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 른/ 초/ 장

청량음료 같은 사람 (사도행전 28:7-11)

날씨가 많이 무덥다. 청량음료라도 한 잔 들이키면 훨씬 시원할 텐데… 나라가 어지럽다. 다른 나라는 차치하고라도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치도 경제도 참 시원한 청량음료 같은 일이 이루어지면 참으로 좋으련만….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매일의 삶에서 반복되는 답답함을 영적으로 육적으로 근본적인 것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은 어디 없을까?

있다. 물론 있다. 성경의 인물들이 바로 그들이다. 많은 인물들 중 신약의 바울처럼 시원한 인생을 선사한 사람이 또 쉽게 있을까? 그가 당한 환난과 엄청난 답답함과 죽음의 위기 속에서 말이다.

1.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

함부로 쓸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닮고 하나님과 누구보다도 함께 동역하였다고 할 수 있는 바울에게 붙여질 만한 명칭이다. 본문의 배경을 이루는 유라굴로 광풍을 견디며, 세상 사람들 곧 세상 전문가인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신뢰하였던 백부장(행27:11)과 그 배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 275명이, 바울의 예언대로 어려움을 당하므로 유라굴로 광풍을 당하여 모든 것 배의 짐, 배의 기구를 다 버리고 14일간이나 햇빛도 없이 방향도 모른 채 끌려가는 완전한 절망 상태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완전한 패망과 기아선상에서 헤매고 있을 때 돌연히 나타나서 가볍게 책망을 하고나서 위로하며 “여러분의 생명에는 아무 지장도 없을 것이다.

나의 섬기는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셔서 어제 밤에 그렇게 말씀하신 대로 되리라고 나는 확신한다”고 담대하게 말하였다.

모든 것이 불가능이요, 모든 것이 부정적이요, 살 소망이 완전히 끊어진 그 자리에서 누가 감히 염려 말라 안심하라, 생명이 조금도 지장이 없다, 곧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오직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삶이라 하여 무엇이 지나치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바로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 누군가 나타나서 답답하고 절망적인 상태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시원하고 또 완전하게 문제에 해답을 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런 사람으로 인하여 시원한 청량음료를 마시듯 모든 사람을 시원하게 해주어야만 하겠다.

그런데, 바로 우리가 그렇게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기다리는 사람이 다름이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필요를 느낄 때에, 내가 간절히 바랄 때에 성경은 벌써 네가 그렇게 하도록 너를 구원하였고 너에게 은혜와 능력을 베풀었고, 풍성함을 더하여 네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의 근원이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시대의 바울은 다름 아닌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엉킬 대로 엉켜진 국제정세, 장래를 보아도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지구촌, 바닥을 볼 수 없는 타락, 전혀 앞길이 보이지 않는 영적 암흑의 도래에 대한 두려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 급전직하로 떨어지는 지구촌 풍경의 모습…. 누가 시원하게 할 수 있겠는가? 너야, 바로 너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시대의 사명자로 나서는 축복이 넘치기를 축원해 마지 않는다.

2. 풍성한 사람

바울의 말대로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구원 받았다. 멜리데 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당시의 아름다운 관습상 그들이 일행을 따뜻하게 영접하였다고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이미 바다에서 되어진 일을 어느 정도 들었을 멜리데 섬 원주민들은 바울과 모든 사람 275명을 대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본래도 대접을 힘써 하였겠으나 더욱 대접에 정성을 기울였으리라.

바로 그때 나뭇짐 한 웅끔을 불에 떨어 넣은 바울을 독사가 물고 있는 것을 보고서 생각을 바꾼다. 이 사람은 물에서 천신만고 끝에 구함 받았으나 무서운 살인죄를 지었으니 정의가 살도록 두질 않고 죽게 만드는구나 하고…. 혹 붓든지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알았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생각을 바꾸어 신이 내려왔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완전한 신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풍성함…. 어디에서 누가 얻을 수 있겠는가? 오직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사람뿐이다. 이런 사람은 가는 곳마다 풍성함이요, 능력이요, 시원함이요, 완전한 해결이요, 온전한 앞길 제시이다. 나를 따르라, 내가 믿고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라!! 이 시대에 참 시원함을 줄 수 있는 자이다.

독사 사건 이후에도 그 섬의 추장 같은 사람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병들었을 때에 열병과 이질로 고통을 당할 때 누군가가 그를 도와주어야 하였다. 당시의 열악한 삶의 환경을 볼 때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야 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리라. 특히 질병을 앓는 일을 도움에 있어서 말이다. 바울이 그를 불쌍히 여겨 안수하고 기도할 때 그 병이 나음으로 얼마나 풍성함과 시원함을 선사하였는가? 누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이일로 인하여 많은 병든 자들이 바울에게 나아와 고침 받고 후한 예로 모두를 대접하고 그들의 쓸 것을 공급하였다. 바다에서 다 버려 아무것도 없는 그들…. 특히 오랜 영적 투쟁으로 피폐하여진 바울에게 풍성하고 또 풍성한 선물을 얻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한 사람 바울로 말미암아 다 빼앗긴 데서 풍부하게 얻게 된 삶… 그가 별 준비가 없었던 로마에서의 감옥생활에서도 풍성하게 쓸 것을 멜리데에서 공급받게 하신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한 사람 바울로 모두가 풍성해지고 시원하며 만족하였듯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참목자의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어지기를 축원한다.

그리하므로 답답하고 안타까움이 물러가고 지루하고 무더운 날들이 사라지고, 시원한 냉수 같은 사람이 되어 하나님 영광, 복음의 진보만 크게 나타나게 되기를 축원한다. 잘 적용되는 예화를 하나 소개하 고 싶다. 샤르니라는 불란서 사람 하 나가 나폴레옹의 노여움을 사서 토 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친구에게 버림받고, 바깥세상으로부터도 완 전히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고 독과 절망에 빠진 그는 작은 돌조각 하나를 들어 그 쓸쓸한 독방 벽에다 이렇게 새겼다. “아무도 돌보지 않 는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토굴 감옥 바 닥에 깔려있던 돌들 틈에서 푸른 새 싹이 돋아났다. 그것은 벽 위에 뚫린 작은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향하여 뻗어가기 시작했다. 샤르니 는 간수가 매일 넣어주는 물을 조금 씩 아껴 그 푸른 잎사귀에 부어주곤 하였다. 새싹은 마침내 아름다운 파 란 꽃을 피우는 꽃나무가 될 때까지 자라났다.

꽃나무가 탐스러운 꽃송이를 터 뜨리자 그 고독한 포로는 전에 벽 위에 새겼던 글귀를 지우고 그 위에 다가 다시 “하나님이 돌보신다”라고 새겨 넣었다. 이 죄수에 대한 하나님 의 은총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옆방 죄수를 면회온 어린 딸을 통하여 꽃 소식이 퍼져나가 마침내 조세핀에 게 전달되었고, “꽃을 진심으로 사 랑하고 돌보는 사람은 결코 나쁜 사 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나폴 레옹에게 석방을 간청하였고 마침 내 풀려날 수가 있었다.

작은 생각의 변화, 그것은 누구나 가지고 싶은 이 시대의 정신일 수 있다. 누가 이렇게 시원하게 무에서 유를 창조할 만큼 문제를 해결하고 풍성하고 풍성하게 사람을 돕고 용 기와 삶의 기쁨을 줄 수 있는가? 바 로 너와 내가 아닌가?

revsk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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