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민수기 4장 34-49절)

호성기 목사 (필라 안디옥교회)

이 시대의 소통의 도구는 SNS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들어가서 숱한 정보를 얻고 삽니다. 상당히 유익한 것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거짓정보, 가짜 정보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터넷 교회관련 사이트에 들어가면 갑자기 ‘헌금을 말하는 목사는 전부 가짜입니다. 속지마세요’라는 말이 뜹니다. 문제는 그것이 즉시로 그 사람의 뇌와 가슴에 각인이 됩니다. 교회에 나갔더니 어떤 목사님이 헌금에 대하여 설교합니다. 그 사람은 ‘아, 저 목사는 완전 가짜구나’라고 결론 내어버립니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선교에 참여하라 교회에서 매년 단기선교에 참여하는 사람의 숫자를 셉니다. ‘작년보다는 더 많이 참여합시다. 작년에는 364명이 단기선교에 참여했는데 올해에는 400명 이상은 참여하였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어떤 분은 왜 교회가 자꾸 숫자를 셉니까? 오른손이 하는 것 왼손이 모르게 하면 안됩니까? 라고 아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면서도 교회에 대하여 비판하고 불평하는 많은 이유 중의 하나는 모든 것을 ‘내 생각’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왜 헌금이 중요한지 왜 숫자를 세는 것이 중요한 하나님의 생각인지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문둥병에서 고침 받기 위하여 요단강에 가서 7번 씻으라는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듣고 아람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내 생각에는 내 고향에 있는 아바나와 바르발 강이 요단강보다 더 깨끗한데 거기 가서 씻는 것이 낫겠다’(왕하5:1-12)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아만처럼 삽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지도 않고 그냥 가볍게 내 생각과 다르면 전혀 따르려는 마음조차 갖지 않고 사는 이 시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고 나의 길은 너희 길보다 높다’(사 55:9)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을 아는 길은 성경을 읽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내 생각과 달라도 성경을 고치려 하지 않고 내 생각을 고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민수기는 영어로 Numbers 즉 ‘숫자’라는 뜻입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유대인들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하였습니다. 광야에 3백만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홍해 바다를 건너 구원받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를 세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이름은 ‘민수기,’ 즉 구원받은 백성들의 숫자를 세었다고 이름 붙여졌습니다. 그 인구조사의 목적은 유대인들의 숫자가 많음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430년 동안 노예생활 하던 유대인들이 도저히 구원받지 못할 형편에 있을 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음을 열방과 만민에게 선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구원받은 사람들의 숫자를 세게 하신 것은 다윗이 인구조사를 해서 숫자를 센 것과는 정 반대의 계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얼마나 강한 왕인가?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과시하기 위하여 막강한 군대의 숫자를 세게 하였습니다. 주변의 리더들도 다 반대하였고 특별히 하나님이 싫어하심에도 불구하고 강행하였습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서 크게 책망을 받고 그 대가로 7만명의 군사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삼하24:15).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계수는 자기 과시용, 자기선전용, 자기를 높이기 위한 계수는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은 하나하나 세어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옷에 술을 달고 그 술 위에 파란색 끈을 달아 이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민15:39).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을 때 잡힌 물고기 숫자를 세게 하셨습니다. 순종의 결과로 얻은 열매가 153마리나 된 것을 계수하였습니다(요21:11).

오병이어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신 기적의 열매는 남자 장정 5천명 이상이 먹고 어린아이와 여자는 숫자도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였고 남은 것이 12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다고 계수하였습니다(마14:20). 예수님은 내가 내 머리털의 숫자를 알지 못하고 있을 때도 나의 머리털의 숫자도 다 세시는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마10:30). 나의 형편과 처지와 나의 삶을 나 자신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신다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선포로 하나님은 숫자를 세십니다. 숫자를 세시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이 구원받은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선포입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철저히 계수하십니다. 구원 얻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처음으로 숫자를 세게 하신 것이 모든 이스라엘 지파 중 레위지파를 제외한 11지파의 20세 이상 된 남성의 숫자를 세게 하셨습니다. 그 숫자를 세니 605,330명이었습니다(민1:46). 이 숫자를 근거로 학자들이 어린아이와 여자들까지 다 합하면 족히 3백만명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20세 이상 된 남자는 칼과 창을 잡고 약속의 땅을 점령하기 위하여 앞장설 사람들의 숫자였습니다. 즉, 이스라엘 3백만명을 대외적으로 보호하고 가나안의 7곱 족속들과 전쟁을 하기 위한 군사로 세움 받을 대표성 있는 사람들의 숫자 계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노예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는데 앞장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앞장서서 이끌어 나갑니다. 아브라함도 조카 롯이 포로로 단까지 끌려갔을 때 집에서 기르고 훈련시킨 정병 318명과 함께 가서 롯을 구출하여 돌아왔습니다. 구원에 감격하는 성도들이 교회에서 점점 더 숫자가 많아져야 합니다. 20세 이상된, 즉 힘을 쓸 수 있을 때 구원에 감사하여 단기선교에도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사6:8)라는 사람의 숫자가 매년 점점 늘어나야 합니다. 그 대표성 있는 20세 이상 남자의 숫자를 세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에 감격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하여 앞장서서 영혼을 마귀의 손에서 구출하여 나가는 대표성으로 헌신하여야 합니다.

