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이여! 하나님을 감동케 하십시다”(창세기 12장 1-12절)

하나님을 감동시키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기적이 일어난다. 안될 일이 없다. 못할 일이 없다. 무서울 것이 없다. 절망하고 좌절하지 말라.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면 된다. 하나님을 감동케 하는 사람들 망하는 법이 없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수많은 인물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하나님을 가장 감동시킨 사람은 아브라함이라고 생각한다. 아브라함의 인생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진다. 전반기 인생은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부름 받은 후반전부터 아브라함은 숨지는 날까지 하나님을 감동시켰더니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이 되었다. 본문을 보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감동시킨 위대한 5가지 신앙이 있다.

1. 순종의 신앙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로 순종했다. 떠나라고 하시니 떠났고, 이름을 고치라고 하시니 고쳤고, 할례를 받으라고 하시니 받았다. 그리고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제물을 바치려고 했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신앙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켜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복의 근원이 되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께 부름 받은 그 시간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한 적이 없다. 순종의 신앙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켰다. 저는 24살부터 시작하여 45년간 목회하면서 잊을 수 없는 교인들이 있다. 늘 입으로 간증하고 싶은 교인들은 순종하는 교인들이다. 반면 잊고 싶은 교인들도 있는데 “못해” 신자들이다. 순종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주여 주여’ 하는 사람마다 다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은 금은보화로 하나님을 감동시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름 받은 그날부터 순종의 신앙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켰다. 순종 없는 신앙은 다 헛것이다. 순종의 신앙으로 남은 생애를 살기를 바란다.

2. 예배중심의 신앙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배중심의 신앙이다. 요즘 한국교회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그 위기중 하나는 한국교회가 예배를 점점 소홀히 하고 모이기를 파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새벽예배, 주일 낮과 밤 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등을 드렸는데, 요즘 한국교회는 일주일에 한번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서울의 어느 교회는 여름과 겨울 방학에는 한 달 동안 예배를 쉰다고 한다. 점점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를 없애 버리는 교회가 많다고 한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다. 예배를 소홀히 하고 게을리 하고 예배를 나태하게 드리니, 교인들이 무기력해지고 무능력해지고 점점 신앙이 퇴보한다. 인생의 실패는 예배의 실패이고, 인생의 성공은 예배의 성공이다. 예배를 소홀히 하면 신앙이 낙후되고, 예배를 소홀히 하다가는 하나님도 떠나고 교인도 떠나고 교회는 문을 닫게 된다.

예배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가? 성장한 한국교회의 모델을 보니 특징은 예배가 살아있다.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 예배가 살아있는 성도는 타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한국교회는 예배를 소홀히 하고, 점점 예배를 없애는 교회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인들이 무기력해지고 세상 사람들과 분간이 안된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비극이다.

요즘 구원의 확신이 없다 보니 예배를 소홀히 한다. 예배를 소홀히 하다 보니 믿음이 떨어지고 은혜가 떨어진다. 제가 무서워하는 것은 은혜가 떠난 집사가 무섭다. 은혜 충만할 때는 천사이다. 그런데 은혜가 떠나니 무섭다. 은혜 떠난 권사와 장로는 더 무섭다. 한국에서 목회하는데 장로 때문에 자살하는 목사를 보았다. 은혜 충만한 장로님은 형님 같고 아버지 같고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그런데 은혜가 떠난 장로는 목사를 죽이는 것을 많이 보았다. 예배를 소홀히 하고 게을리 하니 은혜가 떠난다.

아브라함이 누구인가? 여호와를 위해 가는 곳마다 단을 쌓았다. 인생의 밤이 오고 인생의 겨울이 오면 예배를 드리려고 예배당에 가고 싶어도 못간다. 예배에 소홀하지 않기를 축원한다. 이민생활이 바쁘고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내 삶속에 예배가 우선이다. 예배가 가장 중요한 줄 알고 신앙을 지키라. 그러면 타락하지 않고 변절되지 않는다. 은혜가 떠나지 않는다.

3. 인내의 신앙

히브리서 6:15을 보면, 아브라함은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인내의 신앙으로 감동시켰다. 참으라. 성공한 목사와 실패한 목사는 머리와 학력의 차이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인내로 차이가 난다. 인내하지 못하면 실패한다. 끝까지 인내하면 성공한다. 목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그렇다. 참아야 된다. 욥도, 요셉도, 다윗도 다 인내의 신앙을 가졌으며 결국은 성공했다.

우물을 팔 때 어디든지 언제든지 우물을 파면 물이 나오는 사람이 있고, 같은 조건에 우물을 파도 물이 안 나오는 사람도 있다. 물이 나오는 사람은 우물을 파되 물이 나올 때까지 판다. 그런데 물이 나오지 않는 사람은 우물을 파다가 바위 같은 장애가 있으면 그만 둔다. 오래 참아야 한다. IMF 때 교회를 건축하면서 너무 힘들어 3번이나 죽을 생각을 했다. 참았더니 오늘의 바울교회가 만들어졌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억울하고 분해도, 기도의 응답이 늦어도 참아야 한다. 인생의 성공은 인내하는 것이고, 인생의 실패는 인내하지 못하는 것이다.

4. 화평의 신앙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조카 룻에게 양보했다. 안 싸우려고 한 것이다. 화평의 신앙이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나와 하나님은 죄로 원수되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시고 자녀가 되게 하셨다.

제발 싸우지 말라. 옛날 어르신들은 싸우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다. 고 한경직 목사님이 옛날 목사임직에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목사가 되실 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교회는 안 싸우기만 해도 부흥한다”고 했다. 왜 교회가 그렇게 갈라지고 부흥이 안되는 줄 아는가? 단 하나,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것 때문에 그렇다. 한국교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장에서 서로 싸우니 점잖은 신사가 “이 사람들아, 싸우려면 교회 가서 싸워”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인가. 왜 교회가 싸우는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할 하나님의 교회가 왜 싸우는가. 싸우니 망하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사탄이지 목사와 장로, 남편과 아내가 아니다. 싸우니 한국교회가 더럽혀지고 무기력해지고 세상 사람들의 지탄을 받게 된다. 내 안에 복음이 있으면 싸우지 않는다. “너는 살아라, 나는 죽을께” 하는 것이 복음이다. 예수님께서 “너는 살고 내가 십자가에서 대신 죽을께” 하신 것이 복음이다. 그런데 오늘날 목사 장로 권사 교회는 많은데 이제는 복음이 없다고 한다. 서로 싸우고 고소한다. 한국은 요즘 교회의 고소 때문에 변호사들이 흥이 났다고 한다.

교회는 싸우는 곳이 아니다. 서로 죽기 살기로 사랑해도 모자라는데 왜 싸우는가. 아브라함이 힘이 없어서 조카에게 양보했는가? 아니다. 안 싸우려고 조카에게 양보했다. 손바닥도 마주치니 소리가 난다. 누가 하나가 양보하거나 져버리면 안싸운다. 물고 뜯고 싸우면 둘 다 망한다. 옆에 있는 사람은 사탄이 아니라 소중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주님 오실 때까지 싸우지 않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브라함처럼 화평의 신앙으로 하나님을 감동케 하자.

5. 주의 종을 정성껏 대접하는 신앙

창세기 18장을 보면, 하나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자를 대접하니 희소식을 주셨다. 아브라함 눈에 하나님이 안 보인다. 그러나 자기 집에 찾아온 하나님의 사자를 하나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대접했더니 희소식이 있었다. 주의 종을 정성껏 대접하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라.

[2016 할렐루야 뉴욕복음화대회 첫날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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