힘들어 했습니까? 인생의 한계상황 앞에 어쩔 수 없이 무너지는 우리 자신을 보면서 얼마나 절망을 했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내가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실패했던 것을 주님이 친히 포도나무가 되셔서 열매 맺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주님은 그런 우리를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로 삼아서 우리의 실패를 얼마든지 성공으로 바꾸어주실 수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포도나무가 아닙니다. 우리 힘과 능력으로 열매 맺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붙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붙어있기 위해서 싸워야 하고 붙어있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바로 이것입니다. 누가 능력 있는 성도입니까? 예수님에게 잘 붙어 있는 사람입니다. 누가 영적인 능력을 잃고 방황합니까? 그것은 예수님에게서 떨어진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철저하게 그리스도께 의존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여러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주님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의 거리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지만 모든 예배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너무 깊이 빠지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처럼 멀찍이 주님을 따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거리를 두고 따라가다간 반드시 유혹에 시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면에 어떤 분들은 주님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치 주님 없이는 단 순간도 살 수 없는 것처럼 주님을 찾고 또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주님께 붙어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주님과 어느 정도 친밀하십니까?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의 본성은 붙어있는 친밀한 관계보다는 자신이 노력하는 것, 자신이 뭔가 하는 것에 더 익숙해있습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보다는 열매를 맺기 위해 무언가 하는 것에 우리 모두는 더 익숙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진리를 잘 모르는 사람은 자꾸 무엇인가 하려고 합니다. 무엇인가 해야만 안심이 되는 모양입니다. 무엇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평안이 있습니다. 뭔가 일을 하는 것이 익숙해 져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냥 서있지 말고 뭔가 해봐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고 믿기만 해, 나에게 붙어 있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체질인지도 모릅니다. 언제 우리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철저하게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을 때입니다. 다른 것 의지하지 않고 주님만 의지하겠다고 결단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예수님께 붙어 있기만 하면 우리는 강한 존재가 됩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 4장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열매 맺는 삶을 살려면 주님께 붙어있어야 합니다.
7절 말씀을 보면 “내가 너희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사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주님의 숨결과 생명을 느낍니다. 성도들이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실제적인 삶의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가장 먼저 의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성도들의 발걸음을 하나하나 인도해낼 때 그 직접적인 방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와 여러분을 인도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왜 삶이 변화되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도를 믿어도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하면서도 원수는 고사하고 옆에 있는 교우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나의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지 못하구요, 주님이 마음에 계시다고 하면서도 그 은밀한 죄는 끊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믿으면서도 고난이 축복됨이 믿어지지 않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아직 하나님 마음에 거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온전히 내 마음을 드리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내 삶에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성도들이 이처럼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 오늘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은 바로 하나님 마음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주님께 붙어있기 위해 싸우시기 바랍니다. 그 분을 생각하며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그럼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