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호 목사 (뉴욕순복음안디옥교회 담임)
요일3장15절에 요한 사도는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와 사랑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용서하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용서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도 산불로 새까맣게 타버린 산천을 용서하고 화해하여 다시 나무가 자라고 풀이 돋아 복구되는 것처럼 우리 인간들도 말할 필요 없이 용서하고 화해하여 새 출발을 해야만 합니다.
1. 하나님께 용서받고 화해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해해야 되는 것은 우리 모든 사람들의 책임이요, 의무요, 특권인 것입니다. 아담 이후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 된 삶을 살았습니다. 진실로 하나님과 화해하기 전에는 행복이 없는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4:5)처럼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용서 받고 용서를 받아야만 하나님과 화해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한번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영원히 청산되고 만 것입니다.
비누는 어떤 인종이든 똑같이 씻어줍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도 사람 차별하지 않습니다. 죄를 씻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처럼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고후5:21). 고후5장18-19절에 보면 믿고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께 나가서 화해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하면 그 다음 화목해야 되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어느 한 교회에서 먹지 못해 굶어 죽은 세 살짜리 여아의 장례식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충혈된 눈으로 찾아온 알코올 중독자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기도하는 틈에 죽은 어린 아기의 신발을 훔쳐 도망쳐 신발을 팔아가지고 술을 퍼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은 아기의 아버지였습니다. 20년 후 시카고의 한 교회에서 수천 명의 성도들 앞에서 한 사람이 눈물로 회개하며 간증했습니다. 그가 바로 시카고의 유명한 부흥사인 멜 트라더 목사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우리는 용서 받고 하나님과 화해하면 귀한 직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자기를 용서하고 자기와 화해해야 됩니다.
사람은 자기를 비하하고 열등의식과 좌절감을 가질 때 극히 불행합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요. 자기를 따뜻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남편과 자식들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느9장17절에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가 자백되면 한꺼번에 용서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회는 반성하는 기회를 줍니다. 후회하고 회개하되 자책은 하지 말게 되시기 바랍니다.
주홍 같은 죄가 눈같이 되고 진홍 같은 죄가 양털같이 되는 것(사1:18)이니까 없어지는 것입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우리 죄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한번 자복하면 그 다음 청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회개한 죄는 영원히 씻음 받고 사라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이웃을 용서하고 이웃과 화해해야 됩니다.
이웃을 용서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으면 이것이 큰 문제가 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중에 예수님 이외에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웃을 용서하고 이웃과 화해해야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잠16: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한다” 우리는 외면을 보지만 하나님은 속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것입니다. 찰스 스윈돌은 우리가 남을 함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일곱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①우리는 모든 사실을 다 알지 못한다 ②우리는 그 동기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③우리는 완전히 객관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 ④그 상황에 있지 않으면 정확하게 알 수 없다 ⑤우리가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⑥우리에게는 편견이 있고, 시야가 흐려질 수 있다 ⑦우리는 불완전하고 일관성이 없다. 이런 면에 있어서 우리는 재판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미시간 대학에서 1천3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누군가를 용서한 사람이 한을 품고 있는 사람보다 훨씬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용서하고 화해하면 건강하고 면역성이 강해져서 병도 잘 안 걸리고 오래오래 장수하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용서와 사랑의 모범을 보인 분은 요셉입니다. 창50:18-21절에서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10년간 종살이, 3년간, 감옥살이, 부모, 형들 보디발 아내, 원한을 그대로 갖고 있었으면 병 결려 죽었을 것인데 용서하고 사랑했기에 건강하게 살고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악을 선으로 바꾸며 사는 사람입니다.
행복의 기초는 평안입니다. 평안은 용서하고 화해하는데서 옵니다. 인간관계를 치유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용서하고 화해해야 되는 것입니다. 골3장13-14. 엡4장32. 용서가 우리 자신의 평화와 행복을 가져올 뿐 아니라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서로 훌륭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4.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용서해야 됩니까?
고약하게 구는 남편을 얼마동안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까? 바람피우는 아내를 얼마동안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까? 부모 말을 안 듣고 방탕 하는 자식을 얼마나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까? 나에게 가시노릇 하는 이웃을 얼마나 용서해야 됩니까? 내가 예수님 믿고 하나님 앞에 지금까지 몇 번이나 용서 받았는지 계산해보십시오. 주님 앞에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 적이 몇 번입니까? 한평생을 살면서 수만 번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이 용서해주셨습니다. 나에게는 관대하면서 이웃에게는 관대하지 않으려는 것이 우리 사람들의 속성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칠칠 사십구, 490번 용서하라, 이웃이 내게 잘못하면은 490번 이상 잘못해도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마18:21-22). 그러므로 아예 용서하기로 작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서 죽으시면서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우리를 영원히 용서해주셨습니다“(마18:35).
어떤 분의 시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마음의 쓴 뿌리는 독이 되어 자신조차 미워하게 됩니다. 세상엔 용서하지 못할 사람도 용서받지 못할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용서하지 않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항상 씻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속사람도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이웃을 용서하고 화해하고 살아야만 참된 행복과 평안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와 화해가 없는 세상은 가시밭이요, 흑암이요, 배설물 웅덩이요, 오직 좌절과 절망과 슬픔만 있을 따름입니다. 보혈 앞에서 영원히 용서받은 우리들은 영원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용서하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