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회 목사 (뉴저지성도교회)
현대인들은 아무리 개를 싫어하는 사람도 적어도 두 마리의 개는 다 키운다고 합니다. 그 개 이름이 무엇인지 아세요? 편견과 선입견입니다. 이 틀 속에 갇힌 주인은 사건의 실체를 따지지 못하고 그저 선동에만 끌려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생각의 틀 즉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합니다. 언어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스스로 보기에 메뚜기 같다고 하는 두 마리의 개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편견과 선입견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 막을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그곳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이요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생전에 자기 가족 무덤으로 사용된 몇 평 남짓 막벨라굴 외엔 자기 땅을 갖지 못했고 이삭도 야곱도 이 가나안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관리할 수 있을 때까지 애굽의 품안에 숨겨두었다가 400년 종살이가 끝나고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 그 땅을 정탐하는 사건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을 위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예비하였던 것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축복의 땅, 약속의 땅을 예비해놓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 같은 상황을 보는데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생각의 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전혀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불신앙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고, 기쁨과 부흥의 꿈과 신앙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을 보는데 전혀 다른 생각의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약하다 못 한다 틀렸다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은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어떠한 생각의 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앞날이 전혀 달라질 것입니다. 훗날 가나안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고 못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1. 부정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목표도 없이 그저 분주하게만 뛰어 다니는 사람들은 건강하지 못한 신앙인입니다. 뚜렷한 목표와 부흥의 꿈을 가지고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건강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두 명 가운데 열 명은 이렇게 말합니다. 13장 28절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13장 31절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포기합시다" 철저히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보고 외에는 아무 것도 내어놓을 것이 없었습니다. 부흥의 꿈을 가진 사람은 부정적인 말을 버려야 합니다. 불신앙의 눈으로 보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우선 약속의 땅을 자신의 땅으로 정복하지 못한 불신앙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가나안 정복을 그토록 불가능한 일이라고 열을 내어 외쳤던 그들을 살펴보십시다. 한마디로 악평이었다고 단언합니다. 13장 32절,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불신앙의 눈은 상황을 악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내 인생의 계산에 넣지 않는 삶, 인간이 가진 능력만 계산하고 따지는 것은 언제나 불가능뿐입니다. 그들에게서는 하나님의 언약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 이 두 사람의 짤막한 보고 가운데는 "여호와 하나님"이란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은 말합니다. "상대는 거인이요 우리는 메뚜기와 같았다" 이 얼마나 비굴한 자학이었으며 잘못된 열등감이었습니까? 이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시각은 염병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퍼져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절망하며 괴로워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라고 스스로 황충이라고 자책하는 모습을 봅니다. 메뚜기의 속성 중에 계속 갉아먹는 속성이 있습니다. 배부른 것도 모르고, 만족함도 모르고 계속 갉아대는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파괴자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자족하지 못할 때 내가 있는 은혜에 만족하지 못할 때 우리는 이런 메뚜기와 같은 그런 속성을 가지게 됩니다. 있는 것 자체를 누리고 즐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지금의 것들을 많이 내려놓은 후 욕심을 버릴 때 하나님의 꿈이 하나님의 소망이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 자녀들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보여지게 됩니다.
여러분 무엇을 보십니까? 나는 메뚜기로 보이십니까 아니면 그들이 우리의 밥으로 보이십니까?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보여지기를 바랍니다. 메뚜기의 속성 중에 메뚜기는 떼로 모여 다닙니다. 떼로 모여 다니면서 항상 하는 소리가 불평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항상 온 회중들이 부르짖으며 곡하였더라. 그리고 나중에는 이렇게 곡합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불평의 소리입니다. 떼를 지어서 몰려와서 좋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벌떼처럼 몰려들어 좋은 소리 하는 것 못 보았어요. 원망과 불평을 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바로 메뚜기 소리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부정적인 생각의 틀을 벗어 버리고 믿음과 희망과 꿈을 말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믿음으로 보는 사람이 되라
부흥의 꿈을 가진 자들은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같은 일이라도 믿음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그것은 한 사건에 대해서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께서 어떻게 운영하시고, 하나님께서 지금 어떻게 활동하시는 가를 생각하면서 그 사건 속에 하나님의 꿈과 하나님의 시각을 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기독교인의 사명은 바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이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이 사회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내 이웃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교회를 보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꾸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이 나라를 이 민족을 보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낼 때 그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이라고 하셨습니다. 민수기 13장 2절에 보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을 불신앙으로 거부한 일단의 무리들이 있는가 하면 믿음의 눈으로 쟁취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장애물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목표와 약속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메뚜기 같다고 하는 사람에 반해 긍정적이고 신앙적인 눈, 믿음의 안경을 가졌던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은 그들과 달랐습니다. 