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용 목사 (뉴욕겟세마네 교회)
하나님의 말씀인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으니 그의 자녀 된 우리성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확신의 말씀입니다. 누구의 이름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 사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난과 고통으로 꽉 차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원치 않는 병이 찾아옵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합니다. 잘 되던 사업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직장에서 밀려납니다. 믿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합니다. 자녀들이 속을 썩입니다. 물질 시험을 당하고 인간관계로 아파합니다. 이민자로 살면서 신분의 문제가 해결 되지 않아서 고통을 당하며 불 안속 살기도 하며, 어떤 때는 너무 괴로워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성도들조차도 “전능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왜 이런 고통을 나에게 주시고 가만히 보고만 계시는가?”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난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고난 속에 살고 있고 그리고 우리가 살아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고난이 네가 유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기 원합니다.
1. 고난은 주님을 찾게 하기 때문에 유익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동생과 함께 서울에 올라와 유학생으로 자취생활을 할 때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한 살 적은 남동생이 말을 잘 듣지 않거나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 그땐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생각나곤 했어요. 그때는 전화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절이라 편지를 쓰곤 했는데 대부분의 내용이 “힘들어요. 고향으로 내려가서 부모님 곁에 살고 싶어요”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둘째 아들 탕자를 보십시오. 돈 있고 친구 있고 먹을 것, 입을 것 있을 때는 아버지를 찾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떨어지고 거지가 되고 춥고 배고프니까 그제서야 집 생각이 났고 아버지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품꾼의 하나로라도 써달라고 아버지 집에 돌아온 것입니다(눅15:17). 사람이 편안할 때는 예수 찾지도 믿지도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질병이 찾아왔거나 사업의 실패 혹은 직장을 잃어버리는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모르긴 몰라도 성도 여러분 중에도 아무런 고난이 없고 편안했더라면 예수를 믿지 않았을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그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다시 찾은 것입니다. 지나놓고 보니 그때 그 고난과 고통이 오히려 감사한 것입니다. 고난은 신앙으로 돌아오게 하기도 합니다.
신학자 C. S 루이스는 ‘고난은 하나님의 메가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난이 하나님의 확성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말씀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고난입니다. 여러분, 고난을 당하는가? 지금이 하나님을 찾을 때입니다.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하나님이 건져주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말씀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라 그랬어요. 예수님께 딱, 초점을 맞추라. 고난의 때에 사람 바라보지 말고,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내 자신 바라보지 말고, 주님께 초점을 맞추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잠시 잠깐 어려움 당한다고 슬픔당한다고 낙심하고 주저앉지 마세요. 지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고난이 지나고 난 후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서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이 끝이 아닙니다. 절망이 끝이 아닙니다. 절망의 끝에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밝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낙심하고 포기하지 마시고 주님께서 예비하신 그 영광의 내일을 바라보며 믿음의 전진하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고난의 때에 감사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에 감사합니다. “아! 하나님이 이를 통하여서 더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이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게 하시는구나. 이를 통해서 나를 더 깨뜨리시고 낮추시고 이를 통해서 우리교회를 더 튼튼하게 만들고 견고하게 세워주셔서 더 큰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로 이끌어주시는구나.”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하든지, 어떤 고난을 당하든지,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주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미래를 바라보고 꿈과 희망을 마음속에 품고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시편 50장 15절에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말씀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여 고난 중에 있습니까?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어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십시오. 더 큰 고난을 당하기 전에 온전히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인생들은 고난당하고 채찍에 맞아도 돌아오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것입니다. 새찬송가 527장은 주께 돌아오라고 노래합니다. 고난이 유익이 되기 위해선 우리는 고난 중에도 반드시 주님께 돌아 와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 주님께 돌아와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야고보서 5장13절에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고 잠자던 제자들을 찾아가 “너희가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당할 때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렘33:3). 기도하면 길을 열어주십니다. 홍해에 바닷길을 열어주십니다. 기도하면 광야와 같은 삶에서 만나와 메추라기의 양식도 허락하십니다. 기도하면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무너졌듯이 우리의 삶에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해결되고 풀어집니다. 주님께 아뢰면 감당할 능력을 주시고 피할 길도 열어주십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유익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2. 고난은 죄의 길에서 주의 말씀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그러나 우리는 말씀대로 살지 않고 불순종의 길을 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말씀 가운데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다윗의 고백입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71절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렇습니다. 고난은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죄를 깨닫게 하고 말씀에 순종하게 합니다. 결국 고난은 말씀대로 행치 않는 죄의 길을 막아주는 것입니다. 고난은 ‘사랑의 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식들을 키우다보면 체벌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가고자 할 그때 매를 들지 못하면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가게 됩니다. 이때 현명한 부모는 자식을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바른 길을 가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잘못된 길을 갈 때 고난을 통해 징계하십니다. 죄의 길을 막고 말씀대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가는대도 징계하지 않는다면 진짜 자식이 아니라 사생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난 하나님의 보배로운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잘못된 길, 죄의 길을 가는 것을 그냥 보지 않으십니다. 고난의 채찍을 때려서라도 돌이키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하나님이 지시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갈 때 풍랑을 통해서 그의 길을 막으셨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하심으로 회개케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부터 8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복음 성가 중에 ‘고난이 유익이라’는 찬송이 있는데 가사를 보면 “네 짐이 무겁고 힘이 드냐 주를 보라 고난이 유익이라 주님 말씀하시네 나의 가는 그 길을 오직 주가 아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 오늘의 아픔은 내일의 소망이요 쓰라린 아픔 뒤에 축복이 있다네.” 선지자 요나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에 순종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하면서 시작하는 요나서는 요나의 구원과 니느웨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인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서 발원되었음을 상기한다면 하나님은 원래 온 인류의 하나님이십니다.
깊은 잠에 빠진 세상을 향해 구원의 때를 외쳐야 할 선지자가 배 밑창에 들어가 코를 골고 자는 아이러니는 요나 시대에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선지자를 흔들어 깨우는 이방인의 이야기 역시 지금 이 시대에도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요나서를 통하여 우리 신앙생활의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고 유혹도 받고 억울한 옥살이까지 하는 등 온갖 고난을 다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과 연단 가운데서 지혜롭고 성숙한 인격을 갖게 되었고 애굽의 국무총리로서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역사에 찬란한 빛을 남겼던 인물 치고 고난의 삶을 살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요셉은 종살이와 감옥을 거쳐서 애굽의 강력한 총리가 됐습니다. 다윗은 박해를 피해 방랑자로서의 삶을 살다가 성군이 됐습니다. 모세는 40년의 광야생활의 연단과 고난을 통과함으로 위대한 출애굽의 지도자가 됐습니다.
누에고치 속에서 나방이가 나오기 위해 꼬박 한나절을 애씁니다. 그 힘든 과정을 치르고 나서야 화려한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하도 안쓰러워서 누에고치에 구멍을 뚫어주었답니다. 그랬더니 쉽게는 나왔는데 그 나방은 날지 못하고 곧 죽더랍니다. 좁은 구멍을 빠져 나오려는 몸부림이 나비를 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힘든 고난이 날개 근육을 강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험과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연단하시고 강하게 하심을 믿으십시오. 고난을 통해 당신을 깨끗하고 강한 그릇으로 만들어 귀히 쓰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고난을 통해서 주님께 돌아오게 하며, 고난을 통해서 주의 말씀으로 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임을 깨닫고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nygo4tgc@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