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 감동을

(에스라 1장 1-11절)

이종태 목사 (심령이 가난한 교회)

사람이 감동을 받으면 몰입을 하게 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결심을 하기도 하고 그리고 그 감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도 한다. 그러면 하나님에 의한 감동이 임하면 어떻게 행동할까?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감동을 받으며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감동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감동은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감동을 전달하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인 에스라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하나님에 의한 바벨론을 통한 유다의 70년 포로생활이 끝나고 바사 제국의 고레스 왕에 의해 1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지는 내용의 말씀이다. 바벨론 제국을 정복함으로 근동의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한 바사 제국의 고레스 왕은 피정복민들에 대한 유화 정책을 펼쳤다.

즉 그는 앗수르나 바벨론의 왕들이 그랬던 것처럼 피정복민들의 강제 이주를 추진하기보다는 오히려 피정복민들로 하여금 각자 본토에 거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특히 자신들의 교유한 종교를 신봉할 수 있도록 관용을 베풀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고레스의 조서에 의해 BC 605년 제1차 포로로 끌려간 이후 거의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던 유대인들도 팔레스틴으로 귀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에 두 차례에 걸친 유대인 귀환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본문은 BC 537년에 이루어진 제1차 귀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레스의 이러한 조처는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기 때문에 비롯된 결과였다. 결과적으로 선민 이스라엘이 영원하며, 다윗 가문이 그 위를 잇게 되리라는 다윗의 언약을 신실히 지키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의지가 나타나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일어나 귀환하는 유대인들에게 예물을 주는 광경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방인들이 볼 때 그들 유대인의 귀환이 승리의 귀환이며, 하나님의 축복받음의 결과라는 사실을 공감하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고레스 왕에 의해 실행된 성전 기명의 반환은 이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키며, 여호와 중심의 나라를 세운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감동이 준 영향이 무엇인지를 살펴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된 영상을 하나 보게 되었는데, 그 영상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인 2016년 9월에 출간한 랜스 월나우 박사가 지은 “혼돈의 시대에 하나님이 선택한 후보”라는 책을 소개하며 인터뷰하는 내용이었다.

그곳에서 월나우 박사는 한 그룹의 목사들과 함께 첫 번째 트럼프 타워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 트럼프를 기름 부으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두 번째 다른 그룹의 목사님들과 트럼프 타워를 방문하고 돌 와서는 하나님께서 이사야 45장의 말씀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다. 이사야 45장은 오늘 본문의 나타나고 있는 고레스 왕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혼돈의 시대 속에 일반은총을 통해 믿지 않는 자를, 혹은 믿음이 없는 자를 들어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바로 트럼프며 그는 기독교인들이 그동안 나타내지 못했던 담대함이 있으며, 그에 의해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교회와 성도들이 깨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트럼프에게 주어진 은사는 바로 담대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 역시 트럼프와의 관계를 통해 이전에 없었던 담대함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트럼프는 교계 목사님들과의 만남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개신교 지도자들을 많이 만나 보면서 한 가지 특성을 봤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종교자유 상실 가능성에 대한 큰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1964년 재정된 교회의 정치 참여, 교회목사의 정치적 발언을 금지한 존슨 수정헌법을 폐지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000여명이 모인 목회자들이 그 말을 듣고도 박수를 치거나 함성을 지르지 않고 그저 놀란 사슴 모양 아무 반응하지 않고 앉아만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그동안 교회는 교회의 정치참여 금지법 뒤에 숨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회 문제, 인종문제, 성차별 문제, 동성문제 등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었는데 만약 교회 목사의 정치적 발언을 금지한 법이 폐지가 되면 그 이슈에 대하여 목회자들이 의사를 표시해야 하기에 그에 대한 부담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미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려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감동이 임하여 트럼프와 같은 담대함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담대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감동하심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담대함이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으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1. 깨달음이 있다(1-3)

