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운 목사 (벅스카운티장로교회)
감사한다는 영어 단어 ‘Thank“는 생각한다는 단어 ”Think“에서 생겼다고 합니다. 추수감사절을 보내며 생각하는 감사의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감사의 계절을 보내야 할까요?
첫째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입니다. 히12:3에 보면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감사의 계절에 무엇보다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며 하나님께 받은 각양 선물과 축복 중에 가장 귀한 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받은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원해주시고 지금도 여전히 죄 중에 있는 우리들, 죄를 지으며 살고 있는 우리들을 보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 하시며 변호해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해야 합니다. 나아가 현실의 삶이 힘들지만 거역하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그야말로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는 구원받은 자와 버림을 받은 자, 천국에 가는 자와 지옥에 가는 자를 상징합니다. 언제라도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도록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강도 같은 우리들에게 가장 귀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 그리고 감사하라고 가르쳐주시는 예수님, 지금도 죄짓고 사는 우리들을 벌 받지 않게 하려고 변호하고 계시는 예수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기회를 주시는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들도 그 강도처럼 예수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며 구원해주시고 보호해주시는 주님을 죽을 때까지 섬기겠다고 결심하기를 원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예수님, 빌라도의 뜰에 선 예수님, 갈보리 산 올라간 예수님을 생각하며 감사합시다!
둘째는 지난날입니다. 신16:12에 보면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 찌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 년에 세 차례 지키는 절기 때마다 이집트에서 종 되었던 때를 돌아보며 감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규례에 대하여 신16:16-17은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 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 찌니라”고 구체적으로 일러 주셨습니다.
지난달에 LA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다가 1986년에 미국에 처음 와서 살던 아파트와 부목사로 섬기게 되었던 교회 옆을 지나가며 미국에서의 27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볼 때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 주께 감사드리세. 날 위해 이 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 나의 맘과 뜻 다해 주를 사랑합니다. 날 위해 이 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 내가 약할 때 강함 주고 가난할 때 우리를 부요케 하신 나의 주 감사 감사...”하며 찬송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난 날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가난하고 약하고 병들었을 때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부임했을 때 주 안에서 사랑하는 한 여 집사님은 어린 두 남매를 데리고 너무 고생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저희 내외는 늘 그 집사님과 어린 남매를 위해 기도하며 격려하고 마음을 나누며 지냈습니다. 그 후 좋은 분을 만나 재혼하였고 함께 식당을 경영하게 되었는데 두 자녀 모두 훌륭하게 커 가정을 이루었고 그 식당은 가 볼 때마다 주 중에도 손님이 줄을 지어 기다려야 할 정도로 잘됩니다. 그 집사님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미 주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요. 짬짬이 감사한 마음을 주님께 드립니다”라고 눈물을 담아 드리는 모습을 보며 지난날의 내 모습을 생각하며 늘 감사하는 자에게 오늘도 주님은 함께 하심을 봅니다.
셋째는 주변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힘든 중에 살지만 조용히 생각해 보면 우리보다 못한 환경에 사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을 다녀볼 때마다 미국에 사는 것이 얼마나 복을 받은 것인지를 재삼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에 와서 살게 된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재활원에서 사역하는 분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식물인간 환자의 가족은 환자가 자기들을 알아보기만이라도 했으면, 머리를 움직이는 환자는 상체를 움직일 수만 있다면, 휠체어를 탄 환자는 지팡이를 짚고 걷기만이라도 했으면, 지팡이를 짚고 걷는 사람은 아무리 약해도 자기 다리로 걸어보았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소원이랍니다.” 부흥회에 가서 만난 성도들의 말입니다.
폐암이 간암으로 전이된 젊은 부부는 “이전엔 돈 잘버는 사람, 공부 많이 한 사람이 부러웠는데 이제는 막노동을 하더라도 건강한 사람이 제일 부럽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젊은 부부는 “아이들 때문에 불평하는 부부는 정신없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라고 말했고 13년간 여러 번 싸우고 갈라진 교회에 다닌 분은 화목한 교회에 다니는 것이 소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평범한 일상에서 당연히 누리고 있는 것을 위하여 소원처럼 기도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주위에 우리보다 더 큰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아침에 10남매와 재산과 건강을 잃은 욥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 모진 고난도 기쁘게 감당하실 수 있었지만 욥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인데도 고난 중에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였다면 우리도 그러한 분들을 생각하며 감사를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불평하는 마음에 마귀가 거한다”, “축복은 감사하는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하는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다면 저는 “감사를 심으면 또 다른 감사를 낳고 불평을 심으면 또 다른 불평을 낳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난과 시험이 닥쳐올 때에 예수님을, 우리의 지난날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감사를 심으므로 더 많은 감사를 거두는 새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