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수 목사 (하와이 아가페선교침례교회)
우리 인간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걱정과 근심의 연속인 듯합니다. 염려 속에 태어나 염려 속에 성장하고 염려 속에 죽어갑니다. 세상에 염려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무엇을 염려하느냐고 물으면 딱 부러지게 할 말도 없습니다. 부자는 돈이 많아서 염려하고,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서 염려합니다. 자식이 있는 사람은 자식 때문에 염려하고, 자식이 없으면 자식이 없어서 염려합니다.
참 행복하다 싶은 사람도 가까이 가서 말씀을 나눠보면 남모르는 슬픔과 괴로움과 근심과 걱정이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아이들 문제 장래문제 사업문제 인간관계 문제 문제도 많고 걱정근심이 많은 세상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우리들의 삶은 걱정근심의 삶이 되었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 신앙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염려 덩어리를 지고 사는 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신앙이 좋은 여 집사님이 갑자기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고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담당의사로부터 남편이 췌장암인데 ‘매우 위험한 상태’라는 말을 듣자 그 집사님은 충격을 받고 그만 그 자리에서 졸도하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부인의 손엔 성경 찬송가가 들려있었다고 합니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성경을 챙겨 가지고 갈 만큼 믿음이 있었지만 정작 큰 염려와 근심 앞에 서면 힘없이 쓰러지고 마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데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는 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까? 염려와 근심은 사탄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7절에 의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에게는 평강이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평강이 있다는 말은 걱정 근심이 없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그 평강의 하나님 안에 있지 못하면 근심 걱정 염려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지 않을 때 염려와 걱정근심이 온다는 말이지요. 우리가 주님 안에 있지 않을 때 사탄이 그 틈을 타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고 원망과 불평을 심어 놓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걱정근심을 주시지 않습니다. 잠언 10:22을 보면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애가 3:33에는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걱정과 근심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시면 걱정근심대신 감사기도를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우리는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가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건강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업이 잘 될 때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염려 근심할 일이 있어도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근심할 일이 있어도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문제가 꼬여도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도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고가 생겨도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몸이 건강하지 않아도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근심 걱정이 있는 그런 상태에서도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이에요.
여기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는 이 말씀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에요. 왜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까? 근심 중에도 걱정 중에도 감사함으로 아뢰라 하는 것은요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모든 걱정근심은 내가 염려함으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염려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염려로 무슨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염려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6:27)고 물으십니다. 염려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 말이에요. 심리학자도, 가치 있는 염려와 가치 없는 염려를 나누고 사람들이 대부분 가치 없는 염려, 쓸데없는 염려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근심을 벗는 길은 확신한 신앙가운데서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와 걱정과 염려와 근심 모두 벗어버리는 길은 예수님 앞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쉼과 평안을 얻고 사는 것이에요. 이런 삶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가운데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을 항상 느끼고 감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오늘도 살게 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몸이 피곤해도 하루 쉬고 나면 정상적으로 회복되는 자생능력을 주신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살게 해주신 것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 생각 없이 바쁘게 살다보니 감사를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라는 말은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염려에 빼앗긴 시선을 하나님을 통해서 보면 염려가 안된다 하는 것이에요. 오늘 말씀에서는 단순히 기도하라고만 하지 않고 “간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왜 기도에다가 ‘간구’까지 덧붙였을까요. 여기 나오는 간구는 “지속적인 기도”를 의미합니다. 염려 말고 기도해라 기도하되 염려가 다시 자리 잡지 못하도록 계속 간구하라는 말씀이에요.
자전거 타기를 배우려고 할 때 걱정되는 일은 넘어지는 것입니다. 넘어져 다칠까봐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전거를 붙들고 가르치는 사람은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내가 붙들어 줄 테니까 너는 페달을 밟기만 해라” 그리고 페달을 밟아 자전거가 앞으로 굴러갈 때, 이때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페달을 계속 밟아야 넘어지지 않듯이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간구하는 것은 다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페달을 돌리는 일과 같습니다. 모든 문제 해결은 바로 하나님과 연결이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모든 문제해결의 열쇠인줄 다시 한 번 믿으시고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붙드시고 믿음의 생활을 통해 넉넉히 승리하시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