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겸손을 품고 사는 신앙

(빌립보서 2장 5-9절)

조선욱 목사 (소망한인연합감리교회)

사상은 인류 문화를 이끌어냅니다. 또한 인류문화가 그 사회를 결정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면적 세계가 외적이 사회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신앙도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 내면의 변화를 일으키시길 원합니다. 이 내면의 변화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내면의 변화가 외적인 변화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면적 변화보다 외면적 변화를 더 중요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기도를 얼마 만큼하고, 성경을 얼마만큼 읽고, 교회를 얼마만큼 오래 다녔느냐의 외적 변화에 관심을 갖게 되니 보이지 않는 내면적 변화에 관심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외적 변화가 사람의 본 모습을 바꿀 수 없습니다. 속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사람의 본 모습은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외적 변화는 한 때 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런가 주위를 둘러보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세요. 말씀으로 변하여 진 것 같지만 그 마음속에 변하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나이가 들고, 이제 인생의 황혼기를 맞아 하는 나이가 되어도, 10년전이나 20년전이나 지금이나 그리 변하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변하지 않습니까?

변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거기에 공통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공통점은 자신이 교만함을 모르는 산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며 삽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자신의 교만함에서 나오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고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교만한 행동에 중심은 하나님이 자기의 삶에 필요 없다는 마음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떠난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 세상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있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변하기가 참으로 힘든 것입니다. 이 교만함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렇게 병들게 만들었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이 교만함이 인간이 지은 원죄에 원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보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한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이 교만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생각으로 바꾸고 우리 마음대로 살아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이 전적으로 자기중심적 신앙생활로 바뀌어 버리는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이 있으면 교회 안에서도 내 생각, 내 기분, 내 감정이 중요한 것이지 교회를 사랑하고 위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그들 안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마음대로 하는 자기중심의 생각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겸손한 마음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사는 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어떠한 마음이기에 이렇게 말씀합니까? 6-7절에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한 하나님이시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모습을 가지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를 비웠는데 그 모습이 종의 모습까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종의 모습이라 말한 것을 자신의 의지는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였다는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자신을 위해 사신 것이 아니라 정말 종과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을 위해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모습이 우리가 배워야 할 겸손입니다. 겸손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것이 겸손이 아닙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겸손입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가는 자가 겸손한 자이다. 그래서 겸손한자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이다. 왜냐하면 겸손한 자는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에 품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는 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겸손의 모습을 어디에까지 보이셨습니까?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원하셨지만,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늘에서 지켜만 보고 계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셨기에 십자가의 사건이 완성되어진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예수님의 의지가 아니라 예수님의 순종이었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순종함으로 그렇게 죽으셨는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죽지 않으려 합니다. 순종은 아주 연약하고 무력하고 힘없는 자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지만 그것은 주님이시니까 그렇게 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죽기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함을 얻은 것은 주님의 겸손으로 구원을 얻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구원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 위해서는 주님의 겸손을 우리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탄은 참 교묘하게 우리를 유혹합니다. 사탄은 교만이 우리의 믿음에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나의 신앙이 최고다 자부심 가지고 신앙 생활하는 것이 큰 잘못 아니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헌신해도 헌신하는 마음이 있기에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교만하기에 헌신과 섬김 뒤에는 반드시 영광이 일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받을 영광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천사라 할지라도 그 마음에 자기가 최고가 되려고 하는 교만이 있었으면 천사도 사탄이 되고 맙니다. 겸손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인간극장에 27년을 필리핀에서 의료 선교하시는 박누가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한국에 있는 재산을 다 정리하고 아내와 아이와 함께 필리핀으로 떠나 거기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에 감동을 더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선교하는 중간에 취장암과 위암이 있었는데도 그의 선교를 중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위암이 다시 재발되어서 지금은 6개월밖에 살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의료선교를 중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항암치료를 받는데 그 중간에 시간이 나면 다시 필리핀으로 가서 선교 병원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의료선교를 중단하지 않는 것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죽기까지 섬기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서 죽는 사람이 있을까 봐 필리핀의 오지를 약통 들고 다니면 주민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이야기에 핵심은 그분의 일을 통해서 그의 삶에 축복이 있었더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위암 4기로 몇 개월 살지 못하는 인생이 되었지만, 예수님처럼 그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봉사하며 사는 것이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길임을 믿고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가지고 끝까지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였기에 9절에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박누가 선교사님도 그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더 잘났다를 나타내는 것이 주님께 영광 돌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자신도 좀 변하고 싶지만 이 교만함 때문에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가진 것이 더 많고, 실력 더 있고, 더 큰 힘을 가지고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면적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 변화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겸손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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