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 목사 (중부뉴저지장로교회)
바벨론에 끌려온 다니엘은 바벨론 사람들이 하는대로 하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벨론 왕궁에서 중책을 맡았지만 왕이 먹는 것을 먹으려하지 않았고 왕이 마시려하는 것을 마시려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결단했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여기 ‘뜻’에 해당하는 ‘립보’는 문자적으로 ‘그의 마음(in his heart)’이라는 의미입니다. 마음은 사람의 전 존재입니다. 마음은 감정과 의지를 주관합니다. 마음은 행동과 삶의 태도까지 결정하는 인격의 가장 깊은 좌표라 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 통치자들은 그가 고향과 하나님을 망각하게 하려고 그의 이름마저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니엘의 이름은 바꿀 수 있었을지 몰라도 마음은 바꾸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정복자에 의해 바뀌었지만 자신이 믿는 것 그 어느 하나라도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포로였지만 당당하고 의로운 영혼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단1:8) 뜻을 정했습니다. 이 시대에 다니엘처럼 결연한 태도를 취할 줄 아는 젊은이들이 무수히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시작하시고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 시작한다면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께서 높이 쓰임 받는 삶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영적 교훈은,
첫째, 시험을 믿음으로 이겨라.
당시 바벨론이 정복한 나라와 민족은 많았습니다. 따라서 바벨론이 아무리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군사력만으로는 피 정복민을 효과적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왕은 피 정복민 출신 중에 바벨론에 충성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여 그들을 통해 제국을 안정적으로 통치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재양성에 심혈을 기우릴 수밖에 없었고 그들에게 최상의 음식과 포도주를 공급했을 것입니다. 이는 크나큰 특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에게 그것은 특권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시험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하였습니다. 생명을 건 결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주관하는 환관장과 감독관에게 왕의 음식과 포도주 대신 채소와 물을 먹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원했습니다. 그러나 환관장에게도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환관장이 들어줄리 만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였고 열흘간의 시험의 결과로 다니엘의 청원을 수락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그냥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그가 그 시험을 통해 신앙정절을 지킬 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보존하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찾아오는 시험 하나하나가 극복하기 어려운 태산처럼 보이지만 믿음으로 대처하면 그 태산 같은 시험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무너져 평지와 같이 됩니다.
둘째, 어떤 일을 결단할 때는 반드시 3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라.
다니엘과 친구들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음으로써 그것들로 말미암아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결단은 참으로 모든 성도들이 본받아야할 귀감이 되는 결단입니다. 우리 모두는 매 순간 결단의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유용한 결단, 최선의 결단을 내리고자 한다면 3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1. 결단을 신중하게 내려야 합니다. 성급한 결단은 어리석기도 하고 위험스럽기도 합니다. 그 결단은 종종 나쁜 결과나 의도하지 않은 불행한 일을 가져다주거나 불필요한 수고를 하게 합니다. 예를 들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 처음으로 자기를 영접하는 자를 번제로 바치겠다고 고백한 사사 입다의 결심 그리고 전쟁 중에 불필요한 금식령을 내려 군인들을 피곤하게 한 사울의 결단. 실로 결단이 가치있는 결단이 되려면 충동적이거나 생각없이 내려서는 안 됩니다. 많은 생각과 진실한 고민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2. 결단은 의로운 것을 지향해야 합니다. 모든 결단이 유용한 것이 아닙니다. 결단은 바르게 행동하며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사는 것을 지향할 때 유용하고 고상한 결단이 되는 것입니다. 결단은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며 선을 행하되 죄를 범치 않게 될 경우에 고상한 것이 되며 신실하게 되고 정직하게 되며 성실하게 되고 친절하게 되며 유혹을 피하여 악한 제의에 대해서 단호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께 등을 돌리고 떠났다가 하나님께 돌아가고자 하는 탕자의 결단.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결단.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는 여호수아의 결단이 아름답습니다. 3. 결단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가운데 내려져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는 아무리 의로운 결단이라도 그것을 이행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절대 배반하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그 밤이 지나기 전에 주님을 세번 부인했습니다. 이는 그의 결단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한 결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에스더는 왕에게 나아가기로 결단하고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에스더의 결단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한 결단이었습니다. 인생은 실로 결단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결단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한 결단이 아름다운 결단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바른 신앙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자기 부정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우리가 바른 신앙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철저한 자기 부정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의 삶은 다 이와 같은 삶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아브라함을 들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보면 한 마디로 포기와 자기 부인의 삶이었습니다. 그는 처음 부름을 받았을 때 자기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조카와 갈라질 때는 조카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백세에 얻은 그의 생명보다 귀한 그의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까지 철저하게 순종하였습니다. 실로 그의 삶은 자기부인과 포기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는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러한 삶을 산 그가 신앙인들의 본이 되는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른 신앙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자기를 부정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 사람들을 보면 먹을 것에 집착합니다. 권력에 집착합니다. 높은 보좌에 앉는 것에 집착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절대시하고 손에 쥐고 누리고자 애쓰며 그것을 손에 쥐었을 경우에는 조금이라도 오래 더 많이 더 안정적으로 이를 누리고자 집착합니다. 그러나 참 신앙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땅히 누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 다른 모든 이들이 원하고 흠모하고 사모하는 것 우리 손에 쥐어진 것 까지도 포기하고 놓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다 내어주고 다 포기하고 다 잊어버려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를 견지할 떄 우리는 진정 신앙을 견고히 지킬 수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자아가 살아있고 자기욕망 자기욕구 세속적인 삶 세속적인 욕망의 탐닉이 가득해서는 결코 바른 신앙의 삶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 그 분이 예배하신 하늘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앙인으로 자신을 세우기 위해 먼저 하나님 앞에 철저히 자기부정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