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주일을 맞이하며

로마서 16:1-5

최해근 목사 (몽고메리장로교회)

우리교회는 올해부터 2월 첫 주일을 “목회자주일”로 정하고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의 수고와 기도와 눈물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주일로 보냅니다. 물론 1월 첫 주일은 “섬김 주일”로 정하고 목회자들이 수백명분의 점심친교를 준비하여 교우들을 섬기는 주일로 보내고 있습니다. 섬김과 감사가 함께하는 교회를 세워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이렇게 시도하면서 목회자들을 어떻게 해드리는 것이 아름답게 섬기고 함께 교회를 세워갈 수 있는 길인지를 나누어 봅니다.

목회자에 대한 극단적인 두 흐름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목회자들에 대한 두 극단적인 흐름을 봅니다. 하나는 목회자들에 대한 지나치게 부정적인 관점과 반응입니다. 이분들의 생각은 ‘목회자들이란 다 거기서 거기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극단적인 흐름은 목회자를 하나님보다 더 높이는 자세일 것입니다. 명백하게 성경이 금하고 있는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목회자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자세일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자세입니다. 오히려 이런 극단에서 벗어나 성경적인 기준 위에서 목회자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순종할 때 교회가 평안하고 하나님의 위로와 쉼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싶은데 그것이 마음먹은 것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분들은 과거에 어떤 경유로 인해서든 간에 목회자들로부터 받은 상처와 아픔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잘잘못을 했는가를 밝히기 이전에 이미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길은 상대를 향하여 사랑하고 이해하고 존경하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고 찾았던 사울을 해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나왔을 때 사울이 다윗을 향해 하였던 고백과 같은 것입니다(삼상24:17).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는 사울의 고백을 반대로 생각하여, “당신은 나를 학대하였지만 나는 당신을 선대하겠습니다!”라고 결심하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의 은혜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목회의 길을 걸으면서 이러한 자세가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한지 절감합니다.

이제 목회자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를 생각해봅니다. 저는 성도님들이 이렇게 해줄 때 가장 힘이 되고 도움이 되었기에 다음 3가지를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첫째, 나를 구원으로 인도해 준 복음을 분명히 알고 그 복음을 생명처럼 사랑하기를 바랍니다(행18:24-26).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당시 지식인이었던 아볼로가 가지고 있었던 복음의 중심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그 복음의 중심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아볼로에게 가르쳤습니다. 목회자를 돕는 가장 큰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에 대해서 논리적인 혹은 신학적인 내용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음이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더 깊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만큼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내 삶에서 알아가고 감사해 가는 삶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알아가는 삶입니다.

목회자를 도울 수 있는 두 번째 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자 목회자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고전16:19).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들의 영혼을 아끼고 돌보는 마음으로 표현되며, 그래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자신들의 집을 개방하여 교회를 시작함으로써 형제, 자매들을 돌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까지도 아끼고 돌아보는 자세를 말합니다. 그들에게 임할 십자가의 은혜를 소망하며 인내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로서 성도님들이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장 심방을 갑니다. 그때 가장 흐뭇한 일은 같은 교회 성도님들이 병실을 다녀간 흔적을 발견할 때입니다. 그들이 남기고 간 꽃과 카드, 그리고 그 카드에 쓰여져 있는 신앙의 위로는 목회자의 가슴에 뜨거운 사랑과 헌신과 위로를 남깁니다.

그런데 사람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는 복음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야 하며, 복음의 깊이를 더 아는 만큼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마치 죄의 무서움을 더 깊이 알아가는 사람들이 은혜의 감사함을 더 깊이 드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목회자를 돕는 마지막 길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족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외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시면서까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 나의 구원을 위해 내가 믿기 전부터 눈물로 기도해준 많은 사람들! 그분들의 기도와 사랑과 희생을 한 몸으로 받은 나 자신이기에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코 나의 생명을 내 스스로 끝내지 않는 것입니다. 목회자에게 있어 평생에 지울 수 없는 아픔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내 양이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했을 때일 것입니다. 좀 더 돌아보지 못한 회한뿐만 아니라, 좀 더 나누어주지 못한 사랑과 위로에 대한 아쉬움으로 인해 목회자의 가슴 한 구석은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이 배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를 만나도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하지 마십시오. 아픔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목회자와 함께 밤잠을 새워가며 기도로 견디십시오.

목회자 주일을 지키면서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이 땅의 모든 목회자들은 한결같이 양들을 사랑하고 아낍니다. 적어도 그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목회자들이라면. 이 사실을 기억하고 목회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껴주시고 존경해주십시오. 그들의 눈물을 먹고 당신의 오늘 하루가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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