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걸 목사 (한국 신천교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람을 만드신 후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면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고, 행복과 사랑대신 갈등과 불화만 남게 되어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고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셔서 창대케 하시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후손들도 나라가 커지고 번성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기 시작했고 바벨탑을 쌓는 죄를 짓게 됩니다. 이에 하나님은 바벨탑뿐 아니라 사람들도 허물어서 흩어버리셨습니다. 그 결과 언어와 문화, 관습이 달라졌고 싸움과 갈등과 불화가 가득해졌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고 새로운 민족을 형성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거역하게 되고 우상을 섬기며 죄를 지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달래기도 하시고, 책망과 경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돌아왔다가 다시 죄를 짓는 삶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끝까지 참으시고 인내하시면서 다른 선지자를 계속 보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렇게 계속 보내시는 하나님의 열성, 하나님의 열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고자 안달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그 크신 하나님의 열심으로 독생자 예수님, 자신의 생명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심정에 대해서, 오늘 본문 16절은‘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라고 합니다. 이미 익숙하게 들은 말씀이이서 머리로만 알고 마음으로 모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성경전체의 압축이라 할 만큼 복음 중에 복음이며 이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상을 심판하고 사람들이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고 생명을 얻고 풍성히 얻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데에 있습니다.
본문 14-16절에, 하나님이 장대에 뱀을 든 것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이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주시려고 한 것입니다. 심지어 소망 없는 죄인이나 흉악한 강도도 그대로 망하고 죽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세상의 법은 그를 용납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용납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이고, 인간의 생각으로는 미칠 수 없는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본문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멸망과 영생을 놓고 하나님이 사랑하셨고,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믿기만 하면 영생입니다. 이 속에는 불같은 하나님의 열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용서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세상은 포기하여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악한자도 병든 자도 소망 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열심’으로 예수님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희생 제물로 오셔서 태어나실 때부터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당시에 저주받은 땅이라 불리던 나사렛에서 삼십년 동안 온갖 조롱과 멸시가운데 사셨습니다. 그 모든 것보다 더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의 절정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갈보리’입니다. 이 복음, 이 하나님의 열심으로 우리에게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첫째, 마음에 사랑의 불이 붙어 소중한 존재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이 사랑, 이 선물을 받을 때에 우리 속에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사랑의 불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마음에 받으면 우리 안에 불을 받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는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보면 자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백성으로 살아가갑니다.
우리 속에 붙은 불이 내 불이 아니고 하나님의 불이고 내 열심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온 열심이기 때문에 이 땅에 살면서 꺼지지도 않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6장 8절에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열심은 어느 누구도 꺾지 못합니다. 당장은 열매가 없고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다 할지라도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를 책망하던 성령님이 “내가 너를 책망하는데 네가 열심을 내라”고 하십니다. 로마서 22장 1절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이 선한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디도서 2장 14절에 보니까 “그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하나님의 열심으로 우리를 구원한 것은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가만히 있는 사람이 아니라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셋째,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절에서 사도바울이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해서 열심을 내노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이런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런 열심이 있었기에 그는 힘써 수고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선배들은 그 하나님의 열심에 불이 붙어버린 후에 자기 일생을,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포기하고 주님을 위해서 살 수 있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십자가를 보게 하시고 그 크신 하나님의 열심에 불이 붙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냉랭한 가슴으로 살지 말고 거룩한 열심으로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사랑 받은 우리도 열심히 주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선한 일에 열심히 사는 우리 모두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