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받은 은혜

고린도전서 15장 10절

이희본 목사 (덴버한인장로교회 원로)

서론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여기 은혜란 말이 세 번 나옵니다. 그래서 “바울이 받은 세 가지 은혜”란 제목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I. 나의 나된 은혜(:10), 이것은 소명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사도로 부르심 받은 은혜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갈1:15).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엡3:7).

바울의 과거는 어떠합니까?

1)그의 인간됨은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였고(:8) 2)그의 행위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일을 하였습니다(:9).

스데반이 순교할 때 찬성하고 하수인의 옷을 봐주는 증인이었습니다. 그러고도 부족해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가지고 신자를 잡아가두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중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고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됐습니다. 그는 비방자, 핍박자, 폭행자, 죄인의 괴수였습니다(딤전1:13-). 그러나 지금은 성도요, 사도중의 사도요, 신약 성경 13권을 저술했고 각처에 수많은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자가 돼 모든 성도의 본이 됐습니다. 가말리엘의 제자로부터 나사렛 예수의 종으로, 율법주의자로부터 복음주의적 사도로 변했습니다. 지옥 맨 아랫목에 갈 자가 천국상좌에 앉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진정한 은혜를 체험할 때 진정한 겸손이 생기는 것입니다. “나의 나” 된 사실을 인정할 때 자부심을 갖게 되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믿을 때 여기서 자기의 가치를 알게 되고 참 겸손한 자가 되며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즉 1)참 가치관 2)참 겸손 3)참 감사가 생기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모를 때 교만이 생기며 불평하게 됩니다.

우리의 과거는 어떠합니까? 영적으로는 고아였고 사망의 그늘아래 거하는 마귀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기업의 상속자요, 주님의 일군입니다. 누구의 일꾼이며 무엇을 하는 일꾼이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왜 목사직이 고귀합니까? 하나님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일, 즉 구령사역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일을 합시다. 아무 직분이 없는 새 신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부터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인줄 알아야 합니다.

II. 헛되지 않은 은혜, 이것은 수고의 은혜입니다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10). 여기 바울이 도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는 말은 솔직한 고백입니다. 교만도 아니고 겸손을 가장하는 위선도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보통 세상 사람들은 평안하고 잘되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잘되고 성공하면 은혜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혹 예수 때문에 가난해지고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불행하다고 하면서 불평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수고한 것을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사례금도 없이 땀 흘리며 배고프고 헐벗고 매 맞으면서 고생하고 수고한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 때문에 수고한 것을 감사했습니다. 이것은 “나의 나 된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고, 사도로 일하게 된 고로 그 하나님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은 수고가 아니라 기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6:1)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진가를 모를 때, 감사하지 않을 때, 소중히 간직하지 못할 때 은혜를 헛되게 합니다. 아무리 소중한 은혜라 할지라도 이것을 잘 간직하지 못하고 헛되이 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은혜의 진가를 알 때 자기의 가치를 알게 되고 자기 직분의 고귀함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감사 생활이 생기고 맡은 일을 감당하며 수고를 아끼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수고, 받은 고난은 어떠합니까? 고후11:23-29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 고후12:10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고난을 기뻐하였다” 골1:29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수고도 은혜, 선행까지도 은혜, 자랑할 수 없습니다. 순교의 은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나의 나 된 은혜가 헛되지 않을 때 수고의 은혜가 따르는 것입니다. ‘자리’에 앉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그 자리를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직분을 받았으면 그 직분을 잘 지켜야 합니다. 주님을 위한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면 수고가 따르고 수고가 헛되지 아니하면 결실, 상급이 있습니다. 가롯 유다는 돈 몇 푼에 사도직을 버리고 자살하였고(시109:8, 행1:20) 니골라는 집사직을 버리고 나가서 이단 니골라 당을 조직하였고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떠났습니다(딤후4:10). 그리스도를 위한 수고를 떠나 세상 쾌락으로 갔고 결국 천국을 버리고 지옥을 가진 것입니다. “나의 나 된 은혜”를 확고히 할 때 그 은혜가 헛되지 않으며 수고하게 됩니다.

III.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은혜(:10), 은혜 중의 은혜 바울의 수고에는 하나님이 함께 했습니다. 마게도니아(유럽)전도에서 그리고 빌립보 옥중에서도 합께 했습니다. 고린도에서는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라도 너를 대적해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행18:10)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담대할 수 있고 승리하고 결실할 수 있습니다.

“나의 나됨”(소명, 임직)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고(창39:22)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여호수아에게도 함께 했습니다(수1: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마28:20).

“지렁이 같은 인간에게도 하나님이 함께 하면 산을 부실 수 있습니다”(사41:14-15). 오늘 하나님이 나와 내 가정과 내 교회와 내 나라와 함께 하신다면.... 즉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다면 두려울 것 없습니다. 빌4:13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결론

바울은 본문에서 나의 나된 은혜, 수고의 은혜,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은 은혜를 간증했습니다. 일언하여 그가 받은 은혜는 구원의 은혜요, 사명의 은혜요, 수고의 은혜요, 결실의 은혜였습니다. 아니 더 나가서 우리가 받은 은혜이기도 합니다. 아니 꼭 반듯이 받아야 할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헛되게 하지 맙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시103:2)고 하면서 “많은 인자를 기억지 아니하고(:7)(시106:7) “그 행사를 잊어버리며”(:13) “그 구원자 하나님을 잊었나니...”(:21)라고 책망합니다.

청년과 노인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청년은 앞을 보며 무엇을 할 것인가? 하며 희망, 포부, 계획 등을 가지고 삽니다. 노인은 뒤를 보며 무엇을 하였는가? 하며 회고, 추억 속에 삽니다(만족, 보람 혹은 자책, 실패감). 주님을 위하여 평생 수고를 많이 한 바울이 노년에 남긴 말을 생각해봅시다. 그것은 과거의 수고를 회상하면서 미래의 상급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정정: 제1289호 6월26일자 ‘푸른초장’의 필자 송성섭 목사님의 담임교회는 ‘남부한인장로교회’ 임으로 이에 정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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