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

로마서3:23-24
신동기 목사

(뉴욕심포니교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세계에서 해안선이 가장 긴 나라는 캐나다입니다. 그 다음은 노르웨이입니다. 노르웨이는 해안선이 긴 나라답게 수산물 수출도 세계 2위입니다. 특별히 노르웨이는 연어 수출 대국입니다. 노르웨이의 연어는 전 세계 연어 수출 양의 47%나 차지합니다. 그런데 그 연어의 90%가 양어장에서 기르는 것입니다. 그 양어장에서 길러지는 모든 연어의 운명은 사람들의 밥상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양어장에 있는 연어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모릅니다. 그 양어장을 탈출해서 넓은 바다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놀고 싶다는 마음도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있는 곳이 이 세상 전부인 줄 알 것입니다. 그렇게 그 연어들은 양어장에서 태어나 그냥 그렇게 사람이 주는 사료를 열심히 먹고 몸을 불려서 사람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인간은 죄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죄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식도 없습니다. 그저 그렇게 사탄이 주는 밥을 열심히 먹으면서 열심히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죄인 줄도 모릅니다. 죄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마음도, 영생에 대한 갈망도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인생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살아갑니다. 

죄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 없이는 회개도, 거듭남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는 자기가 죄인인 것을 절대로 깨달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자기가 죽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죄로부터 건짐을 받은 자가 자기가 죄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이 없이는 회개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1장 10절에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죽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영접하는 자는 어떤자입니까?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입니다. 즉 구원은 사람의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먼저 살아난 자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회개도 할 수 있습니다. 

생선을 파는 가게에 가보면 비린내가 진동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하루 종일 장사를 하는 사람은 그 비린내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 냄새가 몸에 베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죄로 가득찬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죄가 아닌지 알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이 모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도 해도 되는 줄 압니다. 죄를 짓고도 양심의 가책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본래 죄가 없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육신의 모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육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선하심, 자비하심, 같은 것들이 인간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인간이 가지고 있는 거룩, 선, 자비 같은 것은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그러한 모양을 사람에게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동산의 모든 열매를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그 한 가지 명령을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마음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습니까? 사단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천사가 하나님 같이 되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아 쫓겨난 것입니다. 아담이 그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사단의 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이후로 모든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 그것이 죽음입니다. 아담의 죄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도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 생명이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존재하는 모든 것은 부패하거나 죽거나 없어집니다. 있는 상태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1절에서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울왕은 어른은 물론이고, 어린 아이와 젖먹이, 짐승들까지 모두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짐승들 중의 좋은 것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좋아하십니다. 결국 그 일 때문에 사울왕은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사람의 선악 기준으로는 어린아이까지 죽이는 것은 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죄의 기준은 죽이고 안 죽이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죄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아니냐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을 향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사람이 선악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스스로 선악의 기준을 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판단은 하나님만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게 되었다는 것은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서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죄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선악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느냐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되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을 믿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죄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아니냐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세상은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죄라고 하십니다. 세상은 남의 것을 도적질 했을 때 죄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남의 것을 탐내는 것도 죄라고 합니다. 세상은 자기 아내나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과 성적인 행동을 했을 때 죄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사람에게 음욕을 품은 것만으로도 죄라고 합니다. 이런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모든 죄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마음으로 생각한 것이 죄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죄를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회심 후에 옛 습관의 유혹으로 갈등하고 자기 힘으로 죄와 힘겹게 싸우고 있을 때 누군가 그에게 이렇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서지도 못하는 주제에 자기에게만 매달리고 있나. 어서 그분에게 그대를 맡기게” 사람이 스스로 죄와 싸워서 이길 방법은 없습니다. 만약에 그럴 방법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은 회심 후에도 계속해서 죄의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의 육신을 벗기 전에는 이 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힘으로 죄의 유혹에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 즉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를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 구원과 화목과 영생과 죄로부터 해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 내 주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소망,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순교자 폴리캅은 화형을 당하는 순간에도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죽을 위기에 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고난이 올 때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있더라도 예수님 한 분 만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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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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