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섭 목사 (에벤에셀 선교교회)
신앙개혁을 위해서는 청교도 신학자와 목회자들을 연구하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1500년부터 1700년 후반까지 대표적인 청교도 지도자는 존 낙스, 리차드 박스터, 존 오웬스, 존 웨슬리, 조지 윗필드, 존 번연, 찰스 스펄전, 조나단 에드워드 등이다. 17세기에 영국 교회가 한창 어려운 고비에 처했을 때, 진리의 투사이며 탁월한 목회자, 신학자로, 활동한 리차드 박스터(Richard Baxter)가 지은 “The Reformed Pastor”(참목자상)이란 책은 제게 많은 각성과 도전, 사명을 격려해준 책으로, 가끔 읽는 책 중의 하나이다. 그는 기독교계의 침체원인을 그 누구보다도 목회자의 잘못에서 찾고, 참 목자의 할 일이 무엇인가를 본서에서 제시하였다. 제 2장, 목회의 본질에서 “목회하는 데 중요한 문제는 영적인 문제, 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문제이며, 양떼를 구원하는 문제이다. 그 일은 일시적이거나 순간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하는 일은 세상 나라에 관한 것이 아니며,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인격을 도야하는 것도 아닌 양떼들에게 궁극적인 행복과 최선을 제시하는 것이다”라 말했다.
1. 청교도 예배의 특징
청교도들은 그들이 드리는 예배에서, 성경이 직접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것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고, 성경에도 없는 인간의 전통을 포함시키지 않은 순수한 예배를 추구하여, 인간에 의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예배로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원했다. 진정한 예배는 우리를 그의 무한한 사랑과 은혜로 구원하여주신 하나님을 뵈옵고 우리의 전인격이 경외하는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경배하는 일로, “전 생활의 예배화, 삶 전체를 예배의 심정으로 사는 일”이었다.
또한, 청교도의 예배는 성경적이면서 단순하여 종종 세련되지 못하다는 비평을 받았다. 존 오웬스(John Owens)은 “화려한 예배당과 예배의식이 하나님께서 신실한 예배에서 찾으시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말했다. 청교도 예배는 순수성(Purity), 단순성(Simplicity), 경건성(Spirituality)을 그 특징으로 하면서도, 특히 설교는 원문에 근거한 자연스러운 해석에 근거해서 교리와 실천적인 면의 적용을 강조했다. 말씀을 들을 때는 “그 말씀을 적용하는 것을 당신의 직무로 삼으라” 강조했다. 정리하면, 청교도들의 예배의 본질은 성경중심 즉 철저하게 성경에 입각한 예배였다. 주님께서는 참된 예배를 이렇게 정의하셨다. 요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님의 음성과 성령의 감동이다. 진정한 예배는 주께서 진리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가 있어야 하며, 아울러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다른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다 해도 진리와 성령이 빠져 있으면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없다.
2. 예배의 본질
1)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본질: 계4-5장의 네 생물과 24장로들의 예배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거룩, 전능, 영원하심을 강조했다. 그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 만물을 심판하시는 분, 나아가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 곧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속하시는 분으로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리는 예배였다.
이런 예배의 특징은 무엇인가? ①주님께만 초점을 맞추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고 의식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②자기 모습을 보고 애통해 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사6:1-6).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던 중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다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자신이 입술이 부정한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이렇게 고백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회개를 통해 죄 사함을 받은 후에 주의 음성이 들렸다. “누가 나를 위해서 갈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즉 소명을 받게 되었다. ③이기심을 버린 예배가 되어야 한다.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에 던졌다. 평생을 주를 위해 수고함으로 받은 상급의 면류관을 아까운 마음이 없이 주님께 드렸다.
2)하나님 앞에서의 삶으로 드리는 예배: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삶의 예배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청교도들은 거룩하고 속된 “성속 이원론”을 거부했다. 교회에서는 거룩하고 가정과 사회에서는 멋대로 사는 것은 성도의 바른 삶이 아니라 선언했다. “삶 전체가 예배다. 설교하는 일도 거룩하지만, 농부가 농사를 짓는 일도 거룩하다”고 선언하면서, 그들은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장사하고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가르쳤다. 그랬더니 가정과 사회가 변했다.
①본받지 말 것: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은 세상의 유행을 따라가지 말라, 세상 사람들의 인생관, 삶의 가치관을 따라 살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의 가치관은 이 땅의 것만을 위해, 자신의 향락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살게 만든다. 또한, ‘죽으면 다 끝난다’는 것은 세상적 가치관의 진리이다. 그러나 영적 가치관을 가진 자들은 죽음이 끝이 아닌 영원을 준비하는 기간이요, 이 땅에서의 삶이 내 인생의 영원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확신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사는 것이다.
②변화를 받아야 한다: 바른 예배를 드리면 인생의 목적이 달라져야 한다. 삶의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즉 마음가짐과 생각이 달라져야 하고, 삶의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비뚤어진 생각이 곧은 생각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미워하는 마음이 사랑스런 마음으로 바꾸어지며, 원망과 불평, 낙심케 하는 언어가 감사의 언어, 희망적 언어, 축복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며, 나아가 가정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에서 대인관계와 일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되어져야 한다.
그러기에 만사에 공정하고, 정직하며, 신실한 삶을 살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난다. 특히, 목회자들은 강단에서 외치는 만큼 그렇게 살아야 한다. 목사들이 살면 교회가 살고 사회와 국가가 산다. 목회하는 동안 몇 번 정도 예배드리고 설교했나? 수천번 내지는 만번 이상일 것이다. 그 정도가 되었으면 이제는 성자 반열에는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장로, 집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가정도, 직장도 예배의 연장선에서의 삶의 터전이다.
③분별하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 기뻐하시는 뜻,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라. 첫째, 마귀의 정체를 분별해야 한다. 마귀는 때로는 우는 사자처럼, 때로는 천사의 모양을 가장하고 들어와 내 영혼을, 가정을, 교회를, 사회를 파멸 시킨다. 교회가 어려울 때 분별력이 있으면 사람의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는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그분의 뜻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다. 그분의 말씀에 절대적 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특히 그분의 뜻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주께로 인도하는 일이다. 이것을 분별하고 그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참 예배자의 삶이다.
정리하면, 이제 성도 개개인과 교회가 참된 예배를 회복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고, 나아가 변화된 모습으로 살고, 가정과 사회를 새롭게 하는 도구로 쓰임을 받아 주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하겠다.