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성 섭 목사 (남부한인장로교회)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좋은 예배는 성도의 신앙에 질을 높여 주며 성도로서 살아야 할 우리의 삶에 용기와 능력을 주실 뿐 아니라 은혜로운 예배는 부흥의 첫 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의 회복은 신앙의 회복이요, 또한 교회의 부흥의 첩경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바른 예배를 드려야 하고 바른 예배를 드림으로서 신앙의 부흥, 교회의 부흥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예배가 죽으면 신앙도 죽고 예배가 의식화되면 능력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고 형식에 흐르는 예배는 곧 교회의 가장 큰 위기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예배는 성도들의 방종을 가져오게 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떠나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그 교회의 영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영적인 수준보다 더 높은 예배를 드릴 수 없고 또 그 예배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예배 이상의 신앙생활을 살수가 없습니다. 신앙의 수준은 예배에 갇히게 되고 예배의 수준은 삶의 질에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좋은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첫째로 예배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예배가 시작되기 이삼십 분전부터 나와 예배를 통해 만나게 될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하면서 몸과 마음을 준비하며 사모하는 성도들을 거의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이제는 예배가 음악회나 백화점 세일만도 못한 것으로 전락되고 있습니다.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만 제가 LA에 있을 때 사라 장이라는 한인 2세 12살짜리 천재 바이올리니스트가 Music Center에 와서 공연을 한다고 하여 가본 적이 있습니다. 공연 30분전인데도 약 5천석 가까이 되는 홀이 벌써 다 메워져 있었고 흥분을 가지고 사라 장을 가다리고 있었습니다. LA Philharmonic Orchestra의 National Anthem에 이어 사라 장이 나오니 청중들은 다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러 오는 성도들의 마음이 음악회에 가는 사람들의 마음만큼도 준비하지 못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일단 사라 장이 무대에 나오면 홀의 모든 문을 다 잠가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5분 늦고 10분 늦었다고 아무 때나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휴식 시간까지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늦게 온 사람들은 출입이 통제됩니다. 만일 오늘 교회가 이렇게 하면 그 교회는 영원히 문 닫아야 할 줄로 압니다. 그런데 그곳에 늦게 온 사람들은 약 20분간 밖에서 기다리다 휴식 시간에 입장을 하면서 도리어 미안해하는 눈치였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준비해야 합니다. 주일 예배를 위해 일주일동안 기도로 준비하고, 토요일이면 내일 입을 옷도 준비하고, 헌금도 준비해두고, 일찍 주의 전에 나와서 기도로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배를 게을리 하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도가 공적인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 것은 교회를 위하는 것도 목사를 위하는 것도 아닙니다. 공적인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을 때 목사님에게 죄송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목사를 위해서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배는 어떻게 드리느냐는 것입니다.
예배의 중심은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나를 드리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이 가르치는 것처럼 예배는 장소나 환경이나 외적인 요소들 보다 신자의 내면에 흐르는 마음의 중심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성령의 인도 안에서 드려져야 하며 진리의 말씀과의 인격적인 교감이 있는 예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육신의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기에 영이신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가 꼭 필요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생각을 아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아시는 분이기에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서 예배를 통한 만남이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령은 강권적으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영,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영혼을 위하여 이 아름다운 만남을 주선하십니다. 그 결과로 얻는 것이 말씀과의 만남입니다. 진리의 말씀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예배의 만남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남의 인격을 대변하는 말씀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육을 가진 우리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는 방편입니다. 똑같이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지만 이 말씀과 만남이 있는 사람과 말씀과 만남이 없는 사람으로 나뉘어집니다. 이 만남이 있는 사람은 기쁨과 평안, 사명을 향한 각오와 능력으로 채움을 입고, 회개를 통한 변화를 경험하지만 만남이 없는 사람은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중심이요, 그 만남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예배자를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예배자들은 이 중심을 잃고 외적인 요소들만을 생각합니다.
요지는 이것입니다. 교회가 예배를 어떻게 드리고 그 예배를 통해 성도들이 무엇을 추구하며 무엇을 얻게 되었는가가 중요합니다.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과의 장엄한 만남이 이루어졌는가? 그 만남을 얼마나 목마르게 기다리고 준비했는가? 그 예배를 통해 하늘의 거룩한 능력을 공급받았는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내게 주어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성도들의 뒷모습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도전을 줄 영적 군사로서의 용맹스러움이 준비되었는가? 올 때는 패잔병 같았다 할지라도 교회당을 나서는 사람들이 결의에 찬 독립투사 같은 의지를 읽을 수 있는가? ‘이제 끝났구나, 가서 뭐뭐 해야 되는데’ 예배드릴 때는 지루해 보였는데 끝나니 해방을 맞은 민족처럼 행복해 보이는 이런 교회라면 곤란합니다.
예배는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프로그램보다는 본질적인 마음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바라고, 사랑하고, 사모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겨야 합니다. 참된 예배의 회복은 우리의 마음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단지 우리의 종교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도구가 아닙니다. 예배는 우리 자신을 제물로 삼아 주께 드리는 행위이며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만남은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에 기대를 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은 그 응답으로 축복의 만남이 주어질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의 예배에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그 예배는 힘겨운 종교생활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참 만남은 행복과 기쁨과 평안과 자유를 주시는 것입니다.
예배가 일주일의 중심이 되게 하십시다. 예배드리기 위해서 일주일을 사십시다. 예배드리는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다가 나와서 앉는 순간부터 하늘의 감동에 사로잡히는 예배가 되십시다. 저는 일주일 동안 예배를 준비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예배를 준비하십시오, 최상의 건강과 최상의 마음, 최상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립시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그 마음이 갈급 하듯이 하나님 만나기를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