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삼정 목사 (아틀란타 제일장로교회)
하나님의 관대하심이 우리를 살게 하신다.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알지 못하면 늘 불안하고 쫓긴다.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면 부족한 것투성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까지 살게 해주신다. 일군으로서도 부족한 것이 많지만 하나님이 오늘까지 일 시켜 주신다. 이는 하나님의 관대하심 때문이다. 시편 103편은 다윗의 시다. 이 시편에는 그가 체험한 하나님의 관대하심이 절절이 표현되어 있다.
1. 주시는 것에 관대하시다.
5절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 하나님이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 아낌없이 주신다. 좋은 것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유익한 것, 우리의 영육 간에 가장 유익한 것을 뜻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다 몸에 다 좋은 것은 아닌 것처럼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다 우리에게 좋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악한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보다 더욱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이 다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 줄 믿으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얼마나 관대하신지 에베소서는 그 풍성한대로 주신 것을 말씀하고 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고(엡1:3),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주시고(3;19) 우리의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주신다(3:20). 때로는 우리에게 좋지 않은 것이 올지라도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신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신다고 하셨다(3-4절). 범죄 해도 죄악을 사해주신다. 병들었을지라도 고쳐주신다. 생명이 파멸에 직면했을지라도 구원해 주신다. 악한 자에게 억압과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이 심판해주셔서 우리의 의를 들어내 주신다. 하나님은 좋지 않은 것을 좋은 것으로 바꾸시는 명수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신다. 독수리는 털갈이 할 때는 둥지에서 기다린다. 그러나 털갈이가 끝나면 다시 하늘로 비상한다. 우리도 때로는 침체에 빠질 때가 있고 오래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 침체에서 벗어나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비상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신다. 우리의 모든 실수도 부족도 다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덮어 주셨다. 자신의 모습을 한번 쳐다보라. 옆 사람의 모습도 쳐다보라.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의 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옆 사람도 가만히 쳐다보면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로 관을 쓰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오늘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의 관을 쓰고 있다.
2. 죄인에게 관대하시다.
10-11절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라.”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나 죄인에 대해서는 관대하시다. 죄인에게 관대하심을 어떻게 나타내시는가? 자주 견책하지 아니하신다. 뭘 좀 잘못했다고 뭘 좀 하지 않는다고 자주 견책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신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벌하지 아니하신다. 만약에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시거나 갚으셨다면 우리 중에 살아남을 자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얼마나 크신지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얼마나 크신가?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크시다. 우리의 죄와 악은 땅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저 높은 하늘이다. 땅에서 커 보이는 것도 높은 하늘에서 보면 아주 작다.
사람도 마음이 크고 관대한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악이 작아 보인다.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어찌 사람에게 비교하겠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하늘보다 높고 크셔서 죄인에게 관대하시다. 하나님의 관대하심이 우리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없이해 주신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신다(12절). 죄를 멀리 옮겨주시는 것은 죄를 용서해 주시고 더 이상 찾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말씀이다. 어떻게 그렇게 하시는가? 우리로 하여금 회개케 하셔서 용서해 주시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다 씻어 주신다. 하나님의 용서는 완전하시다. 한번 용서하신 것을 기억지도 아니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대하신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이다. 14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도록 연약한 존재로 만드셨다. 우리의 연약과 부족은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계속 유지케 하는 은혜의 방편이다. 당신이 약해서 죄를 짓고 넘어졌을 때 자신이 연약한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일어서라. 낙심하지 말고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라.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비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 “아비가 자식을 긍휼이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13절). 아비는 자식을 긍휼이 여긴다. 부모는 자식들이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데도 괜히 안쓰럽고 긍휼의 마음이 생긴다. 자녀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때는 부모의 마음은 긍휼로 타 오른다. 이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하나님은 그보다 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 아비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말씀이 얼마나 은혜스러운지!
3. 우리도 관대해야 한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4:5). 스스로에게 관대하라. 하나님께서 나를 관대하게 대해 주시니 우리도 자신에게 관대해야 한다. 자신에게 관대하지 않는 사람은 늘 죄의식, 부족하다는 결핍증에 사로잡혀 있다.
이제 자신을 좀 너그럽게 대하라. 좀 부족해도, 넘어졌어도 자신을 향하여 “그럴 수도 있지. 일어나면 돼, 돌아서면 돼” 하고 넉넉하게 자신을 대하라. 다른 사람에게도 관대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하신 것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 때일수록 사람들의 마음이 조급하고 용서하지 않고 맺힌 것을 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다. 어떤 왕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있었다. 도저히 그 큰 빚을 갚을 수 없는데 그 왕이 그를 관대하게 대해서 다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나가서 자기에게 조금 빚진 사람, 겨우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고 그를 옥에 가두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그 사람을 다시 불러 옥에 가두고 다 갚을 때까지 나오지 못하게 했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결론을 이렇게 하셨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리라”(마18:24-35)고 하셨다. 이는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용서를 누리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지 않으면 나도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마음껏 누릴 수가 없다. 하나님의 관대하심 때문에 우리는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았다. 이제 우리 차례다. 우리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탕감해 줄 차례다. 마음을 넓혀라. 넓은 가슴을 가져라. 좀 더 큰 자로 살자. 관대한 마음으로 살자. 노아 벤쟈는 “다른 사람에게 항구를 제공하는 사람은 그 영혼이 안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다른 사람에게 안식을 제공해주면 내가 안식을 누린다는 말이다. 우리가 관대해질수록 안식을 누리고 삶이 수월해지고 편안해진다. 우리가 관대해질수록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더욱 체험하게 된다. 우리가 관대해질수록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통해서 흘러가게 된다. 우리가 관대해질수록 감사의 노래가 끊어지지 않게 된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관대하심을 말하다 보니 너무 가슴이 벅차서 여호와의 지으신 모든 만물을 향하여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했다. 또한 자기의 영혼을 향하여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외쳤다.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22절).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받고 있음을 알면 알수록 송축하며 살게 된다. 하나님의 관대하심이 우리를 살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