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을 주는 사람

사무엘상 25장 9-16절

정융교 목사 (새시온침례교회 담임목사)

아브라함 링컨을 부를 때 ‘정직한 에이브’라고 부른다. ‘에이브’라는 이름 앞에 붙은 정직하다는 말이 사람을 더 잘 나타내 준다. ‘나발’이라는 사람의 이름은 미련한, 어리석다는 뜻이다. 자신의 이름을 이렇게 부르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별명인 것 같다. 그의 아내 ‘아비가일’이란 이름은 ‘아비를 기쁘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 집에 사는 부부인데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한사람은 행동하고 말하는데 지혜가 없다. 다른 한 사람은 속히 행동하고 온유하게 말하는 지혜가 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도 사회에서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지혜가 없어 하나님의 근심이 되는 사람이 있다. 지혜가 있어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 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기쁨을 주는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1. 좋은 사람들과 나누어라.

아무 것도 없는 날 갑자기 손님이 찾아오면 음식을 장만하려 분주하다. 그러나 음식이 가득 있는 날 손님이 찾아오면 상에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된다. 양을 기르는 사람은 양털을 깎는 날이 가장 좋은 날이다. 털을 깎으면 수입이 생긴다. 곡식을 심은 자가 추수하는 날과 같다. 따라서 털을 깎는 날 큰 축제가 있다. 풍성한 떡과 무화과 양고기 포도주를 장만하여 수고한 사람들이 함께 먹는다. 그리고 주위에 목자들을 모으고 심지어 지나가는 나그네까지 대접해 준다. 성도에게 주일은 양털 깎는 날과 같다. 풍요롭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라.

부자 나발은 양털을 깎는 날 큰 축제를 벌인다. 털을 깎는 날 음식을 준비하고 잔치를 벌이는 것은 여느 사람과 같지 않았다.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배설하였다. 그러나 전혀 왕 같지 않게 좋은 날에 함께한 사람들은 나발과 함께 일하는 소년들뿐이다. 왜 일하는 소년들을 불러 모았을까? 그들의 땀 흘린 수고를 격려해주기 위함인가. 아니다. 자신이 대접 받기 위함이다. 왕 같은 잔치를 벌인 이유는 나는 대단한 사람이다. 공부를 마치고, 사업이 잘되고, 기술마저도 하나님이 부족한 나에게 주신 은혜라 생각지 않고 나의 노력이라고 자랑하는 것이다. 잔치를 베풀어도 은혜를 감사하는 잔치와 자신을 과시하는 잔치는 다르다.

나발은 양털을 깎는 좋은 날 하나님을 전혀 찾지 않는다. 양들을 잘 지켜 안전한 담이 되어 준 다윗을 기억하지 아니한다. 물론 가난한자가 안중에 없다. 어리석은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나님께 감사함도 없고 주의 기름 부은 종을 기억함도 없고 가난한자가 주위에 없다. 하나님이 없으면 이웃도 없다. 좋은 것은 많은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좋은 것이 아니다. 일상의 음식도 좋은 사람과 나누면 좋은 것이다.

2. 은혜를 말하라.

지혜로운 입술은 주님의 마음을 녹이지만 어리석은 입술은 하나님을 격노케 만든다. 신명기 (8:13)에서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우양이 번성하고 소유가 풍성해질 때에 마음이 교만하여 여호와를 잊는다. 사람은 교만해지면 하나님을 잊는다. 여호와를 잊으면 애굽에서 종 되었던 사실을 잊는다. 그리고 재물을 얻은 것도 나의 힘과 능으로 되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잊으면 결국은 교만한 말을 한다.

양털을 깎는 날 다윗은 나발에게 자신의 소년 10명을 보낸다. 많은 소년을 보내는 것은 많은 물건을 얻어오기 위함이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예우다. 큰 사람으로 대우해주는 것이다. 다윗이 갈멜에서 지낼 때 다윗과 함께한 군사들이 여러 달 나발의 양떼를 지켜 주었다. 갈멜에 있던 일을 상기시키며 좋은날 왔으니 네 손에 있는 대로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한다고 겸손하게 부탁하고 있다. 그러나 나발은 이 말을 듣고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고 화를 낸다. 다윗을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 다윗의 아버지 이새까지 들먹인다. 그리고 ‘내 떡, 내 물, 내 고기’라고 거친 말을 한다. ‘요즈음 주인에게 떠나는 종도 많도다.’ 받은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발은 다윗의 생활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인 것도 안다. 쫓겨 다니는 신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쫓겨 다니는 사람을 무시하고 있다.

나발이 이런 말을 한 까닭은 나발이 배부르게 된 날 취하여 있었다. 왕의 잔치를 벌이고 술에 취하여 있었다. 포도주에 취하여 다윗이 보낸 소년들의 겸손한 말을 듣지 못했다. 깨어야 제정신이 든다. 성도가 진리 아닌 것에 취하면 교만해진다. 성도는 오직 주의 은혜에 취하라.

3. 속히 행동하라

다윗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며 왕으로 기름 부은 자이다. 나발의 눈에는 다윗은 쫓기는 사람에 불과했다. 큰 부자는 부담을 가지고 산다. 부자에게는 책임이 있다. 책임이 있는 부자는 돈쓸 줄 알고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부자는 돈쓸 줄 모른다. 나발은 거부였다. 작은 부자는 노력해서 되지만 큰 부자는 하늘이 내려준다. 하늘이 돈을 바로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위에 도울 자들을 붙여 주신다. 나발에게 일하는 소년들만 주신 것이 아니다. 양을 훔쳐가는 도둑떼들이 극성을 부릴 때 다윗이 담이 되어 지켜주었다. 어리석은 사람은 보답의 기회를 알지 못한다.

다윗은 나발이 무시하는 말을 듣고 따르는 소년들에게 칼을 차게 한다. 호의를 무시로 갚고, 악으로 선을 갚는 자에게 속한 것 한 남자라도 남겨두지 아니하리라 결심한다.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나발의 소년이 전하는 말을 듣는다. 다윗의 행동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것이 아니다. 소년의 말을 듣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직감한다. 잠언 31장 현숙한 여인이 나온다. 현숙한 여인은 밤이 새기 전 그 집사람에게 식물을 나누어주며 일을 맡긴다. 여종에게 일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보다 부지런 하여 일어난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는 일을 맡긴다.

아비가일은 급히 떡, 포도주, 볶은 곡식, 건포도, 무화과 뭉치를 준비하여 나귀에 싣는다. 그리고 다윗에게 달려간다. 어리석은 남편을 설득하지 않고 다윗을 설득한다. ‘예물은 주를 쫓는 소년들에게 주시고 주의 여종의 허물을 사하여 주소서. 청컨대 죄악을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으로 주의 귀에 말하게 하소서, 여호와께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리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이스라엘 왕을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을 안다. 어리석은 나발은 다윗을 떠돌이 종으로 대하나 지혜로운 사람은 들판에 떠도는 사람을 왕으로 대하고 있다. 지혜로운 여인은 자신의 무엇을 행동할 줄 그리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 줄 안다. 지혜로운 여인은 하나님께로 난다. 다윗이 입을 연다.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 할지어다.’

사랑하는 여러분, 좋은날들은 하나님과 이웃과 함께하라. 하나님의 은혜는 말하고 표현하라. 은혜를 말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자랑한다. 그리고 선을 선으로 갚는 일을 위해 부지런하라. 주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축원한다.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