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철 목사 (라스베가스 갈보리장로교회 담임)
사람의 앞에는 항상 두 길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길이요, 둘째는 자신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그릇된 생활, 실패의 생활, 범죄의 생활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인생은 자신의 잘못된 생활, 실패의 생활, 범죄의 생활을 가르쳐 주는 빛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현재의 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신을 건축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깊이 생각해 봅시다! 나는 예수와 함께 살고 있는가? 나는 예수와 함께 일하고 있는가? 나에게 예수는 과연 임마누엘이신가? 나는 내 일, 내 가정의 일, 세상의 일보다 예수를 더 사랑하는가?
나는 예수를 위한 일을 제일로 하고 있는가? 나는 내 생활에서, 세상일에 분주하다는 핑계로 예수를 몰아내고 있지는 아니한가? 나는 예수를 위해서 신간과 몸과 재물을 낼만큼 여유가 없다고 핑계하고 있지 아니한가? 예수를 위해서 게으른 심령은 무서운 결과를 불러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은 예수를 떠나거나, 외면하거나, 예수의 일에 무관심할 권리가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아직도 낮인 지금 빛 가운데로 행하십시오! 빛 되신 예수 안에서 행하십시오! 예수를 찾아 만날만한 지금 주 예수를 찾아 모십시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12살 때에 예수로써는 처음으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다가 된 사건입니다.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가장 위대하신 선생님이십니다. 그래도 예수는 숨겨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시간 예수의 부모들이 예수를 찾았고 만난 것을 깊이 상고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발견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 찾되 만나지 못하여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43-45,) 예수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슬픈 발견입니다. 삼손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몸을 떨쳐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다는 것은 모르기 때문입니다.(사사기 16:20) 그러면 어찌하여 이런 일이 예수의 부모에게 있었습니까?
1) 예수께서 친족과 아는 자중에 있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많은 신자들이 그리스도 없는 인생을 살면서도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게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잘 안 되고 있을 때도 주께서 함께 하시므로 만사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를 모시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2) 예수의 부모들은 ‘아마 다른 친구들과 친밀히 사귀고 있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부모들이 예수 없이(떼어 놓고) 가기로 작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동행중에 있겠지"하는 생각과 친척들과 아는 사람들의 압력 즉 "따라 오시겠지 뭘....."하는 그 사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뒤에 남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고 오늘날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내가(종이) 이리저리 일 보는 동안에 저가 없어졌나이다."(왕상 20:40) 여러분 예수님 자신이 우리와 함께 게시지 않을 때에도 주의 일로써 분주히 뛰어다니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외국에 선교사로 파송된 어떤 선교사가 정말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일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찍이 또 복음 전하기 위해서 나서는데 사랑하는 아내가 문을 가로막고 서서 눈물이 글썽이며 말합니다. "여보! 일은 많이 하고 기도는 거의 없다면 그것은 주의 일을 옳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연 당신은 예수와 함께 다니십니까?" 그는 그날 아침에 나가서 일하지 않고 기도의 제단에 엎드렸습니다. 그는 큰 영적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2. 찾아 나섬(수색, 추구) 예수 없이 하룻길은 3일간의 슬픔 속에서 찾는 손해를 가져왔습니다. 이제 예수의 부모들이 한 일을 살펴봅시다. 1) 그들은 예수를 당장 찾아 나섰습니다. 그들은 예수 없이는 한 발자국도 더 전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사랑하기 때문에 전진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없이 길가는 것보다 예수를 만나고 예수와 함께 할 수 있는 곳까지 되돌아가서 그리고 예수와 함께 가는 것이 우리의 길을 더 빠르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예수의 임재가 여러분의 인생에게 없다고 느낀다면(예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예수의 얼굴을 구하십시오.(찾으십시오) 예수를 앙망하십시오.(Wait on the Lord) 예수 있는 곳으로 돌아갑시다!! 2) 슬퍼하면서 예수를 찾았습니다. (They sought Him sorrowing) 그들은 먼저 예수를 그들의 친족들과 아는 사람들 중에서 찾았습니다. 우리도 예수의 부모들처럼 때때로 우리들의 친척들 아는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닐 때가 있습니다. 거기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줄 수 있는 빛과 도움을 어떤 때는 친구와 교회 친구들을 찾아 뛰어다니면서 그 속에서 얻으려고 합니다. 예수를 잃은 사람이 예수를 찾는 것을 슬픈 찾음(수색)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하실 주님의 임재의 필요를 느낀다면 예수님의 부모들이 한 것처럼 예수 잃은 것을 큰 불행과 두려움으로 알고 눈물로써 예수를 찾아나서야 합니다. 예수를 잃은 두려운 감정이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을 정말 불행한 사람입니다. 예수 잃은 불행과 두려움은 눈물로 예수를 찾아 나서게 만듭니다. 우리가 지금 눈물로 예수를 찾아 나서야 할 상태에 있지 아니합니까?
