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섭 목사 (퀸즈한인교회)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막상 ‘당신은 행복하십니까?’하고 물으면 행복하다고 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실 행복이란 손으로 잡으려고 노력한다고 잡히는 것은 아닙니다. 물질이 많아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많으므로 행복은 돈 때문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권력이 높아져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많으므로 행복은 권력 때문이 아님도 분명합니다. 금욕주의자들은 욕망을 제거하면 실망도 하지 않을 테니 행복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126편은 행복한 사람의 기쁨의 노래입니다. ‘꿈꾸는 것 같다’ ‘웃음이 가득하고 찬양이 찼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의미에서 행복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나누면서 시편기자가 경험한 참된 행복을 함께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본문의 시대적 배경을 추측하는 이론은 주로 두 개입니다. 1. 바벨론 포로시절 2. 앗수르의 침공시절(히스기야 때)로 말하지만 어떤 시절이든 공통된 행복의 모습은 자유라는 것입니다. 참 자유가 있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순간적인 쾌락을 행복인줄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노예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술을 끊지 못한다면 술의 노예라는 말이며, 마약을 끊지 못한다면 마약의 노예라는 뜻입니다. 도박을 끊지 못한다면 도박의 노예라는 뜻이며, 죄악을 끊지 못한다면 죄악의 노예라는 말이 됩니다. 노예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있을 때 그들에게는 자유도 없었고 희망도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조그만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1절)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도 죄의 종으로 있었습니다. 자유케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요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 죄와 형벌에서 자유케 될 것입니다. 자유는 승리한 자의 몫입니다. 어떤 시험 속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가끔 자유를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입니다. 자유에는 책임이 있습니다.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자유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방종의 결과는 오히려 더 무거운 굴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심은 방종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인 순종을 기대하시는 것이죠. 그 자유를 위해 하나님은 큰 값을 치루셨습니다. 시편기자는 The Lord has done great things for us. 대사를 행하셨다고 했는데 뭘 가리키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대사 아닙니까? 그 큰일을 행하셔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자유가 있습니까? 아직도 과거의 죄 덩어리들로 억눌림 받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참된 행복이 찾아올 것입니다. 4절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를 보면 행복은 충만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방의 시내는 어디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사실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물이 넉넉한 강이 없습니다. 하지만 남방의 물이 넉넉한 강을 기억한 시인의 표현입니다. 언제나 물이 넘실대는 충만한 모습은 기쁨입니다.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해서 물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물로 채워져 넘실대는 강의 모습을 보는 것은 행복입니다.
상처받은 인간의 모습은 건조한 사막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쭉쭉 갈라진 바닥과 같은 마음이죠,먼지만 푸석 거리는 모습입니다. 예레미야는 같은 맥락의 기록인 2:13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즉 생수의 근원이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사람들은 목이 말라 스스로 물을 저장할 웅덩이를 팝니다. 그러나 그 웅덩이는 물을 저축할 수 없는 터진 웅덩이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좇아 행하였습니까? 혹시 터진 웅덩이는 아니었는지요? 우리 주님만이 충만한 생수의 기원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요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From the fullness of His grace we have all received one blessing after another” 계속된 공급, 충만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갈하지 않는 생수의 강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찾아 헤멜 필요가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물이 넉넉한 뉴욕과는 달리 제가 오래 살았던 캘리포니아의 일기는 특이합니다. 일년내내 건조하다가 12월부터 3월까지 비가 옵니다. 그래서 가을철이면 산불이 자주 나는 것입니다. 가을철이 되면 저수지와 강바닥은 거북이 등처럼 쭉쭉 갈라져있습니다. 마치 인간의 곤고한 심령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어떤 성도님이 상처가 너무 깊어서 치유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권면하였습니다. ‘용서하세요 집사님, 용서해야 상처가 치유됩니다’ 그러나 그 집사님은 용서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생각이나 용서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로 권면을 하였습니다. 짝 마른 땅위에 비가 떨어집니다. 어떻게 될까요? 먼지만 푸석이겠지요. 그래도 계속 비가 오면 어떻게 될까요? 갈라진 부분이 메어지겠지요. 그래도 비가 계속 오면 어떻게 될까요? 바닥이 촉촉이 채워지겠지요. 그래도 계속 비가 오면 어떻게 될까요? 저수지가 가득차겠지요. 그래도 계속 비가오면 어떻게 될까요? 저수지 문을 열어야겠지요. 이 말을 하는 동안 그 집사님의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충만이란 그런 것입니다. 시인은 바로 그것을 본 것입니다. 행복은 충만에 있습니다. 세상은 공허합니다. 겉모양만 번드르한 터진 웅덩이에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만이 충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행복은 결실에 있습니다. 때때로 운전을 하다보면 고속도로에 차가 가득해서 잼이 될 때가 있습니다. 특히 바쁜 시간인데도 대형 트럭이 많을 때는 짜증이 나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좀 한가한 시간에 운행하면 안되나?’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트럭들을 없다면 내가 필요한 물건들을 얻을 수 있을까요? 많은 트럭들이 생필품들을 나르고 있는데 중지되면 뉴욕의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과정을 무시하면 절대로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자유와 충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실을 위해서는 씨를 뿌리는 농부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땅을 고르고, 쟁기질을 하고, 씨를 뿌리고, 물주고, 잡초 뽑아내고, 그런 후에 수확을 거둘 수 있습니다. v때로 하나님께서 갑작스럽게 일을 이루셔서 그저 꿈꾸는 것 같은 경험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 농부가 인내하고 땀을 흘리듯 우리의 노력과 인내가 요구될 때도 있습니다. 무조건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오산이요 도둑 심보입니다. 우리가 땀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모습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예수 믿는 이들로서 예수 믿는 자답게 살며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때로 눈물이 요구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농부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농부는 씨를 뿌릴 때 결코 아까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자씨를 귀하게 보관합니다. 배고파도 참고 보관합니다.
그리고 봄이 되었을 때 뿌립니다. 아까워하지 않는 이유는 가을철의 수확을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소망을 주셨습니다. 바울도 울며 씨를 뿌렸고, 우리 주님도 울며 씨를 뿌리셨습니다. 사53:3처럼 “그는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뿌리셨습니다. 만일 우리도 눈물과 기도로 씨를 뿌린다면 어느 날 주님께서 수확의 때를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여러분의 눈물이 필요합니다. 울며 씨를 뿌립시다. 패배의 눈물이나 어쩔 수 없어 흘리는 눈물이 아라 소망의 눈물을 흘리며 뿌립시다. 바로 그 때 행복이 있습니다. 수확의 기쁨이 충만하게 임할 것입니다.
사탄은 거짓 행복을 가장하여 쾌락을 위해 뿌리라고 하지만 슬픔을 거두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된 행복의 원천인 영원한 자유를 주시는 분입니다. 또한 그분의 충만한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은혜위에 은혜러라’(One Blessing after another)의 축복을 누리길 바랍니다. 결국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입니다. 갈6:7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십시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 그 안에서 충만함을 누리십시오. 진정한 행복의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