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느웨냐! 다시스냐!

(요나 1:1-7)

이만호 목사 (뉴욕음안디옥교회)

하루, 한달, 한해를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매순간 순간마다 올바른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이 길이냐? 저 길이냐? 이 일이냐? 저 일이냐? 결국 사탄 마귀 귀신의 일이냐?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일이냐 선택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한번의 그릇된 잘못된 선택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에게 죄가 들어오므로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천만다행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우리가 올바로 선택하므로 구원받고 영생의 영원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1. 니느웨냐! 다시스냐!

요나는 잘못된 선택인 다시스로 결정하여 심한 풍랑의 고통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욘1:1, 2)고 하셨습니다. 이 니느웨는 이스라엘과 적대관계를 갖고 있는 이방 나라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그런데 이 니느웨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했고 우상숭배가 만연하고 또 많은 민족들을 포로로 잡아 노예로 부렸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볼 때 니느웨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민족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기회를 주기 원하셨습니다. 선지자를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그 민족이 회개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이것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주신 명령을 그대로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판단을 하고 내용을 바꾸고 할 자격도 없고 또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 우리랑 적대적인 나라인데 죄가 많아서 차라리 망하는 게 좋지. 가서 살려놓으면 쳐들어와서 우리를 괴롭힐 텐데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 것이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그래서 다른 길로 갔습니다(3절). 자, 우리가 기억하고 들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항상 자기중심적인 결정과 판단과 모든 주장을 해왔기 때문에 이렇게 요나처럼 실수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결정한다고 하면서도 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너무나 이기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또 신앙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의 이름으로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됩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룻이 헤어지기로 결정할 그 당시에 가축이 너무 많아져 하인들끼리 자꾸 다툼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네가 먼저 택해라 네가 동을 택하면 내가 서를 택하고, 네가 서를 택하면 나는 동을 택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롯이 가만 보니까 소돔과 고모라 쪽이 물이 많고 풀도 많고 ‘야, 저기 가면 가축들이 잘 먹고 우리가 부족함이 없겠구나’하고 그쪽을 선택하고 내려갔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의 도성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들이 죄에 물들지 않는다고 해도, 듣는 것이 죄요, 보는 것이 죄요, 행하는 것이 죄이기 때문에 그들이 신앙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불과 유황으로 멸하실 때, 그 많던 재산 다 잃어버리고 겨우 자기와 두 딸과 아내만을 데리고 탈출해 오는데, 그 아내는 끝까지 거기에 둔 재산에 미련이 남아서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어요. 그때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온 가족에 이와 같은 큰 피해를 입히고 절망적인 상황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12명 정탐꾼이 가나안땅에 들어가 정탐할 때 10명은 잘못된 선택의 보고를 했으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으며 그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라고 올바른 결단을 내리므로 그들만 들어갔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항상 결정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니느웨의 길입니까? 아니면 때때로 내가 보기에 옳다고 하는 다시스의 길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때는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길로 가지 않습니까? 여러분, 잘못된 길인 줄 알고 들어서서 그 길을 계속 가는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만을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선택할 때 ‘이것이 하나님 영광과 영혼의 유익을 위한 최선의 것인가’ 질문해야 합니다. 늘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선하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야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2. 잘못된 길로 갈 때 우리를 돌이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돌이키게 하시려고 풍랑을 보내셨습니다(욘1:4-5).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은 잠이 들었어요. 우리가 주님을 떠나면 영적인 잠을 자게 되는 것입니다. 판단력이 흐려지고, 결단력도 사라지고, 나태하고 해이해집니다. 우리가 늘 영적으로 깨어있어서 아주 무슨 선택과 결단을 할 때는 최선의 것, 그리고 결단할 때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결단을 하고 밀고 나가야합니다. 늘 머뭇거리고, 무엇하나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사는 삶은 절대로 그 인생에 성공이란 기대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장이 배 밑창에서 자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욘1:6). 선장은 하나님 섬기는 사람 아니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가 잠을 자고 있으니까 깨우면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그럽니다. 우리가 이런 부끄러움을 당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랑도 주시고, 다시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도 주시는 것입니다. 14, 15절 “무리가 야훼께 부르짖어 이르되 야훼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야훼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바다에 풍덩 던져졌는데, 그 밑에 물고기가 입을 벌리고 있다가 덥석 그 요나를 삼켜서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삼 일 동안 회개하고 눈물로 주님 앞에 나옵니다. 요나가 사는 길은 회개밖에 없습니다. 주의 뜻을 거역하고 딴 길로 갔다가 환란을 만났을 때, 우리가 살아나는 길은 회개 밖에 없습니다. 요나서 2장에 가보면, 1절로 3절에 그가 주님 앞에 부르짖는 기도가 나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야훼께 기도하여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야훼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7절 이하에,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야훼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야훼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잘못했더라도 회개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나와 눈물로 주님 앞에 부르짖으면 다시 우리에게 주님이 기회를 주십니다.

