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춘 목사 (본지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원로)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애굽을 떠나서 가나안으로 향하여 가는 40년 광야생활에서 되어진 일을 말하고 있다. 스데반은 행7:38에서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행렬을 광야교회라고 했다. 60만 광야교회, 여기에 모세는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그들을 천국인 가나안으로 인도하는데 자기의 혼신을 다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인도를 받아 애굽을 떠났다. 물과 만나와 메추라기로 광야 사막길에서 배불리 먹고 마셨다.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려운 원수들을 물리치면서 가나안을 향해 진군했던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인도와 보호와 양육을 받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우상을 숭배하고 간음을 행하며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의 사람이며 자기들의 지도자인 모세를 원망하다가 멸망 받았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가운데 우상을 숭배하며 음행이 성행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며 사도 바울을 원망하는 것을 강력히 권면하면서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당한 이런 일이 바로 우리 고린도교회에 거울로 주는 교훈이라고 촉구하고 있다. 본문 고전10:6에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라고 하였고 11절에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라고 하였다. ‘거울’은 우리의 잘못을 시정하고 내 모습을 바로 비춰보기 위하여 만들어진 기구다. 이 거을 들여다보면 자기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다. 자기의 일그러진 모습, 더러워진 모습을 보고 바로 잡을 수가 있다.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있어서도 거울이 필요하다. 우리를 영적으로 바로 잡아 줄 거울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된 일을 거울로 삼아 같으느 전철을 밟지 말라고 주신 경계의 말씀이다.
1. 광야교회의 실상
우리에게 거울로 주신 광야교회의 실상, 즉 바른 모습은 무엇입니까? 본문 1-4절에 광야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았는가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출13:21-2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출14:21-22),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출16:12-18),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출16:12-18),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네 절의 말씀 중에 ‘다’라는 말씀이 네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다’라는 말씀이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광야교회에서 그들은 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골고루 받아 누렸습니다. 얼마나 복된 교회였습니까? 그럼에도 가나안 약속의 땅에 들어간 사람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2. 광야교회의 허상
본문 5절에 그들이 멸망당했다고 말씀합니다. 그 원인은 바로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6절에서 저희가 악을 즐겨했다는 말씀은 악한 일에 마음이 쏠리고 악한 일에 단 마음을 가지고 좋아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거울에 비친 그들의 죄악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 우상숭배의 죄악입니다(7절).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히 여기시는 죄악은 우상을 숭배하는 죄입니다. 본문 7절은 출애굽기 32:1-6절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시내 산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 동안 산 아래서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며 춤춘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3천명 가량이나 죽임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고전10:14절에도 다시 한번 경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눈에 보이는 우상을 숭배하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우상을 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이 모두 우상인 것입니다. 둘째, 간음의 죄입니다(8절).
이 말씀은 민수기 25장 1-9절 사건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성경은 음행을 금하고 있습니다. 고전6:18절에도 “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세상과 벗됨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영적인 간음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영적인 간음자가 아닙니까? 내가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드리지 못하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셋째, 주를 시험하는 죄입니다(9절). 이 죄는 민수기 21장 4-9절과 시편 78편 41절, 95편 9절에 언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될 것을 안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되지 말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빌4:13)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넷째, 주의 사자를 원망하는 것입니다(10절). 원망은 원어에 보면 ‘수군거린다’는 뜻이 있습니다. 민수기 16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의 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12장에도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일로 인해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했을 때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해 진노하셨습니다(민12:8). 성경은 여러 곳에서 주의 종을 향하여 원망하는 것은 곧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께 향한 원망으로 간주했습니다. 당시 고린도교회에는 사도 바울에 대하여 원망하는 자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를 보면서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3. 우리를 향한 경계의 거울
본문 11절에서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란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길에서 행한 죄로 인하여 멸망당한 사건을 지적하며 그런 사건들이 교회사를 통하여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보고 거울을 삼아서 현재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를 말씀으로 받으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저 광야교회의 사건이나 교회사에 있었던 사건들을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바르게 서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12절 말씀은 자기는 넘어지지 않았으며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바로 서 있다고 자부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허대전(John Hunt)선교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일 자기 생활의 과거와 현재의 것들, 모든 은밀한 죄악이나 입이나 행동으로 또는 생각으로 지은 모든 것들을 촬영하여 영화화해서 모든 사람들 앞에, 교회 앞에, 하나님 앞에 공개한다면 우리 중에 그것을 허락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생활을 과거대로 그냥 지속한다면 모두 광야교회의 백성들과 같이 멸망감입니다. 야고보서 1장 23절에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더러운 것을 보고도 씻을 줄 모르면 영적인 정신병자일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날의 역사는 항상 현세에 사는 우리를 교훈하고 경고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생활을 깊이 통찰합시다. 그리고 적나라하게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와 특히 나 자신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 앞에 비춰봅시다. 그리고 씻고, 닦고, 회개하고 바로 잡읍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1-12). nychpres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