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한들장로교회)
인생의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부모님과의 만남, 스승과 친구와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그러나 당신이 꼭 만나야 할 또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인생의 방황은 예수님을 만나면 끝이 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이 납니다. 그리고, 신앙의 기쁨은 좋은 교회 성도들과의 만남으로 배가 됩니다.
이렇게 인생의 방황을 끝내 주시는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 3:16-17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예수님이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오실 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시고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실 때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 16:16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예수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답해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 자신이 예수님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요 14:6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첫 번째 하나님이 소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 예수님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행 16:31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믿는 자와 가정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때문에 값없이 얻습니다. 그런데 여기 값없이 은혜로 얻는 것을 다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구원이 값없다 하니까 구원을 무가치하게들 생각합니다. 그 생각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도 작용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생각할 때도 작용하고 주님의 종들을 생각할 때 그대로 드러납니다. 일반 사람들한테 그렇게 하면 매우 결례가 될 생각과 행동들을 서슴없이 행합니다. 구원이 값없다고 하니까 그렇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구원에 대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지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무가치하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시편 49편 6-8입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 못할 것은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아무리 사람이 돈이 많다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사람이 돈이 많다고 형제 생명을 영원한 지옥 불에서 건져 천국으로 건져 내기 위한 값을 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명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도록 하는 값은 너무 엄청나서 어떤 사람으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구원은 아무리 재물이 많은 자도 값을 치룰 수 없기 때문에 공짜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공짜가 되었고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자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 결코 무가치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재력으로 해결될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을 무가치하게 생각하고 무가치하게 생활하면 안 됩니다. 정말 소중한 생명을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기에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았기에 존귀하신 그분의 이름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에 합당한 존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엄청난 은혜로 구원받은 자답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한 심리학자가 특이한 실험을 했습니다. 어느 동네의 한 구역을 택해서 집집마다 매일 100달러씩 갖다 놓은 후 그 결과를 관찰하기로 한 것입니다. 실험 첫날 사람들은 그가 미친 사람이 아닌가 의아해하면서도 슬그머니 돈을 집어 갔습니다. 사흘이 지나자 100달러씩 집 앞에 놓고 가는 사람 이야기로 동네가 떠들썩했습니다. 둘째주쯤 되자 현관 앞에 나와 돈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고 셋째주쯤 되자 돈을 받는 것을 이상해하지 않았고 넷째주가 되었을 때는 아주 당연한 것처럼 돈을 집어갔습니다. 실험 기간인 한달이 지나자 학자는 돈을 집 앞에 놓지 않고 그냥 동네를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매우 불쾌해하며 “왜 오늘은 안 주고 가느냐?”고 따졌습니다. 사람들은 이유 없이 베풀었던 은혜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고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주지 않는 것을 서운해하고 불쾌해했던 것입니다.
그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받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에 대해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다 시간이 지나며 당연하게 생각하고 왜 더 큰 은혜를 주시지 않느냐고 불평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편기자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시편 116:12-14입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그렇습니다. 은혜로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계셨습니다. 고백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 마음으로 소원한 것을 갚으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를 아는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믿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은혜를 아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런 은혜와 복이 우리의 삶 가운데 계속 이어져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예수님 자신이 소개하신 예수님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은 바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 16:16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마 16:16베드로의 고백 전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예수님이 알고 싶어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병자를 고치시고 많은 기적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를 알게 하신 분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 하십니다. 베드로의 이 믿음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하십니다. 결국의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교회를 탄생하게 합니다. 요 14:6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자기도 죽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내가 죽는다고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합니다. 그러자 도마가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 그 길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볼 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고쳐주시기도 하고 기적을 베푸시기도 하시지만 결국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심을 고백합니다.
예수님 자신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대개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복이 이 땅의 복으로만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가이오장로에게 편지하는 것처럼 요삼 1:2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영혼이 잘되서 천국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범사가 잘되기도 원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강건하기도 원하십니다. 이것이 영적 원리입니다. 그런데 대개 영혼이 잘되는 것을 생략하고 범사만 잘되기를 바랍니다. 무엇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십니까 마 6:31-34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게 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근심을 아시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는 것에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채워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덤으로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까지 미리 걱정하지 말고 매일매일 주님의 뜻을 구하며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전능자 하나님을 믿는다면서요 우리가 그의 외아들 우리의 생명을 구하러 오신 예수님을 믿는다면서요 그런데 우리는 조바심을 냅니다. 먼저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챙겨 놓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그런데 이게 다 이 땅의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실히 살지 않고 하늘만 쳐다보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먼저 할 일이 하나님 나라와 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는 일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사는 문제 다 해결해 주십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십니까?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의되신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아직도 세상 염려로 걱정하며 사십니까? 베드로 사도도 권면합니다. 벧전 5:7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아직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불안해 하고 방황하고 계십니까? 빌 4:6-7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런 은혜와 복이 우리 모두의 것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첫째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믿기만 하면 은혜로 구원을 얻습니다. 그 구원은 우리가 계산할 수 없이 크기에 공짜입니다. 이런 크신 은혜를 잊지 맙시다
둘째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직도 세상 일에 매여 예수님을 이 땅의 복주시는 분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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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9.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