생각의 틀이 달랐어요. 패러다임이 달랐던 것입니다(민14:7-9). 이들 두 사람도 다른 열 사람과 똑같은 땅을 보았습니다. 같은 산야를 탐지했습니다. 똑같은 환경을 보고 왔습니다. 그러나 보는 시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열 사람은 인간의 눈, 불신앙의 눈으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상황을 보았고 갈렙과 여호수아는 신앙의 눈, 하나님의 시각으로 믿음의 틀 안에서 언약을 믿는 믿음의 안경을 쓰고 그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들의 시각 여하에 따라서 펼쳐지는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날마다 부딪히는 커다란 난관과 인생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살아가십니까? 시각여하에 따라 우리 삶의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불평하다 보면 불평도 체질화되어 집니다.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면 기뻐하는 삶이 내 앞에 펼쳐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삶의 상황여하에 상관없이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부흥의 꿈을 가지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환경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믿노라고 하면서 조금만 어려워지면 물러서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었습니다. 반석이 터져 샘물이 쏟아져 나올 때 그들은 믿는다고 얘기했습니다. 홍해가 갈라질 때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만나가 내려지는 아침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에 부딪히니까 그들의 믿음은 맥을 추지 못하고 후퇴하고 맙니다. 삶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들의 믿음은 구체적으로 문제를 공략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문제는 문제 자체보다 문제를 과장하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마침내 이들은 삶의 현장, 믿음의 대열에서 비틀거리다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믿노라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시각을 갖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히10:38). 하나님의 사람들도 이 세상 살아갈 때 어려움 만날 수 있지요. 태산 같은 문제가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을 때가 있지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고독에 울 때가 있지요. 그러나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의 시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믿음의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믿음의 소망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부흥하기를 원하십니다. 잘되기를 원하십니까? 믿음의 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약속의 땅을 정복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믿음의 안경을 끼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에게 부흥의 꿈은 이루어집니다.
3. 순종으로 올라가는 신앙의 사람
부흥의 꿈을 가진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9절). 본문 30절을 보면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이 얼마나 당당한 외침입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선언입니까?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길 거야! 우리가 예수를 나의 주님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 성령의 능력이 내게 찾아옵니다. 지금까지 내가 가지지 못했던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내 삶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면 황량한 사막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그 땅을 보는 순간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으로 바뀌어집니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면 오합지졸을 데리고 가나안을 정복한다고 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안경,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가나안을 바라보는 순간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올라 가야한다고 외쳐야 합니다. 함께 하면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단어를 기억해야 합니다. ‘곧’이라는 단어를 성취하는 자에게 부흥의 꿈은 내 것이 될 것입니다. 지금 순종하기 바랍니다. 기회 되면, 다음에 힘이 생기면, 아니요! 지금 올라가기 바랍니다. 지금 결단하고 실천하는 자들에게 꿈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신앙이 올라가는 믿음의 신앙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여러분을 떠나지 않고 동행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여러분을 감동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눈이 이미 여러분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만 하면 세상은 여러분의 몫이 될 것입니다. 강하라, 담대 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을 읽을 때 가슴이 뛰기 바랍니다.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 땅을 정복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부흥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내게 부딪히는 인생, 불가능을 정복하기 원합니다. 그러면 네피림의 장애물을 디디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우리에게 맡기시든지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절대로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며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 모든 환경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사람을 축복에 복을 더하여 주십니다. 세상 살다보면 역경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외치십시오. "야, 이것 정말 감사하구나. 하나님께서 내 앞에 가나안을 준비하고 계시는구나. 이것 지나고 나면 더 큰 은혜를 주실 거야. 이 태산 넘고 나면 축복의 땅이 펼쳐질 거야. 이 고난의 강이 갈라지고 나면 하나님의 약속이 내 앞에 펼쳐지게 될 거야." 이 믿음의 눈을 갖기를 바랍니다.
결론 불신앙의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믿음의 사람 가나안을 바라보았던 갈렙과 여호수아에게는 무엇이라고 말 합니까? 민수기 14:24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믿음을 가진 사람과 그 자손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되리라.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있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우리의 밥이라고 곧 올라가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님의 꿈을 꾸고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믿음의 말을 하기 바랍니다. 순종으로 올라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꿈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부흥의 꿈을 가지고 출발합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가 걸어가는 길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할 수 있습니다. 부흥의 꿈을 꾸어봅시다. 그리고 외치기 바랍니다. 할 수 있다고 할렐루야! sheo1004@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