헌신자의 숫자를 세게 하심 두 번째로 하나님은 레위인의 숫자를 세게 하였습니다. 레위인은 유대인이 출애굽 할 때 어린양의 피의 흔적으로 모든 초태생이 구원받은 것처럼 이스라엘 전체 백성가운데 초태생으로 구별 받은 지파였습니다. 모든 초태생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처럼 레위인도 장남으로 택함 받아 성막에서 온전히 다른 모든 지파를 대신하여 섬기게 하셨습니다. 레위인의 계수는 처음 태어난 장남 중에 1달 이상 된 남자의 숫자를 전부 세었습니다. 22,000명이었습니다. 다른 11지파의 초태생으로 1달 이상 된 남자를 세웠더니 22,273명이었습니다. 레위인 초태생 한 사람이 이스라엘 전체 초태생 1사람씩을 대속하여야 하는데 273명이 더 많아 레위인으로서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273명은 한 사람당 5세겔의 속전을 내게 함으로 값을 치르게 하였습니다. 레위인의 숫자 계수는 대속성의 헌신을 하는 숫자 계수였습니다. 레위인은 성막에서 봉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멸당하지 않게 대속적인 헌신을 하라고 구별 받았던 것입니다(민8:19). 레위의 아들은 3명이었습니다. 므라리, 게르손 그리고 고핫이었습니다. 그들의 숫자는 30세에서 50세까지의 남자만 계수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막에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신하여 대속적으로 섬기게 하였습니다. 므라리와 게르손의 아들들은 성막을 소와 수레에 싣고 옮길 수 있도록 소와 수레도 주었습니다. 그러나 고핫 자손은 성막 안에 있는 성물을 어깨에만 메고 옮기는 임무가 주어졌기에 소와 수레는 주어지지 않고 오직 어깨로 성물만 메고 가게 하였습니다.

성막중심으로, 즉 하나님 중심으로, 신본주의로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이 시대의 대속적인 희생과 헌신으로 교회 안에서 봉사하실 분들의 숫자도 계수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이들의 숫자는 경험과 육신적인 능력이 있는 30세에서 50까지의 남자들이었습니다. 인생의 가장 황금기에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모든 성도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믿음의 본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속적인 봉사와 헌신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계수하여야 합니다. 다 구원 얻은 것에 감사함으로 드리는 헌신입니다.

순종은 참여로 나타나 마지막으로 이 레위자손이나 다른 모든 지파의 가문의 지도자들이 가문을 대표하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고 헌신하게 하였습니다. 순종은 참여입니다.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의 헌신에 제외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순종의 대표성’, ‘구속의 대속성’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구원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구원받은 모든 백성과 성도는 자원하여 순종함으로 주님의 일에 참여합니다.

이 레위자손도 성막에서 섬길 때 남자 25세 이상 된 자들이 다 섬기게 하였습니다. 명단에 올라가는 자는 30세부터인데 25세 된 자들은 명단에 올라가지는 않아도 5년 동안 30세 이상 된 형들이 성막에서 봉사하는 것을 도제(apprentice)처럼 보고 그대로 봉사하는 기간을 주어 섬기게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실행하여온 서리집사 제도 같은 것입니다. 젊은이들을 도제처럼 미리 훈련받으면서 섬기게 하였고 30세가 되면 정식으로 성막에서 섬기는 자의 명부에 올렸던 것입니다.

50세가 넘으면 성막을 옮기던지 성막안의 성물을 옮기던지 하는 일은 그만두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50세 이상 된 레위인은 성막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의 멘토링입니다. 50이 넘으면 육신이 연약하여서 직접 몸으로 섬기는 봉사는 못하지만 몸으로 헌신하는 후배들을 영적으로 그리고 노하우를 잘 전해주는 멘토로 섬기게 하였던 것입니다.

즉 교회안의 봉사는 몸으로 직접 뛰는 젊은이들도 필요하지만 경험 없는 자들에게는 미리 배우면서 봉사할 수 있는 도제 같은 기간도 주고 나이 많아 은퇴하신 분들은 몸으로는 직접 교회 안에서 봉사는 못하여도 몸으로 뛰며 봉사하는 분들을 위하여 멘토로서 기도하여 주고 지도하여주는 빅 부라더(BIG BROTHER) 같은 자들로 계속 봉사 헌신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구원받은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여 ‘주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주소서’(사6:8) 하는 대표성 있는 헌신자의 숫자를 계수 하십니다. 교회 내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철저히 섬기는 신본주의의 신앙인의 숫자를 계수하시며 저들을 통하여 다른 성도들이 본을 받고 따라오게 하는 대속성의 헌신자의 숫자를 계속 계수하십니다. 나이가 어리면 어린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순종으로 참여하는 헌신자의 숫자를 계수하십니다. 우리도 받은 복을 세어봅시다. 받은바 은혜에 주님께 감사로 순종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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