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라

요나서 1:2

김만형 목사 (친구들교회)

요나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유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는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일에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를 구원하고자 했습니다. 그 일에 요나를 사용하고자 했습니다. 문제는 요나가 그 일에 동참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축복이요 영광입니다. 오늘 이 주제와 연관해서 몇 가지 연관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성취에 취해있지 말고 날마다 하나님께 새롭게 헌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은 그가 두 번째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지 않은 것입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성을 향해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2절). 그러나 요나는 이 말씀에 주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도망갑니다. 요나가 왜 그랬을까? 성경은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지 않지만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처음의 성공에 너무 취해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전한 말씀을 당시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이 듣고 그대로 행하므로 당시의 이스라엘이 가장 강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자기가 일할 때 왕이 자기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므로 부강해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자신도 성공했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성공은 그로 하여금 다른 부분에 어둡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또 다른 의도를 가지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로보암 시대에 요나를 시켜서 단순히 이스라엘 영토만을 확장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을 뛰어 넘어 니느웨로 그의 생각이나 시선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그것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 새로운 하나님의 도전에 순종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원인은 바로 이전의 성취에 취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도전을 인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뭔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그 자리에 머무르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또다른 계획을 보지 못합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어떤 성취를 이루었습니까? 혹시 그 성취에 취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새로운 도전을 받지 못하는 분은 없습니까?

신앙생활 하면서도 그렇습니다. 한 번씩은 그래도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교회에 이바지 많이 했다, 내가 그래도 교회를 세우는데 큰 일익을 감당했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그것에 만족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또 다른 니느웨를 맡기기를 원하십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일을 주십니다. 바로 그것은 우리로 또 다른 세계를 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한 번의 성취로 만족해 있으면 안 됩니다. 또 다른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과거의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느냐에 머무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일을 하라고 합니다. 바로 그것은 죽어가는 영혼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전혀 도망갈 수 없고, 하나님은 우리를 따라 다니면서 우리를 자신이 원하시는 일로 이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에게서 도망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뒤로하고 떠나갑니다. 그곳이 다시스입니다. 다시스의 정확한 위치는 나와 있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가장 먼 곳, 오늘날 스페인 남서쪽이나 아프리카 북서쪽 항구도시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요나는 이 서쪽 끝이 바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미국의 청소년들이 대학에 갈 때는 가능한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를 가려고 합니다. 부모님의 통제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 요나의 심리가 이런 심리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도망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그를 계속 따라 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요나가 탄 배의 뱃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보면 요나는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이요, 오히려 뱃사람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을 봅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이야기입니까?

저는 가끔 이런 모습을 접합니다. 어떨 때 보면 크리스천들이 더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오히려 안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 경외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더 많이 속이고, 거짓말하고, 더 약삭빠르고, 솔직하지 못하고. 안 믿는 사람들보다 더 못한 도덕기준을 갖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봅니다.

결국 요나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도망가는 모습을 보이고, 그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괴롭게 만든 것을 봅니다. 발견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지 않고 도망하면 본인의 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들도 고생시킨다는 것입니다. 쓸데없이 하나님이 동참하도록 하시는 일을 피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자신의 일에 부르시는 것을 알고 순종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니느웨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악한 도성에서 죄에 빠져 있는 그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요나에게 동참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자신의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 사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일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크리스천이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이 일을 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20:22). 성령으로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이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권능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크리스천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게 됩니다.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여러 유형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바로 이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시면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하셨습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전도하는 일에 참여하면 됩니다. 그래서 건강한 교회는 가만있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한 교인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 곳으로 움직이면서 전도하므로 그 영향력을 점점 더 확대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크리스천은 과거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과거의 부족함과 연약함, 다 뒤로 합시다. 이제 내 안에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함을 믿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일어납시다. 가능한 많이 복음의 씨를 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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