3. 만남 찾는 사람은 반드시 만납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3) 예수의 부모들은 예수를 만났습니다. 1) 어디에서 "성전에서" 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본향 집으로 가는 우리의 여정에서 우리가 꼭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은밀히 기도하는 곳에서 반드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사실은 그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감동을 받도록 도와줍니다. 이와 같은 복된 영적교제는 하나님을 속히 만나게 합니다. 하나님을 "성전에서" 만납시다! 성전에서 기도합시다.
2) 언제 "사흘 후에" 우리는 예수를 찾는 각 사람을 위해서 여기에 심오한(깊은) 진리가 있다는 확신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흘 후"라는 이 말은 예수의 부활을 우리에게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우리가 구하는(찾는) 분은 죽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살아나신 그리스도, 살아계신 그리스도, 즉 살아계셔서 거룩한 천국 성전에 앉아 계시는 그리스도십니다. 3) 어떻게 "아버지의 일에 관해서 선생들 중에 앉아" 계시는 예수를 만났습니다. 예수의 답변을 들어 봅시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혹 "내 아버지의 일에 관계하여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예수를 찾아 만난 모든 사람들은 아버지의 일을 하고 계신 그를 만납니다. "구원하는 것"과 "거룩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일입니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수 안에 거함으로 우리 개인의 생명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신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처럼 우리 속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의 일을 쉬지 않고 하십니다. 우리는 믿고 구원 받는 것만으로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예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와 함께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하시는 일은 세상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심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요. 교회를 피로 값 주고 사서 세우신 것도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과 재물을 희생하는 신자가 참 신자요 하나님의 일에 관계하는 신자입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선교하는 교회가 참 교회요, 하나님의 일에 관계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4. 수종드심 부모님께 발견 된 예수님의 모습에 주의합시다! 1) 예수는 부모님들과 함께 내려가셨습니다. 예수는 "내가 내 아버지의 일에 관계하여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부모님과 함께 내려가셨습니다. 날마다의 생활에서 기쁨이 있고 슬픔과 괴로움이 있고 자질구레한 일들이 있는 집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이것이 또한 예수께는 아버지의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는 그렇게 아버지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만난 자들과 함께, 날마다 괴로움이 있고, 슬픔이 있고, 괴로운 환경 속에서 눈물과 고통이 있는 그곳으로 내려가지 않는 다면 예수를 발견한 사람에게 어떻게 빛을 주고 용기를 줄 수 있겠는가? 예수는 예수를 발견한 사람과 함께 이 낮고 천하고 괴로운 곳으로 함께 내려가셔서 빛을 주고 위로를 주고 새 힘을 주십니다. 2) 그 예수는 부모에게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는 그들의 필요와 모든 것에 자신을 순응시켰습니다.
예수는 예수를 찾아 만난 사람들이 예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만 할 것인가?" 예수는 예수를 만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모든 상태 모든 요구에 대해서 구주십니다. 예수는 믿는 사람들에게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는 자기 자신을 부인할 수 없으십니다. 예수는 우리의 슬픔 속에서 함께 슬퍼하십니다. 예수는 우리의 아픔 속에서 함께 아파하십니다. 예수는 우리의 고독 속에서 함께 고독해하십니다. 예수는 우리의 헐벗고 배고픔 속에서 함께 헐벗고 배고파하십니다. 우리의 평생에 예수는 우리에게, 순종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예수와 함께 영원히 살고 인생을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