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나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자세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소개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들의 예배드리는 모습을 한 번 재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가인과 아벨,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으시지를 않고 아벨의 제사만 열납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다 열납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받으실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몇 가지 귀한 교훈을 받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제사드릴 장소를 알려주셨습니다. 그곳은 가까운 길이 아닌 삼일 길을 가야하는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산에 가면 흔한 것이 나무인데도 불구하고 본문 3절(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에 보면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난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 제사 드리러 가면서 모든 것을 정성스럽게 준비해 가지고 떠났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기를 소원한다면 우리의 예배에도 가득한 정성이 깃들어져야만 하고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릴 때에도 정성 들여 준비하는데 하물며 살아계시고 나를 영원한 형벌에서 구해 주신 만왕의 왕 하나님께 예배드리는데 우리는 철저한 준비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예배에 임하지는 않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이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엄청난 눈으로 인해서 도로 사정이 최악인데도 불구하고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시는 여러분들의 정성을 보시고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하며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평강이 우리 모두 위에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로, 본문 말씀 5절(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에 보면 3일 길을 같이 온 두 사환과 나귀는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고 자기는 이삭만 데리고 더 들어가서 경배 드리고 오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해가 안 가고 또한 너무나 이기적인 행동 같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는 자의 올바른 자세임을 깨닫게 됩니다. 즉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만 집중하겠다는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짐승을 데리고 가면 언제 울어댈지, 가만히 있을지, 조용히 있을지, 어떻게 장담하겠냐는 말이지요.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영이신 그 분께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만 열납 되는 것입니다. 예배의 본질을 이해한 아브라함이기 때문에 진정한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제물인 이삭만 데리고 더 깊이 들어간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 보면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배드릴 때에 주님만 깊이 생각하며 그에게만 집중합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향내 나는 제사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7절(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말씀에 보면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 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삭은 자기 자신이 제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지요.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는 참석하는데 바로 자기 자신이 제물이 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예배가 하나님께 열납 되지 못하므로 아무리 예배를 백번 천번 드려도 기쁨과 평안이 없기 때문에 힘이 없고 무기력한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힘과 능력을 부여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열납 되는 예배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제단의 제물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제물은 죽어야만 되는 것이지요. 살아 있으면 절대로 제물이 될 수 없는 법입니다.
오늘 나는 이 시간 예배를 드리면서 이 제단에 제물이 되기 위하여 죽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살아서 나의 신앙, 생각, 방식만을 주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무더위를 무릅쓰고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바울 사도처럼 날마다 죽는 연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물들이 되시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축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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