3. 하나님은 순종할 때 성취하는 복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고 최선의 길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길로, 예비하셔서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순종할 때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3장 1-2절에 “야훼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이지요.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욘3:4-5).

왕으로부터 모든 사람들, 짐승까지 금식을 다 했어요(욘3:7-8). 니느웨 사상 그전에도 후에도 없었던 일입니다. 사실 이런 기록은 세계 역사 가운데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감동하셨어요(욘3:10).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축복이 임합니다.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 길이 때로는 우리에게 많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결단을 요구합니다. 내가 좀 손해 보는 일도 생겨날 수 있고 또 그 길이 험하고 힘든 길일 수도 있어요(마7:13-14). 여러분, 많은 사람이 죄를 지으며 가는 큰길로 가지 마시고 적은 사람이 가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 그 뒤에는 영광이 있고, 축복이 있고, 기적이 있고, 천국이 예비 되어 있는 그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에 의료선교 개척자로 불리시는 박애병원 원장 이건오 장로님이 계십니다. 장기려 박사의 애제자로서 “이끌림”이라는 책을 보면 여러 가지 많은 도전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유교 집안의 장남으로 고교 시절 동네에 전도하러 온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고 그랬었는데 친구의 등쌀에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주님을 만납니다. 날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새로운 결심을 합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설교 예화집을 읽던 가운데 부와 명예를 좆는 대신 시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치료해 주어야겠다는 한 의사의 섬김을 보면서 “누가 이와 같은 의사의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제가 그와 같은 삶을 살겠습니다” 결단합니다. 그래서 시골 소년에게 꿈도 꾸어보지 않았던 의대를 꿈꾸게 하시고 하나님은 그를 의대로 인도해 주십니다.

대학에서 의대생들과 함께 시작한 기도와 말씀 공부로 현재 1천5백 명이 모이는 아가페의료 봉사단을 만들었습니다. 결핵환자, 한센병환자 진료. 농어촌 의료진료. 세계를 향한 의료선교를 위해 일평생 모은 물질과 휴가를 내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손에는 청진기와 사랑을, 한 손에는 복음 들고 그 길을 갑니다. 그를 만난 모든 사람의 증언이 한결같이 일치합니다. “그가 믿는 예수라면 나도 한 번 믿어보고 싶다.” 그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는 티끌만한 죄도 ‘죄’일뿐입니다. 회개했다면 즉시 돌이키십시오. 저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이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이끌려 살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저의 인생 70년 하나님과 동행하며 걸어온 그 시간이, 저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입니까? 주님과 함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내 기쁨, 내 만족이 아니라 그것은 다시스로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영광, 니느웨로 가는 길을 택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길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고 기적이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 모습을 다 내려놓고 다시는 다시스로 가지 말게 하옵시고 니느웨로 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헌신하는 주님의 귀한 일군 되게 해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며 사는 여러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usfgc@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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