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의 음성을 따라가는 양

(요한복음 10장 1-5절)

김승희 목사 (뉴욕초대교회 담임)

양을 키우는 목장에서 8년간 일한 경험이 있는 필립 켈러 교수가 양의 속성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양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들이 받는 뿔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공격하는 송곳니와 찢는 발톱이 없습니다. 그리고 양의 시력은 -10입니다. 50cm 이상은 볼 수 없고 바로 앞만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양은 반드시 자기 목자의 음성을 외워야만 합니다. 그래서 자기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목자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양에게 수많은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요한복음 10장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시며, 우리는 주님의 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딱 한 가지 일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나머지 모든 것을 목자되신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때때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때로는 쉴만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셔서, 우리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시고 마실 물을 공급하십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주님이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양 된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따라가지 않게 되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기게 됩니다. 가다가 넘어지고 아래로 굴러 떨어지게 되고 근심하고 걱정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따라가야 할 목자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경 66권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곧 우리의 목자되신 주님의 음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주님의 음성, 곧 말씀만 따라가면 모든 것은 우리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신앙생활이란 이렇게 간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간단한 이 말씀을 따라 살지 않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주님을 믿고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음성입니다. 그렇다면 근심하지 않으면 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최악의 상황이 닥쳐와도 근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목사인 저 역시 일상생활 속에서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만일 그 근심과 슬픔을 주님께 맡기지 않고 제가 안고 산다면 저는 절대로 사람들 앞에서 서서 이렇게 설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저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근심과 걱정을 주님께 맡기고 근심하지 않습니다.

마틴 루터 킹이 말하기를 수많은 사람이 집 앞을 지나가지만 누구를 불러서 함께 차를 마시는가는 전적으로 자기의 선택이라는 비유를 말했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일이 발생하고 생각이 떠오르지만 어떤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것은 자기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근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기예보에서 저녁에 눈이 온다고 하면 눈 치울 일과 아침에 출근길을 염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걱정한다고 눈이 내리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면 하얀 눈이 내린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말씀에 기록된 대로 범사에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면 됩니다. 말씀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고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음이오면 먼저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길이 열립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누가복음 6장 48절 “주라. 그리하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하여 채워주리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제게 ‘레마’,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달음이 온 것은 바로 1996년 봄이었습니다. 그때 개인적으로 가장 곤경에 처한 때였습니다. 목회적으로도 힘들었고, 개인적으로도 가장 가난하고 궁핍했고 어려웠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바로 이 성경구절을 읽어가는데 갑자기 이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왔습니다. ‘내가 왜 궁핍하게 사는가? 하나님의 아들로 왜 이렇게 어렵게 사는가?’ ‘아!’ 바로 이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때부터 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주는 삶, 베푸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바꾸고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왜 하나님의 백성이 베풀지 못하고 사는가 하면, 자신이 받아야 할 사람이지, 누구에게 베풀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죽을 때까지 베풀지 못하고 살다가 가진 재산을 내려놓게 되고, 결국 남은 재산을 놓고 다른 사람들이 다투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적고 많음을 떠나서 환경이 되든 안되든 주고 베푸는 삶이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저는 가정에서 매일 가계부를 기록합니다. 저의 가계부 지출부에 첫 번째 항목이 구제비입니다. 주변에 뜻하지 않게 성도들 선교사님들 동료 목회자들이 어려움을 만났을 때 도와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쓰는 비용입니다. 왜 구제를 하느냐? 예수님이 주고 베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게 하면 넘치도록 채워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돌아보고 한 마디로 표하면 ‘주는 삶’을 살다가 가셨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보혈을 흘려주셨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주셨고, 생명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고, 병든 자를 고쳐주셨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현재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해도 미국에 사는 사람은 현재 사는 인구 중에 10% 해당하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세계를 다녀본 사람은 그 말을 이해합니다. 그런 우리가 과연 더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위해서 얼마나 주고 베풀었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요즈음 뉴욕교회협의회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여러 교회와 단체에서 초청을 받아 방문하게 되었고 그래서 느낀 점이 많습니다. 성도들이나 목사님들이나 기독교단체가 받기보다는 베푸는데 더 열심이 있어야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감사하게도 베풀고 주기를 잘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습니다. 몇 주전에 우리 교회에서 선교지역으로 정하고 선교센터와 학교를 설립하고 지원하고 있는 도미니카를 방문했을 때 우리 교회 성도로 도미니카 수도 산토도밍고에서 십년 동안 사업을 하고 있는 최상민 집사를 만났습니다. 그가 도미니카에서 꼭 필요한 것이 종합건강검진센터라는 것을 알고 산토도밍고에 첨단 의료장비를 갖춘 건강검진센터를 설립 중인데 올해 오월이면 완공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그가 뉴욕교협회장인 제게 부탁한 말입니다. 5월 건강검진센터가 완공되면 첫 번째로 하고 싶은 일이 뉴욕에서 목회하느라고 수고하시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목회자 마흔 명을 초청해서 무료로 건강검진을 해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바닷가 휴양지에서 3박4일 동안 편안히 쉬고 오실 수 있도록 모든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1인당 1,500불이 들고 총 6만불의 비용이 드는 일입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의 마음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비즈니스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마음이 달랐습니다. 새 일을 시작하면서 먼저 어려운 여건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들 건강을 돕고, 주의 종들에게 기도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에게 물질의 복을 주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서 모든 것을 베풀고 주시고 가신 주님과 같은 삶을 삶으로 이 세상에서도 주님 앞에서 인정받고 천국에서도 큰 상을 받는 여러분 되시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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