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 시편 13편 1-6절 )

유상열 목사 (리빙스톤교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의 삶을 요동시키는 원인 중의 하나가 두려움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6, 7개월 정도가 지나면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하여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의 순간까지 우리는 참으로 많은 갖가지의 문제로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두려움이란 본능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느끼는 영역이 육체적인 영역을 넘어서 정신적인 것으로 점차 넓어집니다. 먹고사는 일로 시작해서 죽음의 문제까지, 그리고 아직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서 생각되는 갖가지의 대상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은 세상적으로 성공을 했다고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가진 것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두려움이 무엇이건 간에 만일 그 두려움이 우리의 삶의 평화를 빼앗고 있다면 그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삶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두려움을 몰아낼 수 있을까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리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은 빛이라는 사실입니다.

두려움은 어두움에서 출발합니다. 어두움은 사탄의 본질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흔히 사탄의 공격으로 인한 어두움을 향한 내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두움의 실체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빛이 되십니다. 그 분을 마음속에 주(主)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영원한 빛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구원이십니다.

인생이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나그네 여정입니다. 예상치 않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눈보라가 치고 성난 파도를 만나기도 합니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갖가지의 시련이 닥칩니다.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국가도 그렇습니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세기의 가공할만한 끔찍한 비극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크던지 작던지 모든 재난과 환난으로부터 능히 피하여 스스로 구원할 수가 없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시지 아니하시면 누구도 지켜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시편 27:1). 다윗은 일찍이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고 고백하며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생명의 능력이십니다.

시편 27편 1절 후반을 보면 하나님은 구원이심을 고백했던 다윗은 이제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능력이란 말은 산성, 방패, 요새와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하나님은 생명의 능력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생명의 보호자가 되시며 피난처가 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로 생명의 능력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 곁에 계시다는 것을 믿기만 한다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두려움으로 몰고 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빛 되시고 구원이시고 생명의 능력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한 세상의 그 어떤 악한 것들도 우리를 두려움으로 몰아넣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이 세상 것들이 이제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진정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사망의 잠입니다. 다윗은 사망의 잠을 잘까 두려워했습니다. 여기서 사망의 잠이란 영혼이 어두움에 깊이 빠져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영적 죽음으로 곧,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이 무엇입니까? 찬양과 말씀과 기도생활이 중단된 것입니다. 성령이 내 속에서 역사 하실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멸망으로 이끄는 죄를 쉽게 범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입니다.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말은 법의 기본정신입니다. 만인평등의 기초개념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법을 정의하는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또 죄를 짓고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죄는 죄로서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사람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그 기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판단과 심판은 공의로운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신앙의 의미는 세상의 온갖 불의와 악의 세력을 쳐부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속에서도 능히 이겨나갈 수 있는 능력을 받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실패와 고난과 역경을 우리가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절대로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하는 것, 그것은 우리를 멸망의 깊은 수렁으로 이끌어 가는 사망의 잠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의 죄까지를 살펴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바로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세상은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시대사조에 침몰한 교회는 이제 광풍이 일고 있는 바다 한 가운데 표류하고 있지만 그것을 인도해야 할 진리의 등대는 온갖 잡동사니로 혼탁해져서 그 빛을 잃고 있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교회가 회복되고, 말씀의 능력이 회복되고, 개개인의 신앙이 회복되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깨어서 근신하며 진정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마음에 다시 한 번 새기고, 신실한 믿음의 자녀된 삶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livingstonec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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