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종 목사 (필라델피아교회)
오늘 본문은 예수님으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는 백부장의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역한글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저를 기이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가운데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했다고 놀라시듯 크게 칭찬을 하신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의 믿음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이런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서 주님으로부터 크게 칭찬 받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세 가지로 결단의 은혜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1. 칭찬 받는 믿음의 사람은 착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삽니다.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의 신분은 백 명의 부하를 거느리는 로마군인입니다. 당시 종교적 신분으로 보면 당연히 이방인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 말로만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랑하는 유대인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그리고 자신의 재산까지도 아끼지 않고 회당을 세워준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 예배당을 건축해준 셈이 됩니다.
또한 백부장은 평상시 마음이 선하고 착한 사람인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죽을병에 걸린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신도, 자신의 가족도 아닌 다름 아닌, 종이었습니다. 당시에 종의 신분은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고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에 불과한 대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여겨왔던 것입니다(2절). 여러분!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기이히 여기시고 칭찬하신 것처럼 그는 자신의 삶에서 착한 마음과 진실한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믿음의 사람은 이 같은 헌신과 희생적 사랑의 행실이 있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집회에서 큰 소리로 주여 삼창만 한다고 간절한 믿음일까요? 행17장에 나오는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말씀대로 살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신사적이라는 의미는 ‘온유하다’의 뜻으로 그들의 성품이 정직하고 공평하고 의롭고 진리에 열심의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곧 눈에 보이는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엡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마5:13에서 주님은 성도된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말씀합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매일의 삶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착하고 선한 마음과 헌신과 사랑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 일상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성도된 우리가 착하고 진실한 행실로 삶의 현장에서 일상의 예배자가 되어 주님으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원합니다.
2. 칭찬 받는 믿음의 사람은 말씀을 받고 겸손히 순종합니다.
본문 6절 이하에서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말씀만 해주시기를 간구하며 겸손히 순종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실 그대로 받는 것은 최고 수준의 믿음이며 참 성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10:35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행동을 보시고 참으로 놀란 이유는 율법에 도통했다는 바리새인들과 말씀을 연구하고 잘 안다는 서기관들과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드린다는 대제사장들 전부보다 백부장이 칭찬을 받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실 그대로 받고, 온전히 믿었고 겸손히 순종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기적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만이 그 마음에 천국을 마음에 품고 산자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100세에 난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번제물로 드리라고 말씀이 임할 때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실천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으며 ‘여호와 이레의 은혜’를 입게 된 줄 믿습니다. 눅5장에 보면 어부로 잔뼈가 자란 시몬 베드로였지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할 때 자신의 경험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말씀대로 그물을 던질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아 두 배에 가득 채우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헬라어로 로고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믿음의 영감으로 자신이 받는 순간 레마로 변합니다. 요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에서 이 말씀은 ‘로고스’입니다. 로고스는 객관적인 하나님 그 자체이며, 하나님의 뜻과 법, 혹은 하나님의 영적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레마는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가 감화 감동이 되어 믿음으로 내 심령 깊은 내면에 닿을 때 ‘그 말씀’이 레마가 되어 내 인격을 변화 시키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행복한 인생으로 바꿔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고스는 문자화된 성경 말씀으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면 레마는 그 로고스인 말씀을 우리 각자의 삶에서 내 것으로 받아드리고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약성경에서 로고스는 330번 레마는 68번 다르게 쓰여진 것은 이런 비밀이 담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자신에게 임하는 말씀으로 아멘하고 받아먹어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로고스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겔3: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고 했습니다. 다윗도 말씀을 먹었습니다. 시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아멘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로고스가 ‘믿음의 씨앗’이라고 하면 레마는 ‘믿음의 결단’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똑같이 말씀을 듣고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그냥 글에 불과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아멘할 때 백부장처럼 “주여,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말씀대로 이루어질 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생에서 레마의 능력으로 역사할 줄 믿습니다.
3. 칭찬받는 믿음의 사람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섬깁니다.
본문 7절 상반절 말씀 속에 담겨진 의미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고 믿고 섬기겠다는 순종과 신본주의 신앙 고백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이같이 고백하는 장면들이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데, 특별히 기적을 체험한 모든 사람들의 고백이 이와 같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 고백합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1:49)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니고데모도, 막달라 마리아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순간 자신이 죄인이고 연약한 인간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7가지 표적과 기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장에 가나 혼인잔치의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기적부터 오병이어의 기적과 날 때부터 소경된 자와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앉은뱅이를 낫게 하신 것과 말씀으로 신하의 아들을 고친 사건과 마지막으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이적들은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쓰여진 목적이 무엇입니까? 요일5:13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5:13)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주님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시고 우리는 그에게 구한 것을 얻은 줄로 알게 하시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기적의 역사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할 때 일어난 줄 믿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류는 하나님을 만나려고 찾아 헤맸고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참 하나님이 아닌 거짓 신을 만들어 섬기고 어떤 사람들은 귀신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세상 권력이 하나님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돈이 곧 하나님입니다. 어떤 이들에게 건강이 하나님이고 어떤 가정은 자식이 하나님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잘 먹고 오랫동안 잘사는 것이 곧 하나님으로 여깁니다.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찾아 헤매고 그 하나님은 힘이 세고 자기 소원을 빌면 그대로 이루어주는 가짜 하나님을 만들어 섬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내신 것은 인간이 만든 거짓 신, 우상에서 구원하기기 위함이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까지 광야에서 우상 즉 애굽의 황소를 금으로 다시 만들어서 이것이 하나님이라고 섬기다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날 미국의 금융과 패션의 중심가 뉴욕 맨해튼 한 복판에 힘과 풍요의 상징인 황소를 우상으로 만들고 이 황소가 곧 하나님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영안을 열어 볼 수 있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도 소원이 있으십니다. 그 소원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하나님 되도록 우리가 믿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신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 시간 베드로에 묻듯이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고 있습니까?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외친 말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백부장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겸손히 그 발아래 엎드려 말씀만 하옵소서 종이 믿고 따르겠나이다 할 때 그 믿음을 보시고 크게 칭찬하시며 역사하심과 같이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더욱 경외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함으로 주님으로부터 크게 칭찬받고 영생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원하며 축복합니다. logosnews@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