바사 제국의 고레스 왕은 페르시아의 초대 왕으로 페르시아 민족의 통합 작업에 착수, BC 550년 메대를 통합하고. BC 539년에는 바벨론 제국을 정복함으로써 대제국을 건설한 인물이다. 그가 바사제국을 통치하기 시작한 해에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감동케 하시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귀환과 회복에 관한 예언으로서 바벨론 포로 생활이 70년 동안 계속 될 것이며, 70년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마치 오랜 옛날 아비멜렉과 발람의 마음에 역사하신 하나님, 또한 느브갓네살의 마음에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고레스왕의 마음과 생각에 직접 영향을 주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감동이 있는 곳에 깨달음이 있다. 이방 대제국의 왕이나 하나님에 의한 감동이 있게 되니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신을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알고, 자신이 이룬 대 제국 역시 그 하나님이 이루어주셨다고 고백하며, 그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놀라운 깨달음은 바로 하나님에 의한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감동이 있는 곳에 깨달음이 있다. 깨달음이 있어야 또한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2. 관용을 베품(4)

고레스 왕은 포로로 잡혀 와서 바벨론 지역에 살고 있는 전 이스라엘 백성을, 즉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 잔류자 모두를 포함하는 포로귀환 조치를 내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돕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조처는 가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성전을 건축하기에 용이하고, 또 그들이 예루살렘까지 가는 동안의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처였던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광경은 200여 년 전 이사야 선지자가 출애굽 사건과 대비하여 예언한 바 있다(출3:21, 22).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빠져 나갈 때 빈손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그곳 이집트 거주민들이 주는 금은 패물과 의복 등을 가지고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11:16, 즉 앗수르에 의해 포로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어 돌아 올 때 출애굽할 때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감동이 있는 곳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금, 은 그리고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위하여 예물을 드리도록 조서를 내리는 관용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감동이 있는 곳에 관용이 베풀어진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인한 관용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3. 헌신을 하게 됨(5)

왕명을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하려고 유대로 돌아가는 자들은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대로 약속의 땅으로 되돌아오게 하신 자들이었다. 즉 많은 이들이 포로된 곳에서 안주하기를 원했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택한바 되어 다시 되돌아 온 자들로서 나무의 그루터기와 같은 남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포로로 생활하였기에 1세대들은 늙고 힘이 없어졌고, 포로로서 타국의 삶에 익숙해진 2세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을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자들이 일어나 성전 건축을 위하여 헌신을 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감동하심은 성도들로 하여금 헌신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 헌신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게 된다.

4. 자원하게 됨(6-11)

고레스 왕의 조서에 대한 유다 백성들의 반응이 예상 했던 것에 미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 열 지파는 조서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단지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족장들만이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그들이 이루어놓은 생활터전과 부를 포기하기를 꺼려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것으로 보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에게 구원 역사를 베푸셨지만 그 백성 대부분은 현세에 더 안주하고, 하나님의 약속과 돌보심을 경홀히 여기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바벨론의 생활 터전을 모두 정리하고 떠나는 유대인들은 그들의 이웃 족속들과 바벨론에 남아 있는 유대인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귀한 금, 은 보화들을 가지고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때로 우리가 상상도 못할 방법을 사용하심을 발견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성전 기명들의 반환에 대하여 기록을 하고 있는데 이 기명들은 원래 성전에서 예배할 때 사용되었던 거룩한 기구들로서 바벨론의 느브갓에살 왕이 예루살렘을 3차에 걸쳐 침공을 하면서 전리품으로 또는 보물로 탈취해 갔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바사 제국의 고레스 왕은 바벨론을 정복한 후에 그의 정책에 따라 그때까지 바벨론에 남아 있었던 모든 기명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 역시 고레스 왕의 이러한 결정이 고레스 자신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주장하시었기 때문임을 알게 하고 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으니 자원함으로 기쁘게 예물을 드리고 성전의 기물들을 돌려보내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감동을 받으면 깨달음을 얻고 관용을 베풀며 헌신을 하되 자원하는 마음을 갖는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pspc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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