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수 목사 (하와이 행복한교회)
우리 인간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걱정과 근심의 연속인 듯합니다. 세상에 염려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염려하느냐고 물으면 딱 부러지게 할 말도 없습니다. 부자는 돈이 많아서 염려하고,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서 염려합니다. 자식이 있는 사람은 자식 때문에 염려하고, 자식이 없으면 자식이 없어서 염려합니다.
참 행복하다 싶은 사람도 가까이 가서 말씀을 나눠보면 남모르는 슬픔과 괴로움과 근심과 걱정이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아이들 문제, 장래문제, 사업문제, 인간관계... 문제도 많고 걱정근심이 많은 세상입니다. 요즘 모든 물가가 오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100불을 가지면 이럭저럭 몇 가지 물건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같은 100불이라도 몇 가지 사다보면 돈이 부족합니다. 그만큼 물가가 많이 올라서 걱정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우리들의 삶이 걱정근심의 삶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 신앙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염려 덩어리를 지고 사는 것이 인생이에요. 신앙이 좋은 여 집사님이 갑자기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고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담당의사로부터 남편이 췌장암인데 '매우 위험한 상태'라는 말을 듣자 그 집사님은 충격을 받고 그만 그 자리에서 졸도하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부인의 손엔 성경 찬송가가 들려 있었다고 합니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성경을 챙겨 가지고 갈 만큼 믿음이 있었지만, 정작 큰 염려와 근심 앞에 서면 힘없이 쓰러지고 마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데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는 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까? 염려와 근심은 사탄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7절에 의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에게는 평강이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평강이 있다는 말은 걱정 근심이 없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그 평강의 하나님 안에 있지 못하면 근심 걱정 염려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지 않을 때 염려와 걱정근심이 온다는 말이에요. 우리가 주님 안에 있지 않을 때 사탄이 그 틈을 타고 우리 마음에 들어오고 원망과 불평을 심어 놓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걱정근심을 주시지 않습니다. 잠언 10장 2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애가 3장 33절에는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걱정과 근심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시면 걱정근심대신 감사기도를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우리는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가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척척 응답을 받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건강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업이 잘 될 때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의 의도는 염려 근심할 일이 있어도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근심할 일이 있어도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도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고가 생겨도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몸이 건강하지 않아도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근심 걱정이 있는 그런 상태에서도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이에요. 여기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는 이 말씀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에요. 왜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까? 근심 중에도 걱정 중에도 감사함으로 아뢰라 하는 것은요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다" 하는 믿음입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신다" 하는 믿음입니다.
세상의 모든 걱정근심은 내가 염려함으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염려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염려로 무슨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염려로 이루어지는 일이 있어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 6:27)"고 물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근심을 벗는 길은 확신한 신앙가운데서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와 걱정과 염려와 근심 모두 벗어버리는 길은 예수님 앞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분이 무리한 나머지 병이 들어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판정을 받았습니다. 소변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온 몸이 퉁퉁 붓기도 했습니다. 투병생활이 계속 됐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그는 회복됐습니다. 소변도 제대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렸습니다. 무엇보다 시원하게 소변을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한없는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분은 요즘도 소변볼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너무 생각 없이 바쁘게 살다보니 감사를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라는 말은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염려에 빼앗긴 시선을 하나님을 통해서 보면 염려가 염려가 안된다 하는 것이에요. 오늘 말씀에서는 단순히 기도하라고만 하지 않고 "간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왜 기도에다가 '간구'까지 덧붙였을까요? 여기 나오는 간구는 "지속적인 기도"를 의미합니다. 염려 말고 기도해라 기도하되 염려가 다시 자리 잡지 못하도록 계속 간구하라는 말씀이에요. 자전거 타기를 배우려고 할 때 걱정되는 일은 넘어지는 것입니다. 넘어져 다칠까봐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전거를 붙들고 가르치는 사람은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내가 붙들어 줄 테니 너는 페달을 밟기만 해라" 그리고 페달을 밟아 자전거가 앞으로 굴러갈 때, 이때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페달을 계속 밟아야 넘어지지 않듯이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간구하는 것은 다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페달을 돌리는 일과 같습니다. 모든 문제 해결은 바로 하나님과 연결이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모든 문제해결의 열쇠인줄 다시 한 번 믿으시고 하나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 속에 우리의 영혼이 병들게 해선 안 됩니다. 모든 것 주님 손에 올려놓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 안에 거하시는 축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