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이겨라

(벧전 5:7-9)

한세영 목사 (워싱톤메시야장로교회)

성도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었다고 하면서도 자주 범죄에 빠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사단의 시험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 시험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이젠 절대로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 우리는 평생에 시험을 치르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시험이 바로 우리의 거룩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사단의 역사는 심지어는 40일 금식기도를 마치고 나오신 예수님 앞에서도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사단은 어렵고 힘든 고난과 핍박과 역경으로도 우리를 시험하지만, 그러나 또한 평안하고 형통함 가운데도 언제든 역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영국의 유명한 부흥 전도자 로랜드 힐 목사님이 어느 날 거리를 지나가는데 어떤 사람이 여러 마리의 돼지들을 이끌고는 도살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돼지들이 자신들이 죽을 것도 모르고 너무도 순순히 이 사람을 따라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저는 완두콩 바구니를 들고 오면서 계속 흘려주었습니다.” 이때 로랜드 힐 목사님이 무릎을 치며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는 방법입니다. 사탄은 쾌락의 콩, 욕심의 콩, 미움과 시기의 콩, 상처의 콩,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콩알을 계속해서 우리 앞에 뿌리고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눈앞의 콩에 현혹되어 그 콩을 주워먹으며 따라 가다보면, 우리 영혼의 도살장인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사단의 시험을 이길 수 있을까요? 이에 오늘 본문은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는 것입니다(7절).

우리를 염려하게 만드는 우리 주변의 모든 일들 즉 건강의 문제, 사업의 문제, 물질의 문제, 자녀의 문제, 관계의 문제.. 전부가 다 사단이 주는 시험의 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달콤한 콩이 아닌, 마치 독약이 든 콩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은 우리 삶의 필수적인 필요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먹지 않을 수도 없는 콩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먹게 되는데, 이로 인해 결국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죠? 사실 베드로 사도가 이 편지를 쓰던 상황은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염려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주후 64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보는데 이 서신이 기록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로마 대화재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로마화재는 로마황제 네로가 기독교인들을 죽이려고 고의로 불을 질렀던 것이죠? 그때부터 로마의 10대 박해가 시작됐고 이 박해는 313년 밀라노 칙령까지 무려 250년가량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거기서 카르타쿰 공동체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비참한 상황을 목전에 두고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932년 어느 날, 200명의 선원들이 샌디에고에 있는 비행선의 계류 기둥에 거대한 비행기구를 잡아매려고 그 기구에 달린 줄을 잡고 있다가 갑자기 그 기구가 하늘로 치솟는 바람에 함께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기구에 매달려 있던 사람들은 이내 땅에 떨어졌고, 대부분 사망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구가 아무리 하늘로 올라가는데도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있습니다. 1시간 45분이 지나고 그 기구를 다시 잡아끌어 맬 때까지 그 선원은 여전히 그 기구에 매달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1미터가 조금 넘는 로프를 발견하고는 자신을 그 로프로 묶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 비행선이 자신의 몸무게 정도는 쉽게 지탱해 줄 것이라고 믿고는 그냥 맡겨버렸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위기를 만날 때마다 여러분을 기도의 줄로 하나님께 묶어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시편 37편의 말씀과 같이 저가 모든 일을 이루어주시고, 우리의 의를 빛같이 나타내실 줄 믿습니다. 사실 맡겨버리라는 것은요,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빌4:8). 그래서 우리가 모든 염려를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묶어버리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근신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8절).

근신하라는 말은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말이고, ‘깨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늘 자신을 컨트롤하며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대처할 비상대기를 하고 있으라는 말씀이죠? 안으로는 자기 컨트롤이고, 밖으로는 문제에 대한 즉각적인 대처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늘 자신을 컨트롤하며 대비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젊은 재상이 왕에게 와서 어떻게 하면 시험에 들지 않고 맡은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왕이 기름이 가득한 잔을 주면서 기름을 한방울도 쏟지 않고 한 시간 안에 지시하는 거리를 돌아오라! 만일 기름을 쏟거나 시간이 늦으면 엄벌에 처하겠다고 하면서, 칼을 든 군사를 뒤따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젊은 재상은 땀방울을 흘리며 기름을 쏟지 않고 제 시간 안에 도착을 했습니다. 자신도 놀랬습니다. 어떻게 이 젊은 재상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왕이 물었습니다. “모퉁이 구두가게를 보았는가?” “못보았습니다” “그럼 쌀가게는?” “못보았습니다” “그럼 가구점은?” “죄송합니다. 기름을 쏟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하느라 아무것도 못보았습니다.”

여러분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저 맡은 일에만 집중하여 충성하기만 잘한다면 시험에 들지 않고 무슨 일이든 잘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근신하며 깨어 준비된 삶이란 바로 이처럼 늘 마땅히 해야 할 맡은 일에만 집중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맡은 일은 우리가 가정이든, 일터이든, 학교이든, 사회이든, 어디서 있든지 오직 하나님나라 건설을 위해 사는 것인 줄 믿습니다. 성도가 시험에 드는 이유는 하나님나라 건설에 대한 본질적인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자꾸 본질 외의 다른 일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아닌데, 자식이 아닌데, 큰 집이 아니고, 육신의 편안함이나 안락이 아닌데, 자꾸 그런 쪽에만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자신뿐 아니라 자식도, 남편이나 아내도, 다른 사람도, 시험에 들게 만든다는 것이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시리라”(마6:33).

셋째,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9절).

이제는 사단을 대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에서 성도의 목표와 사명에만 집중하라고 하셨는데 왜 또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사실 우리가 아무리 집중해서 믿음으로 하나님나라만 보고 달린다하여도 사단은 공격하지 않습니까? 나만 잘하면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시험이 다가올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렇게 다가오는 사단의 공격을 굳센 믿음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말고 있는 그 온전한 믿음을 그대로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약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죠.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성도의 태도를 나타내는 기독교의 신학적인 중심 개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이고, 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도의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공동과제는 바로 믿음으로 이 마귀권세를 다 함께 싸워 물리치고, 죽을 영혼, 넘어질 영혼을 구하는 일입니다. 꼭 상기하십시오. 싸움의 대상은 결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단마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결코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넘어뜨리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역사하는 사단마귀를 때려 부수려고 믿음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서로의 연약함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발견하고, 늘 용서로써 그 상처를 싸매어 줄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믿음이요, 그러므로 부족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풍성하신 은혜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단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오늘 주신 말씀과 같이,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만 맡겨버리며, 오직 하나님나라 건설을 위해 힘쓰는 가운데, 사람이 아닌 사단을 대적하는 거룩한 성전을 치루는 거룩한 용사로써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할 때, 또한 시험을 이김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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