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라

골로새서 3장 1-2절

박동서 목사 (세크라멘토 방주선교교회)

본문이 기록된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보낸 서신서이며, 골로새교회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7개 교회 중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교회 근처에 있던 교회입니다. 에베소에서 바울 사도를 만나 복음을 듣고 제자가 된 에바브라가 세운 교회이기도 합니다. 동서양 문화가 혼합된 도시의 세속화된 영향으로 복음이 변질되어 혼합주의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골로새교회를 향해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위의 것들을 추구하는 성도가 되라고 간곡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항상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라고 가르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고 합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질수록 행복해진다고 유혹합니다. “Diamond is forever!” 영원한 것은 오직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이라는 상투적인 광고 문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육신의 말초적인 정욕 앞에 너무나 무기력하게 노예가 되고 맙니다. 얼마 전까지 세상을 주름잡던 두 사람이 있습니다.

애플 컴퓨터 회사를 창업하고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같은 획기적인 신제품을 만들어서 천재적인 엔지니어요 기업가를 뛰어넘어 21세기에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는 극찬까지 받았던 스티브 잡스가 그 한 사람입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가장 많은 재산을 축적한 사람이었지만, 겨우 만 56세의 나이에 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1969년 육군대령으로 복무 중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폐지하고 국가원수가 되어 무려 42년간 독재정권을 유지하며 최장기 집권의 역사를 기록해 오다가 반정부 시위군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당한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입니다. 유목민 베두인족 출신인 그는 반미, 반기독교의 기치를 내세우며 서방세계와 싸워 온 아랍, 아프리카, 이슬람동맹의 절대적 지도자였지만 마침내 그 자녀들마저 참혹한 죽음을 맞으며 몰락하고 맙니다.

두 사람 모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류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들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머지않아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한시적인 삶을 살다가 아무 것도 무덤 속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전도서 기자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말합니다.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1:14). 바울 사도 역시 본문 바로 뒤에 말하기를, 세상에서 살 때에 땅에 속한 것들을 향한 욕심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3:5). 바울 사도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대신해서 이 서신을 먼저 받았던 골로새 교인들에게 강권하기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위’란 예수님이 지금 좌정하고 계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뜻합니다. 즉, 우리가 발은 이 땅을 딛고 서 있지만, 우리의 마음과 눈은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삶이란 무엇인지 세 가지 관점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현실을 외면하는 삶이 결코 아닙니다:

기독교 2000여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교회와 성도들이 상상할 수 없는 핍박을 받거나 세상이 너무 혼탁해서 세상을 피해서 숨어 지내던 시절들이 물론 있었습니다. 가바도기아 같은 지하 동굴의 집단거주 유적지나, 카타콤같은 로마의 지하 공동묘지의 예배유적들, 중세의 금욕적인 수도원들과 아프리카 사막의 신비스러운 교부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언제나 성도들의 현재의 삶을 중시하고 가정을 소중히 여겼으며,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어야 하고, 그 목표는 영원한 천국에 두어야 함을 동시에 강조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눈앞의 세상에 두지 말고 예수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영원한 하늘나라에 초점을 맞추라는 바울 사도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1-2).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할까요?

2. 영원의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보아야합니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교회와 같이 눈앞의 현실과 성경의 가르침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던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영원을 바라보며 사는 비밀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6-18).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만 보려고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세상을 이기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유를 통해 우리의 잘못된 시선과 시각을 바로 잡아 주려고 하십니다.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 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16-21). 현재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이 사람은 성공한 부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영원의 기준에서 볼 때 이 사람을 ‘어리석은 자’ 라고 부르십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의 권면처럼 눈을 들어 위엣 것을 찾으며 위엣 것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자신의 꿈도 미래의 계획도 모두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생각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3. 영원한 나라를 깨어서 준비해야합니다:

성경은 이 땅에서의 삶이 영원한 세계의 준비 과정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한 모든 일은 언젠가 하나님 앞에서 평가를 받을 뿐 만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이 땅에서 살 때에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나눔과 베품의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의 지혜라고 가르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 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잠11:24-25). 주님은 이 세상의 종말이 곧 올 것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을 강조하시면서 준비된 삶을 살 것을 누누이 강조하셨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로 알려진 마태복음 25:1-13절의 비유에서도 지혜로운 성도의 삶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신랑 되신 주님을 기다리며 깨어서 준비하는 삶이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열 명의 처녀들 가운데 다섯은 등과 함께 여분의 기름을 미리 준비했지만, 나머지 다섯은 기름을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등에 있는 기름만으로 충분하다고 과신한 것입니다. 신랑은 기대와 달리 늦게야 도착했고 모두 잠이 든 채로 있을 때, 신랑의 도착을 알리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처녀들은 잠에서 깨어 등불을 들고 마중을 나가려 했지만,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들은 그제서야 기름을 구하려다가 신랑도 놓치고 잔칫집 문도 닫히고 만 것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적인 포인트는 준비됨의 여부입니다. 참된 지혜는 다섯 처녀가 준비된 삶 속에서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왔고, 준비되지 않았던 다섯 처녀는 그 어리석음과 게으름 때문에 문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들은 머지않아 다가올 영원한 나라에 대해 전혀 깨닫지 못하고 준비된 삶을 살지 않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등을 갖고 있어도,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다 무용지물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깨어있으라”는 한 마디 말로 강력한 충고를 하십니다. 깨어 있는 사람이 준비하는 삶을 삽니다. 준비하는 사람이 영원한 나라를 들어가서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면서 준비된 삶을 살기 위해 한 가지를 결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적같이 그 날이 임하기 전에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서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시다가 주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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